이 집은 우리 아틀리에에서 설계한 첫 번째 주택으로, 건축주는 트롬본과 피아노 연주자 부부다. 이 부부를 알게 된 뒤 1년 동안 수없이 연주회와 식사에 초대받아 교류하면서 두 사람이 어떤 집을 원하는지에 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고, 그런 다음 부부가 대학 시절을 보냈던 마을에서 조건에 부합하는 토지를 찾아냈다.
지반이 도로보다 2.4미터 높아서 지하층에 음악실을 설치하기에는 안성맞춤인 부지였지만, 문제는 이웃집이 3면을 둘러싸고 있어서 도로와 인접한 남쪽에 거실을 배치하고 창을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집에서 산다기보다 거리에서 살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원래 지반 높이에 커다란 미서기창을 통해 공원의 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는 거실·식당을 만들었다.
---p.20 「05. 창문에 후드가 달린 집」 중에서
집을 짓는 것은 미래를 내다보고 몇 가지 계획을 검토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는 작업이다. 출산이나 부모와의 동거로 가족의 숫자가 늘어나거나 자녀의 독립으로 인원수가 줄어들었을 경우 집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이웃 건물이 헐리거나 새로 지어졌을 때 채광이나 통풍은 어떻게 변화할지 등, 경제적인 문제까지 포함해 다양한 패턴을 생각한다. 그렇게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취사선택한 가치가 ‘그 가족의 특성에 맞는 집의 형태’가 된다.
설계를 시작할 때 3인 가족이었던 사쿠라신마치의 건축주도 이사할 무렵에는 4인 가족이 되어 있었다. 장래에는 근처에 사는 부모와의 동거도 염두에 두고 1층에 샤워실과 예비실을 마련했다. 가족이 늘어나면 더더욱 개개인의 생활 리듬이나 그날의 기분에도 차이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가족이 마음 편히 생활할 수 있도록 그때그때 서로의 거리감을 조절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다.
---p.54 「19. 비스듬하게 보면서 생활한다」 중에서
이 집은 도로 폭이 좁아 자동차가 들어올 수 없는 주택지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이웃집과의 거리도 5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 할 만큼 좁아서, 1층과 2층 모두 이웃집에 막혀 빛과 바람이 충분히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은 지 40년이 넘어 지붕과 벽의 손상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내진 성능에도 불안감이 있었다. 다만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을 경우 현재보다 상당히 작은 집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골격을 남긴 채 내진 보강을 포함한 풀 리노베이션을 실시했다.
먼저, 지금까지 대낮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웠던 1층의 거실·식당은 2층으로 옮기고 응접실과 침실, 욕실을 1층에 배치하기로 계획했다. 채광·통풍을 얻기에 효과적인 창문 위치를 찾기 위해 기존 창문의 크기와 위치를 입면에 집어넣고 이웃집 처마 높이와 용적을 비교한 결과, 남쪽 벽면의 모든 기존 창문(다음 페이지 입체도의 1점 쇄선 부분)이 이웃집에 막혀 채광과 통풍에 도움이 안 됨이 판명되었다. 그래서 이웃집 처마보다 높은 2층 지붕틀 높이에 빛과 바람을 직접 실내로 끌어들이는 상부 채광창을 설치했고, 식당과 주방은 이 창문의 효과를 공유하기 위해 하나로 합쳤다.
---p.84 「30. 위에서 내려오는 빛이 생활을 변화시키다」 중에서
현관을 거리 쪽으로 어떻게 열어 놓을지는 늘 고민되는 부분이다. 문을 열었을 때 실내가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것은 피하고 싶고, 비에 젖지 않은 채로 우산을 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면 진입로를 조금이라도 길게 만들고 싶다. 식물들로 가득해 계절별로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진입로는 그 집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거리를 지나는 사람에게도 아름다움과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이 집은 건폐율 40퍼센트, 용적률 80퍼센트 제한이 있는 80제곱미터의 토지에 지은 3층 건물이다. 지형은 남쪽을 향해 낮아지며, 북쪽에 폭 4미터의 도로가 인접해 있다. 지하층은 도로면보다 1.2미터 낮은 곳에, 1층은 1.2미터 높은 곳에 있어서 이웃집의 바닥 높이와 딱 반 층 정도 어긋나 있기 때문에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지 않는다.
---p.118 「44. 멀리 돌아서 가자」 중에서
인간에게는 ‘무언가를 장식하고 싶다’라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꽃 같은 장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추억이 담긴 물건이나 마음에 든 물건을 감상하면서 사는 것은 집을 ‘내 집’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거실을 설계할 때의 조건은 가족을 보는 방향, 정원을 보는 방향, TV를 보는 방향 등 세 방향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다. 이 집의 경우 아내가 취미로 수집한 수십 점의 델프트 도자기를 매일 감상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게 되어서, 후키누케가 있는 거실의 동쪽 벽에 캣워크까지의 높이 2.5미터를 장식장 설치 공간으로 할당했다. 접시 크기를 기준으로 삼아 장식장 한 칸의 높이는 300~380밀리미터로 설정했고,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유리문을 달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기에 4밀리미터 두께의 강화 유리 무게와 장식할 도자기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세로판을 이중으로 설치하고 유리문의 손잡이로 가렸다.
---p.134 「50. 장식을 위한 보이지 않는 궁리」 중에서
현장을 인도할 때는 ‘집’이었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안식처’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설계에 관여한 우리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이 집은 준공한 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유지에 필요한 보수와 수선은 물론 가구와 설비 등 수많은 장소에 손을 댄 결과 ‘안식처’가 되었다.
거실 벽면 수납장은 설계 중에 도면을 그려 놓았지만, 건축주 부부가 “입주 후에 어떤 수납공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구상한 다음에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나중에 만들게 되었다. 또한 침실의 침대 헤드보드와 옷장도 살기 시작한 뒤에 크기와 수납량을 건축주 부부와 확인하면서 장소에 맞춰 만들어 나갔다. 거실과 침실 주변의 수납공간 제작이 끝나자 이듬해에는 소파 제작이나 오랫동안 사용했던 소파 테이블 개조 같은 자잘한 작업에 대해서도 상담 요청을 받았다. ---p.167 「63. 집이 안식처로 바뀌기까지」 중에서
우리는 목제 유리문의 기밀성과 단열성을 보완하기 위해 다다미방이 아닌 곳에도 기본적으로 빈지문(바깥쪽 문)과 장지문 또는 맹장지문(안쪽 문)을 함께 설치해 왔다. 이 가운데 빈지문은 매일 여닫게 되므로 가급적 단순한 방식을 궁리한다.
이 집의 2층 거실에 있는 길이 4.8미터의 횡연창은 중간이 살짝 꺾여 있다. 빈지문은 모두 4짝으로, 동쪽의 포켓에서 3짝을 꺾여 있는 서쪽으로 이동시켜 닫는다.
빈지문을 여닫는 데 걸리는 시간은 1~2분에 불과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창가에 서서 집을 향해 잎과 가지를 뻗는 단풍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생활 속에 ‘슬쩍’ 숨겨 놓았다.
---p.186 「71. 일상을 뒷받침하는 장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