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체형이 좀 이상해요.”라는 말을 안 하는 여자를 본 적이 거의 없다. ‘다리가 짧아요.’ ‘허리가 굵어요.’ ‘팔이 짧아요.’ ‘팔이 두꺼워요.’ ‘엉덩이가 커요.’ ‘엉덩이가 작아요.’ ‘허벅지가 굵어요.’ ‘허벅지가 너무 가늘어요.’ ‘종아리가 굵어요.’ ‘종아리가 짧아요.’ ‘종아리가 길어요.’ ‘목이 길어요.’ ‘목이 두꺼워요.’ ‘목이 짧아요.’ 등등. 그래 알겠는데, 그럴 수 있는데, 근데 그런 게 지극히 정상인 거 아닌가? 표준체형이란 것이 대체 뭐지? 이건 뭐 로보트를 찍어 내는 것도 아니고. 체형이 이상한 게 아니라, 체형의 특징이라 해야 맞지 않겠냐는 말이다. 얼굴이 모두 다르듯 체형도 다른 게 ‘정상’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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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의 학이(學而) 편에 유명한 말이 있다. 行有餘力 則以學文 행유여력 즉이학문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그때 학문하도록 하라. 물론 이 말에서 행한다는 것은 집에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게 행동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미덥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이와 가까이 지내도록 하는 것(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중 이친인)을 뜻하는 것이다. 여튼 ‘행유여력’ 다음에 ‘즉이학문’이 아니던가. 연애도 결국은 행실을 삼가고 말을 신뢰롭게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널리’ 사랑해서는 안 되겠지만. 역시 장기적으로 볼 때는 나쁜 남자보다 착한 남자를 골라야 한다는 의미로 어진이와 가까이 지내야 한다는 말도 맞다. 어찌되었든 이론서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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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생각했으면 행동하기에 충분하다 싶다. 두려움도 별 거 아닐 때가 많다. 어려워 보이는 것도 실상 도전해 보면 그럭저럭 해나갈 만한 것도 많다. 허상을 먹고 자라난 허상은 실상으로 존재하는 나를 허상 안에 가두어 버리는 묘한 위력을 갖는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나 보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 둔다.’ 판단이 흐려지기 전에, 우유부단함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전에, 내가 나의 감옥에 갇히기 전에, 그를 나의 감옥에 가두기 전에 두 번 생각했으면 움직여 볼 일이다. 가자, 가 보자! “우리 차 한 잔 할래요?” 너무 진지하지 않게, 웃으면서, 산뜻하게!.
--- p.46
‘나’가 기준이 되는 건 잠시 꺼 두고, 낯선 사람, 낯선 곳에 잠시 가서 앉아 있어 보기로 했다. 낯섦을 즐길 수 있어야 육지에서 부대끼며 살 수 있을 테니까. 세상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새로운 세상을 넓게 즐기기로 했다. 그 넓은 세상에는 남자도 있겠지. 결혼 상대로 가능한 남자가 있는 세상이 아무리 넓다 해도 세상 모든 사람이 사는 세상보다 넓을 수는 없는 것.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면 친구도 만나고 멘토도 만나고 선후배도 만나고, 그러다 애인도 만나고 결혼할 남자도 만날 수 있겠지. 이성에게 몰표를 받는 여자가 되는 길이 아니라 매력 있는 사람이 되는 길로 방향을 틀었다.
--- p.81
《대학》을 공부하다가 참 격하게 공감가는 구절을 발견했다.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마음이다. 마음이 달려가는 곳에 눈도 있고 귀도 있고 미각도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눈썹 한 번 흔들리는 것을 보느라, 그 사람의 말소리와 숨소리 한 번 듣느라, 집어삼킬 듯 그 시간에 몰두하느라, 나는 내 평생 처음 가 본 패밀리 레스토랑의 음식 맛이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그 사람에게 송두리째 마음을 다 내어주느라 말이다..
--- p.122
《중용(中庸)》에 이런 구절이 있다. 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 인막불음식야 선능지미야 사람들은 모두 음식을 먹고 마시지만 그 맛을 제대로 아는 이는 적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간다. 태어났으니 살아간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와 자기 인생의 참맛을 알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의 진짜 맛은 무엇일까. 내 인생의 참맛은 무엇일까.
--- p.136
연애를 자주 할수록 사람이 넉넉해지는 것이 아니라 받아야 할 것을 세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기중심적으로 태어나는 존재인 인간이 자기를 확장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 사랑,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습관이 되면 원래 이기적인 인간을 더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 내 울타리 안에 잡동사니를 잔뜩 쌓아 두고 똑같은 모양이 반복되는 연애 말고, 그 사랑을 통해 울타리 안을 비울 수 있는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에게도 열지 못하는 지갑이 아니라 사랑받았던 그 추억으로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지갑을 열고, 배우고, 연습하는 시간이 열렬한 연애의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마음의 폐쇄회로를 여는 유일한 열쇳말이라지 않는가.
--- p.168
《서경》에서 상서(尙書)의 열명(說命) 편에 나오는 말이다. 若藥弗瞑眩 厥疾弗? 약약불명현 궐질불추 만약 약(藥)이 독해서 복용했을 때 어찔하지 않으면 그 병(病)이 낫지 않는다. 이는 왕에게 올리는 신하의 말이 날카로운 직언(直言)이어야 정사가 바로 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예전에 신하된 자의 최고의 미덕은 직언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만날 때마다 곧이곧대로 쓴 소리만 하는 신하들은 군주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임금도 사람이니까.
--- p.202
자기 인생에 갇혀 내 경험만으로 삶의 지혜를 얻은 어르신들을 떠올려 보면 쉽게 그 위험성을 이해할 수 있다. 분명히 어느 부분은 지혜로우신데 그것 말고 다른 더 많은 부분에 대해서는 어린 사람들의 숨이 막히게 한다. 이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면 자신의 작은 경험의 틀을 자꾸만 깨고 생각의 폭을 넓혀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 힘을 줄 수 있는 것이 책 읽기이다. 한 권의 책이 대단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되는 대로 생각하면서 말과 행동의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을 책 읽기가 막아 주기 때문이다.
---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