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 역사 속 신령한 동물들
동물은 자연의 일부이자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야생에서 만난 동물은 자기보호와 생존을 위해 사람을 공격하지만, 가축으로 길들여진 동물은 사람에게 여러 도움을 준다.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위협하기도 하는 존재인 동물은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물을 귀하게 생각해 애지중지 키우기도 하고, 야생에서 만난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거나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날카로운 도구들을 만들기도 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선망하거나 존경하며 신성한 대상으로 보고, 해로운 것을 공포스럽게 생각하며 두려워하거나 퇴치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이 인식은 동물에게도 적용된다. 선조들은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동물과 위협하는 동물을 모두 공경의 대상으로 생각해 ‘신’으로 숭배하거나 신성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고대에 성행한 ‘토테미즘totemism’ 신앙의 기반이 되었다.
토테미즘이 보편적이었던 신석기시대 이후 고조선古朝鮮부터 부여扶餘,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 가야伽倻, 동예東濊, 삼한三韓(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등 고대 국가들도 동물신을 숭상했다. 고대에는 나라에서 믿고 받들던 동물들을 건국신화나 왕조 출현의 상징으로 삼아 정치적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고대의 전통이 고스란히 전래되어 고려高麗·조선朝鮮시대에도 특정 동물들을 하늘이 왕에게 보내는 신호나 나라와 백성을 수호하는 신 등으로 여기며 고대보다 포괄적인 방향으로 숭배했다. 그렇다면 각 나라마다 어떤 동물을 신으로 믿었는지, 그리고 동물들을 어떻게 믿었고 어떤 이야기가 전래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나라의 수호신, 십이지신
십이지十二支는 방위와 시각을 표시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언제부터 동물에 비유했는지는 알 수 없다. 십이지는 중국 한족에서 처음 사용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중국 외에 인도, 이집트, 한국, 일본, 베트남, 멕시코 등에서도 동물을 배열해 시간과 방향을 표시했다. 일본은 돼지 대신 멧돼지를, 베트남은 토끼 대신 고양이를 넣고, 멕시코는 호랑이, 토끼, 용, 원숭이, 개, 돼지 외의 6마리는 다른 동물을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에 처음으로 중국에서 전래된 십이지를 수용하여 십이지신 석상을 만들어 왕릉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사용했다. 처음으로 십이지신상을 새겨 넣은 왕릉은 진덕왕릉眞德王陵이다. 왕이 아닌 김유신金庾信(595-673)의 묘에서도 십이지신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김유신이 죽은 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봉해지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성덕왕릉聖德王陵, 경덕왕릉景德王陵, 원성왕릉元聖王陵 등이 있다.
십이지신을 본떠 만든 신상석은 모두 12개로 자상子像(쥐)·축상丑像(소)·인상寅像(호랑이)·묘상卯像(토끼)·진상辰像(용)·사상巳像(뱀)·오상午像(말)·미상未像(양)·신상申像(원숭이)·유상酉像(닭)·술상戌像(개)·해상亥像(돼지)을 비석이나 묘지 내부에 새겼다. 십이지신 신상석은 무덤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감싼 형태로 배치되며, 각각 시계 숫자처럼 무덤을 12등분한 위치에 서 있다. 이는 당시 천문 역법에 따른 열두달을 상징한다.
석상 외에도 십이지신은 부장품副葬品 , 신라에서는 부장품 외에도 불교건축물인 탑, 부도僧塔 , 석등石燈 , 수미단須彌壇 , 귀부龜趺 등의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불교의 상징이었던 십이지는 신라시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대부분 왕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 용도로 쓰였다. 중국의 십이지신은 평민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불교의 영향으로 사천왕四天王 복장을 하고 있다.
동양과 일부 서양권에서는 십이지신을 시간과 방위 개념으로 이해하여 열두 달의 변화를 설명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조선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왕릉에서 십이지신 석상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십이지신의 각 동물은 어떤 방향과 시간을 상징하며 우리나라 역사에서 12마리의 동물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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