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썼습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네 단어로도 말하고, 한 문장으로도 말하고, 1분간 설명할 수 있으며, 5분간 설교할 수 있고, 30분간 설교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이 이 책을 펴신 이유도 이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그 복음, 그 한 단어를 붙잡기 위해 이 책을 펴셨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여는 글에」중에서
거짓 교사들에게 휘둘리는 갈라디아 교회의 참담한 상황을 알게 된 바울은 즉시 갈라디아의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교회를 장악하려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고발하며 참된 복음을 설명합니다. 바울이 가르친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같은 죄인들이 값없이 죄 사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완전한 의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파했던 참된 복음을 재차 설명함으로써 교회를 어지럽힌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사상을 반박하려 합니다.
---「1장 복음이란 무엇인가」중에서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그저 받는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구원을 얻는 통로가 되긴 하지만, 구원의 근거는 아닙니다. 우리 구원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을 때, ‘은혜에 의하여’는 구원의 근거를 말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는 구원을 얻게 하는 수단을 말합니다.
---「2장 복음의 유일성」중에서
복음은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합니다. 누가 그 일을 해야 할까요? 왜 바울이 디도의 할례를 막은 걸까요? 디도의 할례가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다시 속박하게 될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4절). 사실 할례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디아포라(adiaphora, 비본질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미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적이 있습니다(행 16:3). 그에게 의식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유대인의 회당을 중심으로 사역을 해야 했기에 그들을 위해 할례를 행한 것뿐입니다.
---「3장 복음의 가치」중에서
칭의란, 하나님께서 어차피 선한 일에 실패한 ‘경건치 않은’ 죄인들을 용서하고 의롭게 ‘여겨 주는’(롬 3:25, 4:5-8) 것입니다. ‘칭의’는 법적인 용어입니다. ‘선고’와 관련이 있습니다. 재판장이 피고를 향해 “너는 무죄다”라고 선언하는 판결이 ‘칭의’입니다. 이것과 반대되는 말이 ‘정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롭다’가 아니라, 의롭다고 ‘선언’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 생활을 잘하면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과 연합되었기에,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 내가 행한 일이 되기에, 하나님이 그런 나를 ‘의롭다’고 칭해 주시는 것이 ‘칭의’입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이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롬 4:5). 다시 말해, “악한 자를 의롭다”고 선언해 주시는 것입니다.
---「4장 복음의 직분」중에서
그러면 구원에 있어 행함은 아무 작용도 할 수 없나요? 그렇습니다. 적어도 구원에 있어서 만큼은 그렇습니다. 만일 구원에서 행함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주님의 행함뿐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대속만이 구원의 행위에 속할 뿐 우리의 행위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믿음만 있다면 더 이상 우리의 행함은 필요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는 행함과 행함이 없는 믿음을 모두 거부합니다(롬 4:1-4; 약 2:14-26).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으면 악하게 산다”?37고 했습니다.
---「5장 복음의 증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