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공허하거나 서글퍼지기 쉬운 가족의 마음도 구수하고 고소하고 달콤한 밥 냄새로 채워주고, 따뜻한 사랑을 표현하면서, 언젠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래,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란다.
오늘도 슬슬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저녁은 집에서 먹나요? 먹고 싶은 반찬 없어요?”
“오늘은 날씨가 너무 차니 돼지고기 넣고 김치찌개 끓일게요. 이따가 봐요.”
---「사랑한다는 말 대신」중에서
가족이 요리할 때 집은 둥지가 되나 보다. 엄마 새를 향해 입 벌리고 있는 새끼 새들이라니, ‘함께 먹는 입’을 뜻하는 식구(食口)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장면이다. 식구란 함께 먹을 밥을 향해 입 벌리고 팔 벌리고 부둥켜안는 존재들이다. 이래서 식구들과 부대끼며 함께 만들고 냄새 켜켜이 쌓이는 집밥이 어떤 음식보다도 우리 식구와 가장 잘 어울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굳이 달래 된장찌개가 아니어도」중에서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기억은 파나 마늘 같은 양념 냄새가 아니라 코티분 향기에 담겨 있었다. 나는 익숙하지 않던 엄마 냄새로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의 엄마 향기. 나는 여전히 엄마의 코티분 향기가 아프고 그립다.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엔 코티분 뚜껑을 열었다」중에서
바쁜 도시 속 네모난 아파트에 살지만, 일주일에 한 번쯤은 계절에 너무나도 정직한 흙냄새를 졸졸 따라다녀야겠다. 사소하고 평범한 장면에, 살랑살랑 오후의 바람에 재채기처럼 숨길 수 없는 웃음을 머금고. 시간 내어, 돈 들여 흙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식과 예의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건강은 보너스 선물이 되겠지?
---「이렇게 해서라도 흙을 밟아야겠습니다」중에서
우리 할머니는 손녀를 만날 때만은, 손녀에게 용돈을 주실 때만은 부자였다. 본인을 위해서는 10원짜리 하나도 아끼시는 분이 중한 돈을 자꾸 내게 주셨다. 부자 할머니 덕분에 나는 20만 원짜리 수학 과외도 받았고, 386 컴퓨터도 샀다. 엄마는 할머니의 만 원 한 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할머니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씀하셨다. 나도 그 마음을 알기에 졸음을 참아가며 기를 쓰고 공부했다.
---「할머니의 정원에는 봉숭아가 피었습니다」중에서
남편이 나를 위해 백만 년(?) 만에 끓인 김치찌개와 갓 지은 밥 한 공기를 퍼서 식탁에 앉았다.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먹으려는 순간, 둔해진 코에 달근하고 구수한 냄새가 스며든다. 익숙하지만 낯선 냄새. 남편이 해준 부드러운 밥 냄새는 나를 절로 미소 짓게 했다. 며칠 동안의 마음고생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 정도, 이렇게 아주 가끔 해주는 밥 한 번에 감사했다. 나에게도 힘들 때 나를 돌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때 위로가 된다. 힘을 낼 수 있다.
---「아플 때만이라도 내게 밥을 해주면 좋겠어」중에서
어느 해, 부모님은 수박을 재배하셨다. 논두렁에 쑥 냄새가 퍼지는 계절에 수박 농사가 시작되었고, 나는 수박이 탱글탱글해지는 늦은 봄쯤 부모님 댁에 들렀다. 농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비닐하우스에 들어가니 곳곳에 1.8리터짜리 물통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물을 많이 드시나?’ 하고 의아했는데, 금세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수박을 위해 꾸려놓은 비닐하우스 안은 한증막 같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물을 마시지 않으니 금방 어지러워졌다. 그날, 차 트렁크에 실린 수박 한 덩이는 세상 어떤 돌덩이보다 무겁게 내 가슴을 짓눌렀다.
---「아들, 밥 먹었어?」중에서
골목 어귀에서 밥 냄새가 날 때면 눈을 감고 걸어도 집으로 가는 골목을 알 수 있었다. 생선구이, 불고기, 김치찌개……. 맛있는 냄새를 모두 지나면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집이 하나 나왔다. 나는 거기 살았다. 밖에서 일하시는 엄마는 저녁 먹으라고 나를 부르는 일도, 찾으러 나오는 일도 없었다. 불 꺼진 우리 집에선 당연히 밥 짓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골목 어귀에서 밥 냄새가 날 때면」중에서
광고에서 말한 시트러스 향 같은 것은 맡지 못했지만, 내 기억 속 돈 냄새에는 그보다 향기로운 사람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디지털 머니는 편리하기는 해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0과 1, 생존 아니면 아웃이라는 디지털 관계로 치환되는 느낌이랄까. 아들에게 덕담을 건네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세뱃돈을 송금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따스해지기는커녕 낯설고 서늘하기만 하다. 그럴 때면, 설날 아침부터 바쁜 와중에 시장까지 가서 돈을 거슬러오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에 밀려 돈 냄새와 함께 사라진 사람 냄새가 유독 그리워진다.
---「장지갑을 꺼내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