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는 B.C. 1700-1500년경 모세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책으로서 모세의 “첫 번째 책”이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상 다섯 권의 책을 “모세오경”이라 부르며 히브리어로는 “토라”(율법)라고 한다. 창세기에서는 B.C. 4004년에서 B.C. 1689년까지 무려 2,315년의 기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창세기”(Genesis)라는 말은 “시작”(the beginning)을 의미하는데, 이 책에서는 하늘과 땅이 시작되고, 식물과 동물, 인간과 성, 죄와 구속, 인종, 종교, 문명, 결혼, 언약들, 시간과 공간 및 인류의 역사 등이 시작된다. 즉 이러한 모든 것들의 기원을 다루고 있는 책이 바로 “창세기”인 것이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로는 아담, 이브, 카인, 아벨, 에녹, 노아, 롯, 아브라함, 이삭, 이스마엘, 에서, 야곱, 요셉, 유다 등이 있으며, 특히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이삭, 야곱, 요셉까지 이어지는 내용이 창세기 12장부터 마지막 장인 50장까지 펼쳐지는데, 이는 창세기 전체 내용 중에서 약 80%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모든 주요 교리는 창세기의 처음 열두 개의 장에서 대부분 발견된다. 그러니까 창세기는 역사적인 흐름의 첫 부분이기도 하지만 신구약 성경 전체의 서론에 해당하는 책인 것이다.
---「제1권,6페이지」중에서
1. 성경에서 “신들”(gods)이라 불리는 존재들(고전 8:5)
1) “마귀”(고후 4:4)
→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자, 이 세상의 통치자(요 12:31; 14:30; 16:11)로 군림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인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다.
2) “정사들, 권세들,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 높은 곳들에 있는 영적 악”(엡 6:12)
→ 사탄의 왕국 내에 일종의 “고위급 통치자들”에 해당하는 존재들로서 십자가를 통해 그 정체가 드러났고 참패했으며(골 2:14,15),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 놓여 있다(엡 1:21,22).
3) “타락한 천사들”(시 82:6,7)
→ 자기들의 처음 지위를 지키지 않고 그 처소를 떠난 범죄한 천사들로서(유 1:6), “사람의 형상”을 입고(행 14:11) 이 땅에 내려와 사람들의 딸들을 취하여 “거인들”을 낳았다(창 6:1-4).
4)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사람들”(요 10:34,35)
→ 모세처럼(출 7:1)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또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들에게 의를 행하고 재판하며 통치하는 재판관들, 곧 그러한 이스라엘의 통치자들도 신들로 불린다.5) “성경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총 24개 - “가나다순” 배열)
→ (1) “네르갈”(Nergal, 왕하 17:30), (2) “느보”(Nebo, 사 46:1), (3) “니스록”(Nisroch, 왕하 19:37, 사 37:38)..., (22) “타르탁”(Tartak, 왕하 17:31), (23) “탐무스”(Tammuz, 겔 8:14), (24) “폴럭스”(Pollux, 행 28:11)
---「제2권, 6-8페이지에서]
1. “퇴적층”의 증거
1) 광범위하게 쌓여 있는 “대규모의 퇴적층” :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
(1) 광범위한 퇴적층(면적 : 약 50만ha)
(2) 경계면이 뚜렷한 퇴적층
(3) 평평한 퇴적층
→ 이상 세 가지 특징을 가진 퇴적층은 “엄청난 양”의 물속에서 급격하게 퇴적될 때만 형성된다[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지질학자 “피에르 줄리앙”(Pierre Julian) 박사의 실험으로 입증됨].
2) 화성암과 비교하여 “지구 표면을 더 많이 덮고 있는 퇴적암의 비율”“화성암”이 지표면을 덮어 가는 속도는 “퇴적암”보다 훨씬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지표면을 덮고 있는 퇴적암의 비율(70%)이 화성암의 비율(30%)보다 훨씬 높은 이유는, 과거에 전 세계적인 홍수로 인해 지구 전체가 퇴적층으로 뒤덮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5. 기타 여러 가지 증거들
1) 23.5도 기울어진 “지축의 경사”
2) “기후의 변화”와 계절에 따른 “하루 길이의 변화”
3) “높은 산의 형성”[도날드 패튼(Donald Patton)의 저서 〈성경적 홍수와
빙하기, The Biblical Flood and the Ice Age Epoch〉 참조]
4) 해저에 있는 수백 개의 “협곡들”
5) “높은 지대에 있는” 호수들
6) 반대 방향에서 표류해 온 “미아석들”(동일한 지역에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해 온 자동차 또는 집채만 한 바위들)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지 않았다(벧후 3:4). 이 땅, 곧 “지구”는 두 번의 대격변을 겪었는데, 한 번은 “전 우주적인 홍수 때”(창 1:2, 벧후 3:5,6) 그리고 또 한 번은 “전 지구적인 홍수 때”(창 7:1-8:14, 벧후 2:5) 겪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장차 현재의 하늘들과 땅을 “물”이 아닌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현재 있는 하늘들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보존되어 있으되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에 불사르려고 간수되어진 것이니라?(벧후 3:7). 그날에는 하늘들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우주의 모든 구성 요소들도 녹아내릴 것이다(벧후 3:10). 이 일은 반드시 일어날 것인데, 이에 성경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그때 이 모든 것이 녹아 버리리니 너희가 모든 거룩한 행실과 경건에 있어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겠느냐??(벧후 3:11)라고 묻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구원을 받고 성경대로 믿으며 살아가는 가운데 그날을 대비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인 것이다. ?네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암 4:12).
---「제2권, 25-29페이지에서]
영적 중립 지대에 서 있는 “롯”
1) 조롱하는 자들의 자리에 앉은 롯(시 1:1)
(1)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던 첫 번째 심판 이후 타락한 인간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두 번째 심판이다. 롯의 날들에도 노아의 날들처럼 타락한 인간들이 “다른 육체”를 따름으로써 멸망하게 되는데 불로써 멸망하게 된다(유 1:6,7).
(2) 타락한 천사와 사람의 딸들 사이에 음행으로 태어난 “다른 육체,” 이들 역시 성적으로 타락한 존재들로서 이들에 의한 극도의 성적 타락이 지상에 만연해졌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동성애로까지 발전하여 결국 소돔은 “저주받은 성읍”이 된 것이다. 이런 영적 타락의 현장에서 롯은 빠져나오지 않은 채 20년 이상 머물면서 괴로워하고만 있었다(벧후 2:8).
“저주받은 성읍”으로는 “소돔” 외에도 “여리코”와 “큰 창녀 바빌론”(로마카톨릭)이 있다. 저주받은 성읍인 큰 도성 바빌론은 노아의 날들과 롯의 날들처럼 재림에 앞서 완전히 멸망당할 것이다.
2) 잃어버린 영적 분별력(왕상 3:9, 겔 44:23)
(1) 롯은 두 천사를 맞아들일 때 매우 극진하게 대접했다(창 19:1-3, 히 13:2). 그뿐만 아니라 음욕으로 가득 찬 동성애자들의 요구를 막아서면서 “그처럼 악하게 행하지 말라”며 천사들을 철저히 보호했다(창 19:7).
(2) 반면에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인 두 딸에 대해 롯은 오히려 “너희 눈에 좋을 대로 행하라”고 하면서, 악인의 음행에 자녀들을 내어 주려했다(창 19:8).
3) 성별을 유지하지 못한 롯(벧전 1:15)
→ 그는 소돔에서 죄인들과의 “영적 거리 두기,” 곧 성경적 성별을 유지하지 못했다(고후 6:14-16). 이는 롯이 했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그가 사악한 자들을 향해 “형제들”(창 19:7)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4) 실추된 영적 권위(삼상 2:22-25)
(1) 아브라함과 함께 이집트에서 나올 때 롯은 부유했고, 소돔에서도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창 19:9).
(2) 롯은 나이 든 자로서 믿음의 본이 되어야 했고, 또 가정을 잘 다스려야 했다. 하지만 그의 사위들이 보기에는 농담하는 자처럼 보일 정도로 그의 영적 권위는 이미 심하게 실추되어 있었다(창 19:14). 그는 영적 삶에서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5) 여전히 머뭇거리는 롯(소돔 → 소알 성읍 → 산속)
(1) 롯은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모두 데리고 성읍을 빠져나가야 했지만, 사위들의 거부로 아내와 두 딸만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멸망의 아침이 밝아 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롯은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었고, 이에 천사들은 손으로 그를 강제로 이끌어 성읍 밖으로 구출한다(창 19:16).
(2) 성읍 밖으로 인도된 롯은 산으로 도피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행하려고 했다(창 13:10-13). 결국 롯은 소돔이 멸망한 후에야 천사들이 처음에 지시했던 대로 움직였는데, 잠시 머물렀던 소알에서 나와 “산”으로 처소를 옮긴 것이다.
---「제3권, 44페이지에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야곱은 말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담담하게 술회하기를, “130년간의 순례길 세월이 짧고 험악했다.”(창 47:9)라고 말했다. 찬탈자요, 속이는 자로 살았던 야곱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 또 “이스라엘”(창 35:10)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얻고 믿음의 사람이 되기까지 그 전 과정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인내와 기다리심, 돌보심과 인도하심, 야곱을 위한 그분의 열심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짧고 험악한 세월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야곱은 발걸음 하나조차 뗄 수 없었을 것이다. 야곱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의 내가 되었고 또 내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그들 모두보다 내가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그것은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다?(고전 15:10). 야곱은 “발꿈치를 붙드는 자”(창 25:26)로서, 그의 이름은 “밀렵꾼,” “침입자,” “찬탈자”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노라.?(롬 9:13)라고 말씀하셨다. 야곱은 눈이 멀었을 때와(창 48장) 다리를 절었을 때는(창 32장) 위대한 “믿음의 용사”였지만, “깨어서 정신이 말짱할 때와 건강할 때는” 제트 엔진을 장착한 여우 같았다(피터 S. 럭크만).
---「제4권, 6페이지」중에서
3. 회개에 이르게 하는 “진노의 잔”(11-14절)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집트로 돌아올 때와는 달리 요셉의 형제들은 융성한 대접과 풍성한 식량을 얻게 되었다. 특히 시므온과 베냐민을 보게 될 아버지 야곱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은 가벼운 걸음으로 고향으로 향했다(43:34).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마 26:55) 그들은 결코 그와 같은 악을 행하지 않았다고 확신했지만, 결국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 곧 “진노의 잔”이 발견되고 말았다(12절). 요셉의 의도에 따라 베냐민이 고소를 당했지만(마 27:12, 행 26:7), 그들은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들은 베냐민만 버려둔 채 식량과 모든 것을 가지고 고향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드디어 그들은 조금씩 변해 가고 있었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가 된 것이다(눅 15:14-17). 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는 없나이다.”(창 42:13)라고 하면서 요셉에 관해 고하던 그들의 솔직하지 못한 양심을 섭리 가운데서 살아나도록 이끌고 계신다. 이처럼 죄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롬 10:9,10).
4. 요셉 앞에 서 있는 죄인들의 회개(15-33절)
이번에도 유다가 형제들보다 앞서서 그들의 유죄를 자백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나이다.”(16절)라는 유다의 고백은 요셉에게 그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회개의 고백이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그들을 위해 마련된 은혜를 받을 마음이 준비되었음을 보여 주는 진솔한 고백이었다. 이것은 죄인들이 하늘의 문 앞에 다다른 상황과 유사하다. 죄를 공개적으로 자백하되, 그 어떤 책임 회피나 핑계를 대려는 시도가 전혀 없다. 오직 세리와 다윗처럼 자신의 죄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가득할 뿐이다(눅 18:13, 시 51편).
그런데도 요셉은 그것이 온전한 회개인지 알고 싶었고, 이에 잔이 발견된 베냐민만 남고 돌아가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마음 상태를 살펴보았다(17절). 이때 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막내 베냐민에 대한 아버지 야곱의 지대한 사랑을 호소하며, 자신의 목숨을 베냐민을 위한 담보로 내놓겠다고 말했다(33절). 이제 요셉은 형제들 앞에 자신을 드러낼 결정적인 순간이 왔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런 장면을 통해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죄인의 진정한 마음만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눅 18:13).
---「제5권, 47페이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