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우리 할머니, 강은자 여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노란 하이힐을 신고 에그 셰이크를 흔들며 춤을 추는 할머니는 그야말로 보이는 음악, 들리는 음악 그 자체였다. 꽹과리에 맞춰 장구를 치는 할아버지, 하모니카를 부는 할머니, 탬버린으로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며 박자를 맞추는 할머니, 트라이앵글을 치는 할아버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한 앙상블이다.
“얘, 선욱아! 커다란 물고기가 말이여. 아니지, 호랭이가 말이여. 날쌔고 커다란 호랭이가 작은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 말이다. 어쩔 거 같으냐?” “뭐, 잽싸게 달려가서 ‘앙’ 하고 물겠지.” “그러겄지? 재빠르게 잡을 것이여. 아무리 더 크고 힘이 세도 토끼에게 ‘야! 간식거리! 이리 와 봐!’ 하지는 않겄지?” 할머니 말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할머니는 말을 이었다. “토끼가 아무리 작아도 잡히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도망갈 테니 말이여. 호랭이가 작은 토끼 한 마리 잡을 때도 열심히 달려가는 것처럼 할미도 뭐든지 열심히 할라고 혀.”
음악을 좋아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즐겁지 않다. 즐거움이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즐겁지 않은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런데 여기 와서 이 할머니들을 보니까 왜 이렇게 억울할까?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쁠까?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연습하면 이렇게 놀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할머니들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비올라 소리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맞이하고 있는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몸에서 긴장감이 떠나고 그 자리에 용기가 생겼다. 다양한 합주 연주를 해 봤지만 꽹과리 소리로 연주를 시작하다니. 나는 편안해진 기분으로 다시 비올라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활을 갖다 대었다. 꽹과리의 지지를 받아 나의 음악을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망설임을 내던졌다. 두려움을 던졌다. 걱정을 던졌다. 그저 비올라를 켜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더욱 흥겨워졌다. 나는 내 몸에 나를 맡겼다. 폭우가 쏟아진다 해도 마음껏 비올라를 켜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는 순간, 무언가가 내 안에서 움직였다. 마치 댐의 수문이 열리고, 막혀 있던 물살이 출렁이는 것 같다.
‘아, 재미있다. 즐거워, 즐거워, 즐거워.’ 내 속에서 오장육부와 수많은 세포가 와글와글 춤을 추는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또 알았다. 내가 아주 건강해졌음을, 회복되었음을. 어깨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마음이 즐거우니 아픔이 사라져 버렸다. 눈을 감고서 비올라에 집중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말이다. 내 마음이 변하니 모든 게 변했다. 활의 느낌도 아주 좋다. 두툼한 활 털이 네 개의 줄과 빈틈없이 맞물리며 정교하게 춤을 추었다. 항구를 떠난 배가 물살을 헤치며 넓은 바다를 항해하듯 활에서 피어나는 선율이 거침없이 흘러갔다. ‘위대한 항해.’ 그 문장이 선물처럼 내게 왔다.
놀라움과 기쁨과 감동이 구름처럼, 바람처럼, 파도처럼 뭉게뭉게 밀려왔다. 오빠가 일어났다. 깨어난 것이다. 팔뚝 피아노의 서툰 연주를 느끼며, 그리고 저 비올라의 연주를 들으며. 음악이 오빠를 깨어나게 했고, 우리를 하나 되게 했다. 301호의 벽이 허물어지고 공원과 병동이 하나가 되었다. 비올라 녀석과 오빠와 나. 우리는 음악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