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재미있는 영화제를 알려 보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영화제를 알면 알수록 진정 즐길 수 있는 영화제를 찾고 싶었다. 해마다 화려하게 개막하는 영화제 속 레드카펫처럼 영화배우를 비롯한 관계자들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막걸리 한잔 편하게 걸치면서 볼 수 있는, 스스럼없이 언제나 갈 수 있는 만만한 동네 영화제 말이다. 그 유쾌한 신선함과 편안함을 직접 겪으며 소중히 기록하고 싶었다. 그곳에는 아직 세상에 발굴되기 전인 신인 감독과 정식 데뷔 전 배우들의 연기, 심의를 넘어선 기상천외한 작품의 매력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 그들 모두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를 기다린다.
---「프롤로그」중에서
밤에 이곳을 찾을 관객들은 여름밤 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에 감탄할 것이다. 눈앞에는 그들이 선택한,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이 상영되고 있고 사이사이로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영사기 필름 돌아가는 소리가 운율을 맞추면 머릿속이 잠시 아득해질지도 모른다. 현세인 듯, 전혀 다른 세상에 온 듯 헷갈리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낄 것이다. 초여름 산속의 기분 좋은 서늘함을 견디려 돗자리 위에서 담요나 외투로 몸을 싸맨 채 술 한잔으로 몸을 데우는 사람들. 스크린을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할 관객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았다. 이곳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이 모든 것과 함께하는 것이다.
---「자연 속 건축가의 작품이 극장이 될 때_무주산골영화제, 전북 무주」중에서
여느 영화제처럼 화려한 무대 의상도, 레드카펫도 없다. 큰 상영관에서 수백 편의 영화를 상영하지도 않는다. 얼굴 익숙한 배우들마저 휴가 온 사람인양 편한 복장으로 마이크 앞에서 인사하고, 관객들 역시 바닷가 패션으로 그저 영화와 바다, 그곳의 여름 분위기를 즐긴다. 소박한 바닷가 상영관에서 물과 바다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하루에 한두 편 상영되는 느슨한 영화제. 해마다 거창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보다 ‘밤샘 상영’, ‘새벽 요가’ 같은 듣기만 해도 힐링되는 코너로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예매 경쟁도 없으니 치열함도 없다. 선글라스를 쓰고 새카맣게 그을린 모두가 밤에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 영화와 인생을 이야기한다.
---「바다, 서핑 그리고 영화_그랑블루페스티벌, 강원 양양」중에서
하나의 자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바로 옆 술집으로 가거나, 이제는 좀 자리를 마무리하자 싶어 나가다가 야외에서 술판을 벌인 다른 영화인들을 만나면 또 합석한다. 이렇게 영화인들의 술자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과연 그 자리의 마지막 술값은 누가 내는가 하는 게 항상 미스터리다. 어쨌거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자리에서 있었던 모든 대화는 ‘오프 더 레코드’, 무조건 비밀이다. 바로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한다. 영화제 일이 끝나 모두가 서울에 올라와도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단지 그날의 흥을 기억할 뿐이다
---「영화제 비하인드1 일하러 온 영화인들의 연간 뒤풀이 장소, 부산국제영화제」중에서
영화제는 시장 초입에 설치한 야외 스크린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에서 상영과 포럼까지 진행하는 건 무리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그것이 하나의 편견이었음이 드러났다. 포럼에서 상인들은 자신의 ‘일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그동안 묻어 두었던 생각들을 멋지게 피력했다. 처음에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듯 쑥스럽게 마이크를 잡았지만 일 이야기에서만큼은 자신 있고 여유로우며 생기가 넘쳤다. 코로나19로 가장 힘들었을,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산다는 자영업자들은 어느새 영화제를 통해 개인의 이익보다 모두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건을 파는 그들의 노동 철학은 영화화되기 충분했다.
---「극장이 된 시장, 아티스트가 된 상인_목동워커스영화제, 서울 목동」중에서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에서는 ‘경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구애’라는 단어를 쓴다. 때문에 경쟁전이 아닌 구애전, 심사위원이 아닌 구애위원이다. 작품들끼리의 경쟁이 아닌 관객의 사랑을 구한다는 것이다. 애절하다. 이 페스티벌에는 해마다 국내외 1천여 편에 달하는 작품이 출품되어 관객에게 구애한다. VR이나 미디어 파사드와 같이 기술적으로 화려한 영상예술작품부터 처음 보는 낯선 장르도 자신들을 지켜봐 주길 바라고,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나는 이 페스티벌에서 꼭 극영화를 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상예술이 과연 어디까지 가능한지 볼 수 있는 새로운 장르를 찾는다.
---「알 수 없는 네모난 외계영상들의 총집합!_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서울」중에서
본인들의 영화제를 자칭 ‘건전한 청년문화를 응원하는 불건전한 영화제’라고 명명하는 이들. 찾고 있는 영화 또한 범상치 않았다. 그들이 찾고 있는 영화는 바로 ‘모두의 흑역사’다. 거장들도 분명 흑역사가 있었다는 설명을 덧붙인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래, 이거야! 정말 모두의 흑역사를 파헤치겠다는 의지처럼 아예 한 섹션 공모전 이름이 ‘흑역사의 밤’이었다. 제1회 부산청년영화제 이전에는 어디서도 상영되지 않았고 상영될 일도 없는 작품, 돈이 없어서 촬영하다 만 작품, 힘이 없어서 편집하다 만 작품, 용량이 없어서 곧 하드에서 삭제될 작품,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작품, 이 외에 평생 자신의 흑역사로 남을 법한 모든 작품.
---「당당하고 뻔뻔한 청년들의 축제_부산청년영화제, 부산」중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 이해가 더딘 사람, 연로한 사람, 나이가 어린 사람 등 많은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한 영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보통의 상영시스템만으로는 그 많은 이들의 불편함을 단번에 해소할 수 없다. 그래서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또 한 번의 제작 과정을 거쳐 조금 더 친절하고, 조금 더 잘 보이고, 조금 더 잘 들리는 영화로 만들어 상영한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과정과 절차에 ‘모든 사람이 아무런 장벽 없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기본 취지가 들어 있다는 것.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자유를 존중한 유일한 영화제였다.
---「누구나 극장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권리_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서울」중에서
몇 년 만에 꽉 들어찬 극장의 한가운데 앉아 영화제를 소개하는 리드필름이 도는 순간, 괜히 울컥했다. ‘그래. 이거지. 이 맛이지!’ 그동안 참고 기다리던 장면이 아닌가. 영화제는 영화 축제다. 그러므로 이렇게 다른 관객들과 함께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다. 같은 이야기를 기대하고, 숨죽이며 공감하고, 때로는 같이 울고 웃는 현장.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수고했다고 박수도 열심히 치며 관객으로서의 마음을 전하는 미덕이 있는 곳이 영화제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