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탄(Kingdom of Bhutan)은 북으로는 중국 티베트, 동·서·남으로는 인도에 둘러싸인 작은 국가다. 히말라야산맥에 걸쳐 있으며 평균 고도가 2천 미터에 이른다. 부탄이라는 이름은 ‘티베트의 끝’이라는 산스크리트어 ‘보탄트(Bhot-Ant)’에서 유래되었다. ‘높은 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즉 ‘티베트에서 온 사람들이 사는 높은 땅’이라는 의미다.
--- 「부탄 정보 일반」 중에서
2.
파로 계곡(Paro Valley)의 900미터 절벽에 자리 잡은 탁상 곰파는 여느 관광지와 달랐다. 저 높은 곳까지 나무와 흙을 지고 다녔을 사람들이 보이는 듯했다. 인간에 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기대하지 않으니 기대 이상이 주어졌다. 아무리 유명해도 관광지에 관심 없던 나였지만, 탁상 곰파를 보는 순간 뭔가 훅 들어왔다.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올 이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다시 오고 싶은 마음 같은 것들이 휘몰아쳤다.
--- 「호랑이 둥지 탁상 곰파」 중에서
3.
소남이 우리를 데려간 법당에는 모두 파드마삼바바가 모셔져 있었다. 그는 나에게 팀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기를 권했다. 법당에 모셔진 분이 파드마삼바바든, 부처든, 예수든, 알라든 기꺼이 그럴 마음이었다. 나는 법당 세 곳에서 모두 삼배를 올렸다. 불자가 아니어도 절을 하고 나면 때때로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절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 중 자신을 가장 낮추는 자세다. 나를 완전히 낮추었을 때 비로소 가벼워졌다. 몇몇 일행도 같이 삼배했다. 그러고 보니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일행들과 같이 절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종교와 신념을 떠나 존재하는 모든 신을 인정하고 경배하는 마음이 좋았다.
--- 「호랑이 둥지 탁상 곰파」 중에서
4.
히말라야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설산을 떠올리지만, 히말라야는 지역에 따라 저마다 다른 매력이 있다. 서쪽과 동쪽이 다르고 위와 아래가 다르다. 서쪽에 황량한 산과 설산, 빙하가 있다면 동쪽은 정글과 눈 덮인 산이 조화를 이룬다. 부탄의 히말라야는 맹렬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보호되고 정돈된 느낌이다. 어쩌면 히말라야 지역에서 함부로 파헤쳐지지 않은 몇 안 되는 곳일지도 모른다.
--- 「히말라야의 수수께끼」 중에서
5.
저녁 무렵 첫 야영지인 사나(Shana 2,892미터)에 도착했다. 야영지에는 이미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A텐트(A모양의 텐트)는 혼자 지내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텐트 안에는 두툼한 매트리스와 카펫이 단정하게 깔려 있고, 심지어 베개도 있었다. 여러 나라의 히말라야에 다녔어도 베개를 주는 곳은 처음이었다. 주방 텐트에는 식자재가 종류별로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고, 식당 텐트 역시 호텔처럼 세팅돼 있었다. 그동안 히말라야에 다니면서 스태프들의 너저분한 모습에 익숙했던 내게는 꽤 놀라운 장면이었다.
--- 「바람의 고개 첼레 라」 중에서
6.
스태프들은 새벽 4시부터 출발을 준비했다. 특히 요리팀은 아침과 점심을 동시에 준비하느라 가장 바빴다.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지난여름 인도에서 만난 스태프들은 약속된 시간을 거의 지키지 않았다. 그들이 식사를 내오는 시간이 우리가 밥 먹는 시간이었고, 그나마도 수시로 바뀌었다. 출발 시간 역시 덩달아 늦어졌다. 부탄 스태프들은 성실하고 책임감 강하고 친절하기까지 했다. 무엇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그들은 자존심보다 자존감이 높아 보였다. 히말라야가 궁금해서 부탄에 왔는데, 스태프들에게 먼저 반할 것 같았다.
--- 「진흙탕 길도 괜찮아」 중에서
7.
몇 년 동안 낯선 이들과 다니며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속도에 따라 선두와 후미로 나뉘면 일단 팀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선두에 있을 때는 지은 죄도 없이 괜히 눈치가 보였고, 후미에 있을 때는 너무 빨리 가는 사람들이 야속했다. 떨어져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리가 형성되어 팀이 나뉘기도 했다. 선두에서 내달리던 사람이 나중에 후미의 입장이 되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함께 가야 할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
--- 「진흙탕 길도 괜찮아」 중에서
8.
문득 여행에서 인간의 모든 면이 드러난다는 나의 믿음에 의문이 생겼다. 누군가를 알고 싶으면 같이 여행하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럴까? 평생을 살아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 잠깐의 여행으로 누군가를 알 수있을까? 여행은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사람과 상황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감정 상태를 알아가는 과정. 나와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 여행에서 누군가의 민낯이 어쩌면 그의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삶의 여러 장면 중 하필이면 그 장면이 걸렸을지 모르니까. 장면 하나가 그의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있을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안 다지만, 그건 그 사람의 다른 장면을 몰라서가 아닐까.
--- 「고생을 권하다」 중에서
9.
지난겨울 엄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는 엄마의 등산복을 챙겼다. 당시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옷을 입고 히말라야를 걸을 생각이었다. 엄마의 옷이 내 몸에는 작아 식이조절이 필요했다. 이제는 엄마의 옷이 잘 맞았고 내가 걷는 히말라야를 온전히 보여드릴 수 있었다.
언젠가 친구가 그랬다. 너의 엄마는 다른 아주머니들과 일할 때 네 칭찬만 한다고. 히말라야에 가는 딸을 자랑스러워한다고. 그걸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알았다. 나한테는 한 번도 표현한 적이 없었어도 엄마는 늘 딸을 응원하고 있었다.
--- 「히말라야라는 이유」 중에서
10.
일행들을 기다리는 동안 야생화에 앉은 나비를 만났다. 히말라야를 걷다 보면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왠지 나비는 상서로운 징조 같았다. 우리의 여정이 무탈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 무리의 푸른 양도 만났다. 녀석들은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서인지 잠깐 우리를 의식하더니 다시 풀을 뜯었다. 히말라야에서 푸른 양을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이곳에 사는 녀석들은 달랐다. 사람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는 야생동물이라니. 부탄은 모든 곳에 선함이 깃든 듯했다.
--- 「히말라야라는 이유」 중에서
11.
소남은 걷다가 흙탕물에 빠진 개미들을 발견하면 일일이 꺼내주었다. 부탄 사람들은 모든 존재를 자비롭게 대하고 살생하지 않는다. 모두가 전생의 어머니였다고 믿어서다. 그들은 자연이든 사람이든 자신이 행한 대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누구도 죽일 권리가 없음을 알고 모든 생명을 존중한다. 곳곳에서 느껴졌던 선함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 「부탄의 가을」 중에서
12.
오랜만에 먹은 한식과 맥주 한 잔이 우리에게 작은 풍요를 주었다. ‘가끔’이 주는 행복이었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행복은 소소한 만족의 연속이었다. 햇빛 한 줌, 잘 마른빨래, 마른 땅을 걷는 쾌적함,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안도감, 딱 한 잔 마시는 맥주, 오랜만에 먹는 한식 같은 것들. 그러고 보면 부족함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더 컸다.
--- 「작은 풍요」 중에서
13.
부탄에서 걷는 동안 나는 매일 엄마의 등산복을 입었다. 다른 히말라야도 아니고 부탄 히말라야여서 좋았다. 길고 긴 히말라야 횡단 트레킹의 마지막이 엄마와 함께여서 다행이고 기뻤다. 엄마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침에 통화하며 안부를 물었을 때 목소리가 좋아서 안심했는데, 다음 날 새벽에 돌아가셨다. 2021년 12월 31일이었다. 슬픔은 늦게 찾아왔다. 혼자 있는 동안 자주 울었고, 여전히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후회했고, 아팠고, 미안했고, 보고 싶었다. 나는 어디선가 엄마가 보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잘 살 생각이다.
--- 「아름다움의 절정」 중에서
14.
히말라야에서 꽤 걸은 것 같은데도 막상 정리하고 보니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길지 않은 시간조차도 나는 늘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걸었다. 트레킹 중에 포터들이 도망가는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도 도와주는 이가 꼭 있었다. 여행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동행을 모집하고 있지만, 그들 덕분에 내가 원하는 곳을 모두 걸을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느 한순간도 히말라야에서 오롯이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언제나 도와주는 사람들이 옆에 있었다. 나의 히말라야 횡단은 ‘모두의 덕분’이었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