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는 자신이 답을 찾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 넘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순간부터 설교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저 앉아서 성경을 넘기면서 궁금증을 풀고자 했다. 좋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루어졌을까? 이 ‘무엇’은 무엇일까? 마침 찬송가를 불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와 아내인 킴벌리는 교회에서 나왔다. 목사는 교회 건물 밖에서 신도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목사의 손을 덥석 잡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하고 말했다. 그는 당황한 듯했다. 그래서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설명했다. 그러자 목사는 그런 수사적인 질문을 할 준비도 안했을 뿐더러 그럴 생각도 없었다고 밝혔다. 목사는 대답할 수 없었다고 거듭 말하면서도 나라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찾아봐요, 스콧. 그리고 답을 알려 줘요!”
--- p.22 「제1부 1장 무엇이 이루어졌는가?」중에서
잔 속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며 예수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말한 그 말,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탈출 24,8)를 분명히 상기시켰을 것이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감사를 드리는 장면에서 하신 말씀을 더 자세히 기록한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주가 담긴 잔을 가리키며 “내 피로 맺는 새 계약”(루카 22,20)이라고 선언하신 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5)라고 덧붙이신다. 이는 파스카와 관련하여 탈출기에서 밝힌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탈출 12,14)이라는 말씀을 상기시킨다. 예수님께서는 ‘계약’과 ‘갱신’이라는 새로운 예식을 세우셨으며, 이를 이스라엘의 고대 예식의 맥락에서 행하셨다. 이 장면이 바로 파스카 만찬이었다.
--- p.59 「제1부 4장 뒤바뀐 예식」중에서
팔레스타인 지방 출신의 순교자 유스티노의 2세기경 작품에서, 그가 살았던 시대에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짐 산에서 행한 희생 제사의 준비 과정을 기술한다. 유스티노는 짐승을 나무 꼬챙이 두 개에 꽂혀 매단다고 표현했다. 한 꼬챙이는 어린양의 척추를 따라 꽂고, 다른 하나는 등을 가로지르게 꽂았다. “어린양은 십자가 형태로 쇠꼬챙이를 꽂아 구워진다. 한 꼬챙이는 아래로부터 머리를 향해 꽂고, 다른 꼬챙이는 양 다리를 뒤로 하여 꿰매면서 등을 가로질러 꽂는다.” 요한 세례자의 외침을 들으러 온 사제와 레위인, 그리고 모든 신실한 유다인에게 친숙한 어린양의 모습은 바로 이러했다. 요한 세례자가 이러한 호칭을 불렀을 때, 그들은 다가올 미래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후에 유스티노는 분명히 깨달았다. “어린양을 완전히 구우라는 명은 그리스도가 겪을 십자가의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는 상징이나 그림자를 넘어서서, 다가올 희생 제사에 대한 생생한 모습이었다.
--- p.86~87 「제1부 6장 보라, 어린양이시다」중에서
파스카를 연구한 학자들은 최후의 만찬을 다루는 복음서에 이 양식이 담겨 있다고 여긴다. 20세기의 저명한 고대 유다교 법학자이자 랍비 데이비드 다우브David Daube는 복음서에서 언급한 파스카 만찬 순서를 다루면서 〈네 번째 잔의 누락〉이라는 연구를 발표했다. 다우브는 예수님께서 ‘계약의 피’(마르 14,24 참조)로 선포하신 잔은 분명히 《하가다》에서 언급한 세 번째 잔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왜냐하면 이 잔을 메인 요리를 먹을 때 감사 기도를 바치면서 마셨기 때문이었다. 바오로 사도도 주님의 만찬에 대한 토론에서 이 잔이 세 번째 잔임을 확신하는 듯하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1코린 10,16) 예수님께서는 잔을 들어 올리시며 기도를 바치신 후 제자들에게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하셨다. 다우브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말씀은 보통의 경우처럼 다음 과정에서 네 번째 잔을 마시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 나라가 완전히 도래할 때까지 (잔을 마시는 행위가) 미뤄질 것임을 가리킨다.”
--- p.125~126 「제2부 2장 포도주 잔」중에서
유스티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우리를 비롯한 이방인들에게 말씀하신다. 곧, 성찬례의 빵과 성찬례의 잔이라고 말이다.” 희생 제사인 성찬례, 주님께서 실제로 현존해 계시는 성찬례…….나는 이러한 가르침이 교부들 사이에서 일치한다는 점을 알았고, 교부들이 주장한 대로 성경 내용과도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초기 교부들(테르툴리아노, 이레네오, 오리게네스, 히폴리토)의 가르침에서 이 사실을 찾았다. 후대의 교부들(치릴로,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요한 크리소스토모)은 이 사실을 더 명확하게 표현했다. 성경 지식이 풍부했던 교부들은 성찬례를 끊임없이 현실적으로 해석했다. 그들은 ‘권능으로 가득 찬 진노의 잔’을 밝힐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성경을 근거로 제시하고자 했다.
--- p.157 「제2부 4장 성작과 교회」중에서
최후의 만찬으로 인해 성금요일에 일어난 십자가 처형이 희생 제사로 변화했으며, 부활로 말미암아 희생 제사는 성사로 변모했다. 영광을 입으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육신은 이제 모든 믿는 이와 통교하게 되었다. 사실 성찬례는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목숨을 내어놓으면서 갈바리아 산에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똑같은 희생 제사다. 바로 이 희생 제사를 통해 예수님의 거룩한 인성을 받들고 흠숭한다. 성찬례는 천국과 지상에서 드리는 대사제의 희생 제사다. 성찬례가 바로 미사의 거룩한 희생 제사다. 만약 성찬례가 단순히 만찬이라면, 갈바리아 산에서 일어난 사건은 그저 사형 집행에 불과하다.
--- p.187 「제2부 6장 그리스도교의 파스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