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교회가 전부터 해오던 말씀이 아닌 이 시대가 성경에서 불러내는 말씀을 들려줘야 해요.
--- p.40
성경 말씀은 고정돼있고, 시대는 변하고 있어요. 어제의 성경 말고, 오늘의 성경을 들려주세요.
--- p.41
저는 늘 궁금했어요. 과연 예수님의 어떤 모습을 닮자는 것일까 하고요. … 사실 우리는 예수님이 인간이 될 때 무엇을 감수한 건지 짐작조차 못해요. 전능자가 전적으로 다른 인간에게 몸을 의탁해야 하는 신생아로 온 그 ‘하강’은 그야말로 신비죠. 예수님을 닮는 건 이런 계급하강을 흉내 내는 거예요.
--- p.43
나의 하나님 대신 우리의 하나님을 찾는 것이죠. … 이제부터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우리의 하나님’을 찾기로 해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인 것만 알아도 기독교는 달라질 거예요.
--- p.48
이웃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 저는 이것이야말로 성경이 그리스도인에게 주문하는 단 하나의 간결한 요구라고 생각해요.
--- p.52
옷자락을 휘날리시며 저기 하늘 위 보좌 옆에 계신 예수님은 나중에 뵈옵기로 하고, 당장 눈앞에 현현해 계신 차별과 학대받는 예수님께 맘을 쏟아보아요.
--- p.52
루터가 교황청의 협박보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거스르는 일을 더 두려워했던 것처럼, 성도 개인도 교회의 가르침을 양심과 성경에 빗대어 상고할 수 있어야 해요.
--- p.64
우리 이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때와 더불어 당신의 종교개혁은 언제였냐고 서로 물어보기로 해요.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대답 하나씩은 가졌으면 좋겠어요.
--- p.65
너무 걱정 마세요.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동안 많은 사람의 회의와 의심에도 끄떡없이 보존되어 왔으니까요. 그러니 우리의 신앙에 대해 마음껏 상고하고, 회의하고, 의심하기로 해요. 우리들은 휘둘리지 않는 신앙 기준을 얻게 될 거예요.
--- p.68
진리는 앞으로도 우리의 확신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등장할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확신은 유연해야 해요.
--- p.74
착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도 그리스도인의 문법으로 하지 말고, 사람들이 아는 문법으로 해야만 해요.
--- p.77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어요. 우리의 바람직한 모습은 신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신을 대리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 p.81
교회는 아름다운 말의 과잉 상태에 있어요. 온통 은혜로운 말뿐이에요. … 하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은 찬양을 계속하다 보면 자신도 속아요.
--- p.84
그리스도교의 죄와 세상이 말하는 죄는 엄격성만 다를 뿐 같은 선상에 있어요. … 그러니 차마 자신의 죄가 주홍 같다 하기 전에, 자신이 벌레 같다 하기 전에, 갑질 안 하기, 탈세 안 하기, 배임 안 하기, 태업 안 하기, 커닝 안 하기 먼저 추천드려요.
--- p.88
누군가는 그래요. 그러다 길을 잃을 수도 있다고요. 정말로 그렇다면 차라리 저는 길을 잃겠어요. … 교회 안은 이미 안전하지 않아요. … 원래 진리가 있는 곳은 언제나 위험하다고 소문난 성문 밖이었잖아요. 성도들은 바보가 아니고, 그리스도교는 빈약하지 않아요.
--- p.100
나만 살았다는 간증은 저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오히려 감당 못할 시험에도 봉인된 선한 이유를 믿으며 근근이 살고 있다는 간증이 제겐 더 좋겠어요. 언젠가 저도 그래야 할지 모르니까요.
--- p.112
교회에서 듣는 말씀이 설교자가 ‘아는’ 말씀이라면, 세상에서 듣는 말씀은 누군가가 ‘사는’ 말씀이에요. 아는 말씀보다 사는 말씀에 더 끌리는 건 당연한 거겠죠?
--- p.120
하지만 과연 교회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교회는 꼭 교회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하나님 나라를 할 수 있는 대로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공동체예요. 교회가 하나님을 독점할 수 없고,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여러 도구 중에 하나라는 의미예요.
--- p.135
말씀 서열은 출석하는 교회마다 다르기도 하고 개인마다 다르기도 해요. 그리고 이 서열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투영하죠. 여러분의 말씀 서열이 하나님의 그것과 일치하기를…
--- p.155
이 편지가 저 개인의 푸념이 아닌, 합당한 문제 제기로 교회에 가 닿기를 바랐습니다. 신학 전공을 하지 않은 이가 감히 ‘교회 밖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며 편지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편지 쓰기를 멈출 순 없었습니다.
---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