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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의 연인들
리뷰 총점9.9 리뷰 27건 | 판매지수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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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96쪽 | 176g | 100*182*20mm
ISBN13 9791193024102
ISBN10 119302410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내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 아니, 바람을 피운다. 여자의 흔적을 찾으려 남편의 서재를 뒤졌다.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종일 ‘밀림’을 켜고, 햅틱 장갑을 끼고 노는 게 일인 남편의 서재는 막 이사를 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휑하고 물건이라 할 만한 게 거의 없다. 게임을 즐기기 위한 공간과 리클라이너 소파, 5단 원목 서랍장이 전부다. 나와 달리 남편은 모든 것을 메타버스라는 가상에서 처리하길 좋아한다. 친목, 쇼핑, 심지어 섹스도.
--- p.7

“다미, 게임이에요. 몰입하지 말아요. 밀림의 아이들은 모두 NPC예요.”
그렇다면 어째서 사랑을 원하도록 설계해 둔 거지, NPC는 겨우 게임 데이터일 뿐인데 말이야. 어째서 아바타가 이렇게 가혹하게 죽도록 설계해 둔 거냐고!
--- p.29

밀림 직원들은 누구나 하나씩은 비밀 계정을 갖고 있다. 사생활을 침범당해 괜한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비밀 계정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다. 결혼한 후배 녀석이 다른 팀 독신녀와 몰래 밀림에서 부부의 연을 맺는 걸 알았어도 모르는 척하는 게 매너였다.
--- p.38

다미가 울기 시작했다. 나와 동갑인 다미는 벌써부터 갱년기가 오는지 전보다 자주 눈물 바람이었다. 멀리서 키미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키미는 아내의 감정 변화에 즉각 반응한다. 신경안정제를 주거나 혈압을 체크하고, 슬픔을 가늠하면서 안정에 도움이 되는 음악을 틀어 준다. 나의 어설픈 위로보다 키미의 데이터베이스 기반 대처가 훨씬 정확하다. 우리 사이에 끼어든 키미가 내게 손을 내민다. 내 퇴장이 그녀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 p.63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다미는 남편 석영이 바람을 피운다고 확신한다. 집에서 나는 소리를 항상 녹음하는 인공지능 로봇 키미의 데이터 안에서 석영의 목소리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그는 ‘초코페’라는 여자를 향해 그녀가 자신을 외로움에서 구했노라 고백하고 있었다. 가상현실 플랫폼 ‘밀림’을 통해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와는 다른 이름과 다른 모습으로 밀림 안에 숨어 있는 불륜 커플을 찾기란 보통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유명 건축가 고선의 딸인 다미에게는 돈이 많았고, 대부분의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다미는 밀림에 접속해 석영과 초코페를 손쉽게 추적한다. 그 추적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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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시대, 우리 앞의 갈림길

우리는 메타버스 속에서 산다. 우리의 움직임은 스마트워치를 통해 데이터로 변환되고, 우리가 설정한 아바타는 가상 세계 안에서 우리를 대신하며, 우리 눈앞의 거리는 촘촘한 정보가 달린 인터넷 지도로 재현된다. 새로운 기술은 인간에게 수많은 혜택을 선사함과 동시에 다양한 숙제를 안겨 주었는데, 대표적인 문제는 메타버스와 현실 사이의 불균형으로 인한 충돌이다. 『밀림의 연인들』은 바로 그 지점에 초점을 맞춘다.

『밀림의 연인들』의 주인공 석영은 메타버스 플랫폼 ‘밀림’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초코페’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자에게 밀어를 속삭이며 그동안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외로웠다고 말한다. 초코페 또한 사랑받고 싶다는 갈증을 밀림에서 해소한다. 두 사람이 밀림에 매혹된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밀림의 아바타들은 연애·결혼·육아를 경험할 수 있고, 퀘스트를 해결해 포인트를 모아서 더 나은 생활 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확실한 셈이다. 보상을 원하지만 큰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다면, 밀림 안에서 공공연히 거래되는 약물 ‘B스팟’을 구하면 된다. 사랑에 빠지길 원하는 사람과 손쉽게 돈을 벌려는 사람을 두루 만족시켜 주는 물건이다.

애정과 성취를 바라는 마음에 죄를 묻기는 어렵다. 현실에서 충족하기 어려운 욕망을 메타버스에서라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욕망의 어떤 부분은 파멸과, 어떤 부분은 치유와 조금 더 가까우니 이 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따름이다. 『밀림의 연인들』은 석영과 초코페, 석영의 실제 아내인 다미의 시선으로 메타버스 시대의 욕망이 나아갈 수 있는 여러 방향을 보여 준다.

파멸로 향하는 욕망

석영은 B스팟 덕분에 초코페를 만나게 되었다. 약물 부작용으로 쓰러져 있는 석영을 초코페가 발견해 깨웠던 것이다. B스팟은 현실 세계의 마약처럼 숱한 문제를 일으키지만 밀림 운영진은 이 약물의 유통을 눈감아 준다. 거래량이 많아질수록 밀림의 수익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밀림의 모습은 ‘현실 사회의 규범을 메타버스에 맞게 적용하는 데 뜸을 들이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메타버스의 매력은 때로 현실 도피를 부추긴다. 다미는 밀림에서 좀체 빠져나올 줄 모르는 석영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세컨드 와이프 사진 봤어. 귀엽더라. 아닌가. 내가 세컨드인가? 당신은 밤에 잠들어 있는 시간 빼고는 항상 거기에서 사니까. 거기가 본거지인 거지?” 한 세계에서 얻은 기쁨을 다른 세계로 확장할 방도를 찾지 못한다면 한쪽 세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무너진 세계에 남은 사람의 불만족은 쌓이고 쌓여 증오가 된다. 사랑과 증오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우니, ‘애증’이라는 단어의 존재가 그 방증이다. 다미와 석영과 초코페가 한때 품었던 애정은 메타버스와 현실 세계 간의 차이라는 벽에 부딪힌 결과 배신감을 거쳐 깊은 분노로 변한다. 이 분노에서 비롯된 세 사람의 치열한 수 싸움이, 『밀림의 연인들』을 흥미진진한 스릴러로 만들어 주는 주요 요소이다.

욕망했기에 가능해진 치유

밀림을 매개로 만난 세 주인공의 이야기가 비록 스릴러라 할지언정, 밀림을 만악의 근원으로 돌려서는 안 될 일이다. 밀림은 세 사람 모두에게 또렷한 행복을 주었다. 신혼 생활을 만끽했던 석영과 초코페는 물론이고 뒤이어 가입한 다미 또한 밀림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미가 다른 여성 아바타와 어울려 깔깔 웃으며 서로에게 옷을 골라 주고 사진을 찍는 장면은 현실에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던 모습과 맞물려 깊은 인상을 남긴다.

행복은 마음을 치유한다. 스스로를 너그러운 눈으로 보듬으면 상처받은 가슴을 다독일 수 있다. 곳간을 채워야 인심이 나는 법이니, 자신에게 인심을 쓰기 위해서는 넉넉한 마음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부족함 없이 여유로운 마음 상태를 만드는 비결은 욕망에 있다. 내 마음이 바라는 것을 나에게 안겨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대상이 현실 너머 메타버스에 있다면 경계를 한번 넘어 볼 만하다. 한 세계에 갇혀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른 세계에서는 보일 수도 있다.

중요한 과정은 그다음이다. 메타버스 로그아웃은 가능해도 현실 로그아웃은 불가능하다면, 메타버스에서 얻은 기쁨을 현실로 가져오는 방법을 고민할 차례다. 『밀림의 연인들』의 주인공들은 밀림과 현실을 오가며 자신의 욕망을 붙잡고 달려 나간 끝에 실제 세계에서 행복의 단서를 잡는다. 우리도 어쩌면 메타버스를 그렇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전체와 구성원 각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그것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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