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역사와 관련한 몇 가지 핵심 개념을 이야기할 때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묻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여성은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은 경제사상사가 남성 경제학자 중심의 연구 주제와 특정 관심사만 다루는 등 여러 범주에서 여성의 부재로 왜곡됐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따라서 이 질문에 답하려면 경제학 서사를 깊이 파고들어 역사가들이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을 가져와야 한다. 우선 집단으로서의 여성에 초점을 맞춘 뒤 여성들이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고 그들 사이의 이해 충돌을 포함한 경험 차이를 식별해야 한다.
---「서장. ‘경제학에서 사라진 여성들’」중에서
서유럽에서 가계관리가 점점 더 여성의 독점적인 역할로 변화함에 따라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의 젠더 구분 또한 정치철학의 논지로 떠올랐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초기 사상가들의 전통적 견해를 따라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같은 근대 철학자조차 ‘남성’에 초점을 맞췄으며 시민은 전적으로 남성이라고 규정했다. (중략) 한때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의 친구였던 루소의 생각은 이후 애덤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책 《국부론》에 생활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에 대한 젠더 역할을 적용했다.
---「제1장. ‘정치경제학의 등장’」중에서
정치경제학은 가정의 성 분할을 당연시하고 이 분리된 영역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남성의 영역에 집중함으로써 재화의 생산 및 분배 문제를 ‘경제’로 귀속시켰다. 이제 정치경제학은 서양 중산층 백인 남성을 중심에 둔 채 서로 평등한 남성 노동자의 노동과 남성들 사이의 교환에 초점을 맞추면서, 여성과 아동을 경제에서 배제하고 흑인을 ‘타자’로 묘사하는 언어를 사용했다.
---「제2장. ‘권력과 주체성 그리고 재산권’」중에서
19세기 동안 영국과 유럽을 비롯한 미국에서 일어난 학교 설립과 교육 운동 및 교육받은 노동자들의 수요 증가에 관한 갖가지 계획은 공교육, 남녀 공학 대학, 사립 대학, 기술 전문 대학 등의 교육 시스템을 양산했고 여성과 흑인도 허용했다. 하지만 마침내 여성의 고등 교육 접근성이 증가했는데도 또 다른 저항에 부딪혔다. 돈이 문제였다. 딸 교육에 긍정적인 가정에서도 우선순위는 여전히 아들이었고, 자금이 바닥나면 딸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인종에 바탕을 둔 교육 분리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는 20세기에 가서야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제3장. ‘교육’」중에서
부유했던 여성들이 자본 통제력 상실을 경험하자 이들의 삶에 큰 변화가 생겼다. 미래에 대한 경제적 불안감이 깊어졌고, 전적으로 남편에게만 의존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은 소설을 중심으로 한 문학 작품에 반영됐다. 이런 소설은 정략결혼, 폐가, 저주, 마법, 유령, 비밀 통로 같은 소재를 통해 현실의 안정된 삶 이면에 놓여 있는 여성들의 두려움과 욕망을 표현했다. 특히 여성 작가들이 각 소설 장르 중심에 서 있었다. 이들이 창조한 상상의 세계에는 반드시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장인물이 존재했다. 이 장르가 이른바 ‘고딕 소설’이었고, 여성들이 이 세계를 지배했다.
---「제4장. ‘부와 여성의 관계: 자본, 돈, 금융’」중에서
정치경제학자들에게 노동자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젠더가 산업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 모두의 생활, 권리, 행동을 엄격히 구조화하는 양상을 지켜보고도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데이비드 리카도는 생산에서 남성 노동자만 언급했으며, “따라서 노동의 자연 가격은 노동자와 그 가족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식량, 필수품, 편의품의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고 규정했다. 경제를 이렇게 바라보면 무임금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은 자신의 노동으로 그 어떤 가치도 창출하지 못한다. 반면 작업장이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임금 노동자로 간주하는 대신 경제 지표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남성 노동자와 유일한 차이점은 임금이 훨씬 적다는 것이었다.
---「제5장. ‘생산’」중에서
비교적 최근 들어 소비자 젠더에 따른 가격차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생산자와 소매업자가 기본적으로 동일한 제품을 남성과 여성,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각각에 다른 가격을 책정하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여성스러운’ 스타일로 디자인된 제품을 구매하는 여성들은 그 기능이 똑같은 탈취제, 신발, 티셔츠, 중고차 등에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한다. 여성과 여자아이들 대부분은 늘 ‘여성스러운’ 제품을 구매하기에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런 정보에도 어둡다. 2020년 뉴욕주는 이 같은 행태에 대응하고자 이른바 ‘핑크 세금(pink tax)’으로 불리는 젠더별 차등 가격 책정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제7장. ‘소비’」중에서
페미니즘 경제학 또는 페미니즘 정치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이 포함하는 하위 분야의 전통적 범주와 맞지 않는다. 하위 분야 대부분은 후기 케인스주의 경제학이나 신제도주의 경제학과 같은 이론적 접근 방식에 기반을 두거나 행동경제학이나 신경경제학처럼 경제 현실의 한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페미니즘 경제학은 경제학을 하나의 사회 제도로 인식하고 성별, 인종, 계급, 나이, 건강, 지위 등의 개념이 수 세기에 걸쳐 경제 이론에 뿌리내렸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이에 속하는 주류 경제학을 위시한 경제 이론들을 모두 비판하고, 남성 중심 경제 모델을 초월하는 새로운 개념, 이론, 관점을 지향한다. 페미니즘 경제학은 나아가 시스젠더(cisgender) 여성뿐 아니라 트랜스젠더나 젠더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없는 제3의 젠더, 유색인종, 남부 개발도상국 및 저개발 국가 사람들의 경제 행태를 전부 포함하도록 경제 연구 초점을 확장한다.
---「제9장. ‘앞으로의 경제학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