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훈이 믿을 만한 가부장으로 재생하는 과정은 단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자본(신용)’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신뢰자본 획득 과정에 여성들은 그 누구도 포함되지 않는다. 즉 이러한 서사 속 결국 파산 상태에서 믿을 만한 가부장으로 재생한 기훈의 성장은 신용회복이라고 하는 투기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자본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 과정이 ‘돈’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라는 점을 메시지로 강조하면서 수용자에게 윤리적인 불편함을 소거시키면서 투기자본주의 게임을 도덕화된 감정으로 수용하도록 만든다. 또 이 게임 서사는 사실상 남성만이 접근 가능한 신뢰자본의 세계를 정당화하면서 여성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젠더화된 신뢰자본을 도덕화해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
---「권명아, 〈오징어 게임〉 어펙트, 마주침의 윤리와 연결성의 에톨로지」중에서
식물은 오늘날 또 다른 컨테이너 테크놀로지의 매개를 거치는 과정에서 탈물질화되어 그 조형성만을 추상적으로 남기기도 한다. 오늘날 SNS로 일컬어지는 미디어 테크놀로지는 배경화된 식물을 다시 한번 형상으로 출현시킨다. 식물은 SNS를 통해 복제되고 증식했다. SNS 가운데서도 인스타그램은 식물을 인간에게 한층 가깝게 접근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식물이라는 컨테이너 테크놀로지는 인스타그램의 격자 프레임이라는 디지털 컨테이너에 재매개됨으로써 배경 또는 용기로서의 비가시적 특징 대신 개체화된 형상으로서의 조형성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비닐 온실이 식물에게 부가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조형성이다. 그것은 특히 식물과 이질적인 존재로서 실내의 각종 사물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포착되고 강조되었다.
---「권두현, ‘실내 우주’의 SF 에톨로지」중에서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신필름에서 제작한 농인 소재 영화들은 장애를 무력하고 의존적이며 열등한 것으로 낙인찍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세했던 1960년대 당시의 시대적 한계 안에 있다. 그러나 농인과 청각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배어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만종〉이 수어 영화로서 다시 위치되어 ‘농인의 영화’를 탐색하는 길잡이가 되는 것처럼, 영화가 재현하는 삶의 이야기 못지않게 영화가 삶을 전달하는 방법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장애 중심적인 사회에서 관행적으로 제작되어온 영화를 장애의 렌즈를 통해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텍스트 안에 존재하는 ‘불구’를 확인하고 그 영화의 재현이 얼마나 장애 차별적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특정한 신체와 감각, 인지력을 ‘정상적인 것’으로 생산해온 권력의 역학을 그동안 영화 산업과 영화 연구가 도외시해왔음을 문제 삼고, 제작 현장과 관람 환경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더 나은 영화 연구’48로 나아가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이다.
---「이화진, ‘데프(Deaf)의 영화’를 찾아서」중에서
장애를 수치로 여겼던 그녀의 삶에 변화가 나타난 것은 노근리사건 진상규명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노근리사건의 피해를 말하며 장애를 설명할 언어를 획득한 그녀는 노근리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사회적 지지를 얻게 되자 주눅들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그간의 고통이 치유되는 듯한 느낌을 경험한다. 이제 의안을 끼지 않고도 시내에 나갈 수 있는 당당함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변화에서 트라우마적 기억의 표현은 그 자체가 고통을 수반하지만 사회적 지지를 동반할 때 그것은 치유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아가 개인의 피해가 역사적 피해의 증거로서 의미화되는 과정에서 그녀의 노근리대책위원회 활동 및 구술증언 행위는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누락된 고통의 기억을 복원하여 공식적인 역사 기억으로 격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해 그녀는 전쟁의 일방적인 피해자에서 전쟁에 대해 ‘말하는’ 주체, 즉 역사적 주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는 그간 여성을 전쟁의 희생자로서만 기억해 온 틀을 벗어나는 것으로 전쟁과 여성의 관계를 새롭게 사고할 시야를 열어준다.
---「소현숙, 신체에 각인된 전쟁」중에서
여성 팀 스포츠 프로그램인 〈골때녀〉의 가능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해서 변화하고 확장되었다. TV는 ‘문화적 공론장’ 역할을 한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매체 중 하나인 TV가 다양한 가치와 관점, 의미들을 제시하여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전달하는 토론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즉, TV 텍스트는 기존의 관점을 지원하거나 시험하면서 그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거나 변형한다. 때문에 〈골때녀〉의 시도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가진다. 마수미에 따르면 ‘계속 비판만 하고 제대로 된 접근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바로 뛰어들어 실험하고 네트워킹’ 해야 한다.
특히 〈골때녀〉가 시사나 교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웃음은 일종의 “난입”이자 문턱을 넘어 경계를 해체할 힘이다. 웃음은 극단에 놓인 가치를 껴안으며 변화 과정 자체에 주목한다. 웃음의 전복성은 미하일 바흐친(Михаи?л Миха?йлович Бахти?н)이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 작품 분석에서 말한 ‘웃음을 통해 거지가 왕이 되고 왕이 거지가 되는 카니발(carnival)’에서 발견된다. 웃음은 지배 의식으로부터 일시적 해방을 맞이하게 하고, 타자의 마주침을 통한 순간의 풍요로움으로 가득 찬 순간을 만든다. 시청자들은 편안하게 웃으면서 변화한 여성 주체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김은진, 미디어 속 여성 스포츠의 서사와 재현」중에서
사실 페미니즘에 대한 반지성주의적 태도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7 이는 1990년대 여성운동의 주체들도 겪었던 문제였다. 반지성주의를 백래시(backlash)의 일종으로 파악할 때, 1990년대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성희롱 등에 관한 법제화 운동은 백래시와 상호 견인하며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대는 “창녀들을 여성해방운동의 전위세력”으로 간주하고, “성을 거래하는 시장과 유통구조가 더욱 정교하고 다양해져야 한다”면서 “모든 여성이 ‘창녀 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주장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던 시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페미니스트들은 “도전받는 부분에 응수”하면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이 아닌 것을 구분 지어야만 했다. 이렇듯 “페미니즘이 어디에 와 있는지 조사하는 일”12이 더욱 긴요했던 것은 그 당시 ‘여성학’이 제도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총여학생회의 요구로 대학 내 교양과목으로서 ‘여성학’이 신설되었으며 학내 여성연구소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이르면 여성학은 급속도로 성장하는데, 학위 과정으로서의 여성학 프로그램과 학과 개설이 전국 단위로 확산되었으며, 타 분과학문에서도 ‘젠더’ 연구가 태동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페미니즘을 표방하며 출간된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페미니스트들이 우려를 표했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소영, 페미니즘은 그 이름이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