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이 조금 부은 것 같아.”
“괜찮아?”
“뭐, 별거 아니야. 파스 붙여 두면 낫겠지.”
나는 유키가 가져온 구급상자에서 파스를 꺼내서 발목에 붙였다.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하자마자 이러네. 운도 없게.’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곧 나을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별거 아닌 통증이, 내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 p.12
1년이나 학교에 다니지 않았는데 수업은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의족으로도 달릴 수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육상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앞세워 그런 불안을 날려 버리려 애썼다.
‘괜찮아. 난 할 수 있어.’
--- p.16
학교에는 돌아갈 수 있어도, 평소와 같은 일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평소처럼 대해 주기를 바라도, 모두가 나를 의족을 착용한 장애인으로 취급한다. 당장이라도 망가질 것처럼 조심스럽게 대하려 한다. 난 그냥 그대로인데. 나루세 하야토는 그냥 너희와 똑같은 사람인데.
--- p.31
“아얏!”
오른쪽 발목에서 쥐가 난 것처럼 찌릿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손으로 오른쪽 발목을 감싸려 했지만 헛손질만 할 뿐,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아, 맞다. 나는 오른쪽 다리가 없지…….’
없는 발목이 아플 리가. 말도 안 되는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놀라기는 했지만, 물리 치료사 선생님이 말한 ‘환상통’이라 불리는 증상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손이나 발을 절단한 뒤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아플 때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없어진 부위가 아플 수는 없으니까, 이 통증은 마음과 뇌가 만들어 낸 것이다.
--- p.43
미움을 받는 것도, 무시를 당하는 것도,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와 반 친구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 벽을 눈치채지 못한 척하는 것이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나는 곧 깨달았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유키 역시 그 벽 너머에 있었다.
--- p.48
“혹시 다리를 절단하지 않았으면 종양이 전이됐을까요?”
“아빠는 말이야, 하야토가 다리를 절단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때 네가 열심히 생각해서 결정한 거니까.”
“네…….”
“그러니까 자신을 가져. 어차피 어느 쪽의 인생이 더 나았을지는 절대 알 수 없잖니. 양쪽 인생을 다 살아 볼 수는 없는 거니까, 어떻게 알겠어.”
“그건 그렇죠.”
“어차피 알 수 없다면 죽어라 고민했던 너 자신을 믿는 수밖에 없어. 자신이 선택한 길을 믿고, 거기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 p.56
“싫어졌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달리는 것은 좋아하는데 주위에 신경이 쓰여서 그만둔 거라면, 환경을 바꿔서 다시 달려 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확실히 나는 주위의 ‘눈’이 신경 쓰여서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달리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 p.96
“어떻게 달리는지는 상관없어. 그건 노력해서 고칠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의족으로 달리기를 시작하는 건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거든. 그러니까 네가 오늘 의족을 착용하고 달렸다는 것은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야.”
“자랑스럽다고요?”
“그래. 의족을 쓰게 되면서 달리기뿐만 아니라 스포츠 자체를 그만두는 사람도 진짜 많거든. 그런데 하야토는 용기를 갖고 다시 달렸잖니. 진짜 멋있었다.”
모두가 나를 따뜻하게 지켜봐 주었다. 내가 조금은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했다.
--- p.128
“오늘 말이야, 하야토가 달리는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어. 네가 달리는 모습을 좀 더 보고 싶다고.”
“내가 달리는 모습?”
“앞을 보고 달리는 모습이 굉장히 멋있었어.”
“자세가 그렇게 엉망진창이었는데도?”
“그런 건 상관없어! 꿈을 향해서 똑바로 앞을 보고 달리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이야. 그래서 달리는 모습을 좀 더 보고 싶어졌어. 아니, 나만 볼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야토가 달리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 너는 분명 언젠가 세계를 무대로 달릴 수 있을 거야. 미래에 패럴림픽에서 달리는 모습이 보이는 기분이었거든. 그러니까 앞으로도 힘내서 계속 달렸으면 좋겠어.”
가와무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 p.161
“미안해. 처음에 너무 놀라는 모습을 보여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아니야, 괜찮아. 익숙하지 않으면 놀랄 만도 하지.”
“응, 하지만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중요한 것은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꼭 잘린 다리가 아니더라도,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다들 불안해지고 무섭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법이다. 특별히 차별 의식이 있거나 불쌍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처음 보는 것에 놀랐을 뿐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p.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