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작가의 작업에서 역사적 외상의 기억은 이렇듯 강박적으로 반복된다. 민간인과 군인이 구분 불가능해진 결과로 발생한 ‘양민학살’과 내전의 기억이 9·11이 촉발한 전 지구적 내전과 겹치는 과정은, 이후 전쟁이 직접적으로 다뤄지지 않는 경우에서조차 수많은 경계가 무화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렇게 이들의 작업에서 일과 노동, 과거와 현재, 인간과 비인간, 일상과 비일상, 현실과 꿈, 진실과 거짓은 서로 삼투하며 경계를 넘나든다.
---「곽영빈, 「눈먼 과거와 전 지구적 내전의 영원회귀」, 81쪽」중에서
영화관의 스크린은 현실 세계를 향한 ‘창’인 동시에 우리가 그 창을 바라보고 있음을 ‘투명하게’ 비춰주고 있다. 스크린은 닫힌 공간 안에서 작동하는 가상의 창문이다. 그러나 갤러리는 항상 열려 있다. 영상 작품이 전시될 때는 적당한 어둠이 조성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기와 빛이 흐른다. 들어오는 자와 나가는 자가 교차되고, 안과 밖이 뒤섞인다.
---「남수영, 「전시되는 풍경들의 빛과 공기 … 그리고 뒤따르는 현전의 인식들」, 192쪽」중에서
1948년 여수, 1966년 남베트남, 2014년 진도 맹골수도, 세 개의 시간, 세 개의 장소, 세 사람을 파도로 연결한다. 세월호를 집어삼켰던 진도 앞바다,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사람들을 집어 던졌던 여수 앞바다, 전쟁의 무대가 되었던 남베트남 앞바다, 이곳에는 한결같이 파도가 일렁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임흥순은 제목을 정하지 않고 따로 있는 세 인물을 잇는 작품을 만들어 가던 중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파도』(1931)를 알게 되었고, ‘파도’라는 제목이 이 작품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나라, 「역사의 운율, 색채의 기미」, 227쪽」중에서
과거의 사건을 다른 미디어를 통해 다시 구성하는 기법을 포괄하는 재연은 파스트의 많은 작품에서 활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재연은 특정 사건에 대한 미디어 자료가 부재하거나, 심리적 여파가 너무나 강력하여 자료의 재현을 벗어나는 사건을 다룰 때 활용된다. 그러나 다큐멘터리 불확정성의 맥락에서 볼 때 재연은 자료의 부재 또는 사건의 재현 불가능성을 보충하는 기능을 넘어 자료, 증거, 사실, 진실의 부분성, 불완전성, 개작 가능성을 표현하거나, 기억을 전달하고 구성하는 발화자와 매개자의 주관적인 차원을 전제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폭넓게 활용되어 왔다. 파스트의 작품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 놓이지만, 초기 작품부터 그의 재연 활용 방식은 과거 사건의 단순한 극화나 실제 당사자를 배우로 대치하는 것을 넘어선, 훨씬 섬세하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변주되어 왔다.
---「김지훈, 「오메르 파스트와 다큐멘터리 불확정성」, 322~323쪽」중에서
거울은 쌍을 만든다. 여러 거울을 함께 설치하면 증식하여 종잡을 수 없는 미로를 생성하니, 단 두 점의 거울로도 사물을 무한히 배로 늘릴 수 있다. 오메르 파스트의 신작 〈차고 세일〉(2022)은 진정한 거울의 방으로, 차고 안과 주변을 배경으로 한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결혼에 대한 이중의, 이원화하는, 도플러 효과가 입혀진 연구다.
---「톰 매카시, 「결혼의 신과 축혼가」, 356쪽」중에서
예전에 작업 초기에는 미술계 선배들한테 작업이 ‘멜랑콜리하다’ ‘소박하다’ 또는 ‘체념의 미학이냐’ 같은 말을 듣기도 했어요. 그게 저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서 10년은 좀 더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방식의 작업을 했는데, 그게 좋은 면도 있지만 저한테 맞는 옷은 아닌 것 같았어요. 감정, 마음에 대한 기록의 측면도 있는 것 같고 또 어떤 부분에서 저는 소박한 게 좋거든요. 나중에 돌아보면 이 소박한 것들이 쌓여서 또 하나의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임흥순과의 대화」, 380쪽」중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진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이 진실이라는 관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을 키워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진실이란 근본적으로, 즉각적으로, 항상 깨지기 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메르 파스트와의 대화」, 411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