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각 예술 분야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일본을 경유한 지식 수용으로 인해 그동안 잘못 알려진 것들이 꽤 있다. 그중 하나가 ‘구성주의’라는 용어다. 필자의 전작, 『한국 구축주의의 기원』(2022)에서 언급했듯이, ‘구성주의’란 용어는 무라야마 토모요시가 1923년 독일에서 보고 접한 ‘구축주의’를 일본에 소개하면서 개조한 미술 유파인 ‘구성파’와 관련된 것일 뿐 본래의 기원과는 의미적 거리가 멀다. 이러한 ‘구성파 ’내지는 ‘구성주의’가 한국에 들어와 시각 예술과 문학 등에 문예 유파로 소개되면서 상황은 더 이상해졌다. 의미적으로 더 탈구되어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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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베시』는 1917년 10월 혁명 전후에 러시아에서 전개된 이른바 ‘비대상 예술’의 흐름과 구축주의 운동 내에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이를 서구 예술과 연결해 확장시킨 ‘국제적 구축주의’ 형성 과정에 가교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한 해설에 앞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러시아 구축주의와 접속한 서구의 국제적 구축주의가 전개한 ‘사물의 예술화’는 애초에 근본 목적이 구시대 예술이 추구한 ‘예술을 위한 예술’ 내지는 ‘예술 지상주의’와 과거 궁정 시대 부르주아의 ‘럭셔리’로부터 ‘사물과 예술’ 모두를 해방하는 데 있었다는 사실이다. 즉, 그 목적은 오늘날 자동차 회사 광고처럼 “럭셔리는 사물이 아니다”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조직’, 곧 ‘사물을 통한 삶의 예술의 구축’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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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구축주의의 핵심인 로드첸코와 마찬가지로 그의 출발점과 그 영향력의 근원이 말레비치와 타틀린이었지만 전개 방식은 서로 달랐다. 로드첸코보다 한 해 먼저 태어난 리시츠키였지만, 그가 구축주의로 향한 관문인 비대상 예술의 길을 찾은 시기는 로드첸코보다 좀 늦은 1919년경부터였다. 로드첸코에게서는 1915년 무렵에 이미 구축주의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어쨌든 리시츠키의 비대상 예술의 직접적인 계기는 주로 비텝스크에서의 말레비치의 영향이었고, 그의 작업은 이전과 달리 절대주의 기하 추상으로 갑작스레 전환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갑작스러운 것임은 리시츠키의 1919년 이전의 삽화 등이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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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리시츠키는 자신을 ‘구축자’(constructor)라고 칭하고, ‘프로운’이라는 우주선을 타고 절대주의와 구축주의 사이에 화해와 접점의 궤도를 비행하다가 마침내 국제적 구축주의의 대지에 안착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20세기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기원인 신타이포그래피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건축의 경우, 그의 궤도는 신타이포그래피만큼 선명하지 않다. 그의 신타이포그래피 원리는 오사(OSA)와 같은 구축주의 건축에 더 가까웠지만 손을 잡은 것은 아스노바였기 때문이다. 그는 스위스 바젤에서 건축잡지 『ABC』를 공동 편집하면서 잡지를 마치 아스노바의 기관지처럼 전용해 소비에트의 합리주의 건축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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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의 역사에서 잡지 『베시』는 서로 단절된 러시아와 서구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면서 국제적 구축주의와 이후 현대 예술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그 출현 배경에는 러시아혁명 전 비대상 예술과 절대주의에서 출발해 혁명 직후 사물주의와 생산 예술을 거쳐 형성된 구축주의가 있었다. 당시는 현대 예술의 국제적 흐름을 형성한 때로 이 잡지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필진들의 글과 경향들을 담은 문학, 회화, 조각, 건축, 무대, 서커스, 음악과 영화를 망라해 소개하고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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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시』는 사물을 실용적이거나 기계적인 사물에 한정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생산주의자와 큰 차이가 있다. 의미 있는 사물인 한 새 사회를 조직하는 역할에서야 똑같겠지만 『베시』가 더 초점을 맞추고 궁리한 사물은 예술 작품이다. 서방의 다른 아방가르드 잡지는 기술적 사물에 대한 정보와 글을 심심치 않게 실은 사례도 있지만 『베시』는 콘텐츠를 예술 작품에 한정했고 기계적, 실용적 사물은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의미심장하게도 3호에서 제설 기관차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를 나란히 병치해 제시함으로써 그 둘의 관계가 시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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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시』의 콘텐츠는 〈예술과 사회성〉, 〈문학〉, 〈회화·조각·건축〉, 〈연극·서커스〉, 〈음악〉, 〈영화〉로 편집되어 있다. 특히 회화, 조각, 건축을 조형예술로 함께 다루었을 뿐 아니라, 이를 문학, 음악, 연극, 영화 등과 함께 다룬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이 분야에서 10여 명의 조형 예술적 입장을 수록했는데, 알베르 글레즈, 테오 반 두스부르크, 니콜라이 푸닌, 르코르뷔지에/아마데 오장팡, 라울 하우스만, 지노 세베리니 등이 쓴 예술적 주장들을 실었다. 또한 현대예술의 상황에 대한 페르낭 레제, 지노 세베리니, 자크 리프시츠, 아르키펜코, 후안 그리스의 앙케트 답변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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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고 즐기는 것에 익숙해 있는 이에게,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영원한 소비자에게, 『베시』는 지루하고 추하게 보일 것이다. 그 속에는 철학적 지향도, 괴로운 고상함도 없을 것이다. 『베시』는 일하는 기관, 기술의 전령, 새로운 사물들의,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사물들의 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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