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목표는 모든 독자를 마니아 단계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유명한 그림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 이를 창조한 인기 있는 예술가의 파편적인 사연 소개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바꾼 가장 파격적인 그림에 관한 유기적인 해석, 시대를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를 끈질기게 추적해 찾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를 통해 미술사의 흐름과 각 사조의 아름다움이 손에 잡히게끔 만만하게 엮었습니다. 한 작품을 보고 한 시대를 조망할 수 있도록. 미술 공부에 첫걸음을 뗀 분에게는 ‘완전한 생애 첫 미술사 수업’, 적당한 수준을 넘어 미술을 본격적으로 알고 싶어진 분들에게는 ‘제대로 된 생애 첫 미술사 수업’으로 이 책이 제 역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프롤로그 | 10p.」중에서
그렇다면 중세 예술의 주제 의식은 무엇이었을까요? 기독교에 대한 가르침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속죄하라. 사악한 것에 투쟁하고 저항하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가 갈 곳은 지옥밖에 없는데, 그 지옥은 바로 이런 곳이다.” 보스는 그림으로 이걸 가르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특히나 유럽인들이 전쟁과 전염병, 천재지변 등으로 매일 한 무더기씩 죽어가던 때입니다. 1000년에 오지 않은 종말이 1500년쯤에는 올 것이라 믿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보스는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이들에게 지옥의 참혹함을 알려줘야 했습니다. 충격 요법을 쓸 수밖에 없었지요. 원죄로 가득한 인간에게 큰 울림을 줘 교화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겁니다.
---「4. 초현실주의 선구자: 히에로니무스 보스 | 80p.」중에서
바토는 18세기 로코코 미술의 창시자입니다. 로코코 미술은 우아하고 화려한 장식성이 돋보이는 화풍입니다. 대표적인 장르가 〈키테라섬의 순례〉에서 파생한 ‘페트 갈랑트’입니다. 주요 소재는 우아한 차림새의 남녀, 사랑을 속삭이는 자세, 전원 풍경 같은 한가로운 배경, 섬세하고 럭셔리한 소품 등입니다. 지금도 골동품 가게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그림체입니다. 로코코 미술을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한 게 “바토의 정원(그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라는 말일 겁니다. 그만큼 밝고, 가볍고, 유희적이기만 했다는 뜻입니다.
---「6. 로코코 선구자: 장 앙투안 바토 | 117p.」중에서
쿠르베는 그 시절 유행하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위선이라고 여겼습니다. 쿠르베는 화가라면 ‘그들만의 세상’ 말고 ‘진짜 세상’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고전 양식을 다시 공부하자!”를 목표로 합니다. 낭만주의는 “보다 몽상적으로, 더욱 드라마틱하게!”를 지향했지요. 사뭇 다르게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뜬구름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두 화풍이 답이라고 믿은 화가들은 14~16세기 르네상스에서 다룬 신화화, 역사화를 또 끌고 옵니다. 누가 더 비장하게 그리는지 경쟁합니다. 그림은 다시 거룩해지길 반복했습니다.
---「9. 사실주의 선구자: 귀스타브 쿠르베 | 179p.」중에서
쇠라는 특유의 점묘법을 앞세워 신인상주의의 문을 연 화가입니다. 점묘법은 순색 純色의 물감으로 무수한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기법입니다. 붓으로 ‘칠하는 게’ 아니라 ‘찍는’ 겁니다. 이는 인상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고민 끝에 등장한 방식입니다.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순간의 인상을 감각적으로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 빛, 그 시점, 그 장면을 탁 낚아채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가령 사과를 그릴 때 흔히 생각하는 빨간색으로 칠하지 않았습니다. 사과를 비추는 당시 빛의 밝기,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색으로 사과를 칠하려고 했습니다. 사과는 주황색도, 파란색도, 검은색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곧 벽을 마주합니다. 빛은 섞일수록 더 밝아집니다. 화가들은 빛을 좇아 물감도 이것저것 섞어보지만, 빛과 물감은 성질이 다르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빛과 달리 물감은 섞일수록 탁해졌기 때문입니다. 보기 싫을 만큼 칙칙해졌습니다. “물감으로 세상의 모든 빛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인상주의 화가들의 주된 토론 주제였습니다.
---「13. 신인상주의 선구자: 조르주 쇠라 | 253p.」중에서
세잔은 색채의 해방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가 봤을 때 인상주의는 가야 할 길에서 중간에 멈춘 운동이었습니다. 세잔은 인상주의자들이 사물의 색채에만 사로잡혀 형태는 소홀히 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잔에게는 사물의 색채만큼 형태도 변화무쌍했기 때문입니다. 빛이 사물의 색채를 바꿨다면, 보는 방향과 각도는 사물의 형태를 바꿨습니다. 가령 사과라고 해서 무조건 동그랗게 보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과는 넓적하게 보이기도 했고, 평평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15. 근대 회화 선구자: 폴 세잔 | 296p.」중에서
한창 그림을 내지르던 루소가 한번은 사기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루소가 그때 재판관과 나눈 대화가 재미있습니다. “판사님! 제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제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러면 누가 제일 피해를 본다는 거요?” “예술이요. 예술 그 자체가 피해를 보게 됩니다!” 훗날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 된 점도 흥미롭습니다. 루소는 회화 무대를 현실에서 환상, 나아가 과거와 현재의 한 장면에서 다른 차원 내지 미래의 한 시점으로 넓히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아울러 루소의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 구성은 입체파와 추상회화, 단순화된 형태는 팝아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8.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앙리 루소 | 374p.」중에서
팝아트는 파퓰러 아트Popular Art(대중예술)의 줄임말입니다. 해밀턴 덕에 팝아트란 용어가 나왔습니다. 해밀턴의 작품 속 근육질 남성이 든 막대사탕이 보이지요? ‘POP(팝)’이 선명하게 박혀있는데요. 미술 비평가 로렌스 앨러웨이가 이를 보고 작품을 팝아트라고 칭한 겁니다. 팝아트의 핵심은 ‘대중성’이고 그 재료는 광고, 보도사진, 영화, 만화 등 대중문화입니다. 창조의 고뇌도 덜합니다. 좋아 보이면 그것만 가위로 쏙 잘라 갖다 쓰는 식입니다. 똑같은 재료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광고, 포스터 등은 찍어내면 계속 나옵니다. 마음만 먹으면 무한대로 찍어낼 수도 있는 겁니다. 그 시절로 보면 파격적인 시도입니다. 미술은 그저 재밌어도 충분하고, 작품 활동은 골방에 박혀 하세월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보여줬거든요. 예술은 멋지고도 속물적인, 때로는 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일상 재료를 가지고도 쉽게 꽃 피울 수 있다는 점 또한 증명합니다. 이와 관련해 해밀턴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피카소 사이에 서열은 없다.”라고도 주장하지요. 애초 예술의 영역에선 내가 잘났고 네가 못났고 구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23. 팝아트 선구자: 리처드 해밀턴 | 458p.」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