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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12g | 125*205*20mm
ISBN13 9788932041650
ISBN10 893204165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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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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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할 수도 어루만질 수도 없는
새를 본다는 것은
새와의 거리를 확인하는 것

새를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새의 습성과 영역을 알아
길목에서 미리 기다리는 것

멀리 날아간 새를 아쉬워하고
가까이 다가온 새의 노래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새가 경계하지 않고
마음껏 춤추고 짝짓기 하게
인기척을 죽이는 것

새를 본다는 것은
종마다 서로 다른 부리를 확인하는 것
그 부리로 무얼 먹나 궁금해하는 것

먹어야 사는 생명이
팔 대신 날개 달고서
얼마나 더 자유로울 수 있나 살펴보는 것.
---「새를 본다」중에서

삵 같은 천적 피하기 위해
얕은 물에 발을 잠그고 자는 두루미는
추위가 몰려오면
한 발은 들어 깃 속에 묻는다

외다리에 온몸 맡긴 채
솜뭉치처럼 웅크린 두루미의 잠

자면서도 두루미는
수시로 발을 바꿔 디뎌야 한다
그래야 얼어붙지 않는다
그걸 잊고 발목에 얼음이 얼어
꼼짝 못하고 죽은 새끼 두루미도 있다

한탄강이 쩡쩡 얼어붙는 겨울밤
여울목에 자리 잡은
두루미 가족의 잠자리 떠올리면
자꾸 눈이 시리고 발목도 시려온다.
---「두루미의 잠」중에서

나는 엄천강 수달이어요
지리산 뱀사골 백무동 칠선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이는 엄천강

맑은 물에서만 사는
꺽지 갈겨니 동사리 등을 먹고 살지요
어떤 체조선수보다 부드럽게
어떤 수영선수보다 힘차게
몸을 놀려 물살을 가르지요

그런데 요즘 들어 갑자기
굴착기가 굉음 울리며 강바닥을 파헤치네요
제발 여울과 모래톱과 바윗돌을 그냥 그대로 두세요
제발 나의 가족과 친척들의
집과 밥상과 놀이터를 뒤엎지 마세요

자연이 수백만 년 조화롭게 한 일
함부로 망가뜨리는 망나니짓 그만두세요.
---「엄천강 수달」중에서

너는 잎도 없이 꽃망울 터트리지
수백 수천의 꽃눈 붓끝처럼 세우고
추운 겨울을 견디면서
벼르고 벼르다가
온몸으로 봄볕을 느끼며 한꺼번에
수백 수천의 꽃망울 터트리지
사람들은 너의 환한 꽃그늘 아래 서서
마음껏 봄날을 즐기곤 하지

하지만 나는 떨군 꽃잎이
쓰레기가 되어 발길에 밟히는 게 싫어
산 속에 산다네
햇볕 가릴 만큼 가득 잎을 펼친 다음에
꽃은 한 송이씩 차례로 피운다네
사람들의 번거로운 눈길에서 벗어나
아는 이만 맡게 되는 향내는
한층 그윽하고 깊다네.
---「산목련이 백목련에게」중에서

한탄강에서 잠자는 두루미와 재두루미를 본 적이 있다. 두루미 칠십여 마리와 재두루미 이백여 마리가 함께 모여 잠을 자고 있었다. 불침번을 제외하고는 솜뭉치처럼 웅크린 두루미의 잠. 외다리로 서서 다른 다리와 머리는 깃 속에 묻은 두루미의 잠. 그들이 잠자리로 잡은 곳은 혹한이 아니면 얼지 않는 여울이었다. 삵 같은 천적이 몰래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윽고 날이 밝자 고개를 들고 날개를 털었다. 몇 마리씩 걸음을 옮겨 무리에서 벗어나더니 발을 구르며 달리다가 차례로 날아올랐다. 잠은 떼로 모여 자고 먹이터는 가족끼리 찾는 두루미들이 울음소리로 서로를 확인하며 날아올랐다. 어느새 감쪽같이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모두 사라지고 여울물 소리만 들리는데 그제서야 능선 위로 불끈 해가 솟았다.

강변 벼랑 위 나무 뒤에 숨어서 나는 두루미들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다른 부족의 신성한 제의를 몰래 훔쳐본 토템 시대의 이교도처럼 마구 가슴이 뛰었다.
---「뒤표지 시인의 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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