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Day)의 의미
성경에서 “날”(Day)은 다음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하루 24시간”을 의미하는데, 일례로,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재창조 주간 7일”의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 일곱째 날은 모두 하루 24시간을 가리킨다(cf. 요 11:9). 둘째, “어떤 특정한 날”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심판과 멸망의 날」(벧후 3:7)은 하루 24시간과 관계없이 “백보좌 심판”이 펼쳐지고 하늘과 땅이 불타 없어져 멸망하는 “특정한 날”이다(계 20:11-15). 셋째, “일정 기간”을 의미하는데, 그 기간이 “천 년의 기간”일 수도 있고(벧후 3:8), 환란 시대 “7년의 기간”일 수도 있으며(히 3:13,15), 교회 시대 “2천 년의 기간”일 수도 있다(고후 6:2). 또는 “하나님의 날”(벧후 3:12), “주의 날,” “그리스도의 날” 등과 같은 “일정한 특정 기간의 날”을 의미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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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공격을 의식한 바울의 대응
1. 디모데 파송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우리들만 아테네 에 머무는 것을 좋게 여겨 우리의 형제이며 하나님의 일꾼이요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디모데를 보내었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세우고 너희의 믿음에 대하여 격려함으로 아무도 이러한 고난들로 인하여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가 세움을 받은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살전 3:1-3).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했을 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의 마음속에는 시기심이 끓어올랐다. 그들은 불량배들까지 동원하여 바울 일행을 박해하려 했고, 바울과 실라는 밤을 틈타 베뢰아로 피신 할 수밖에 없었다(행 17:5-10).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심지어 베뢰아까지 따라와서 바울을 박해할 정도로 약이 바짝 올라 있었다(행 17:13). 사려 깊은 사역자였던 바울은 그 유대인들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박해할 것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다. 이에 따라 바울은 베뢰아를 떠나 아테네로 갔을 때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을 북돋워주기 위해 디모데를 다시 보내기로 결정했다. 디모데는 바울이 보유한 “게임 체인저”였다. 바울은 디모데라면 혹 요동하고 있을지 모를 그곳의 판도를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고작 한사람을 보내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은 디모데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cf. 고전 4:17-21). 성숙한 성도는 그 존재만으로도 여러 사람들의 믿음을 바로잡고 지역 교회 내의 문제들을 바로잡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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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를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예수 그리스도는 환란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데려가시기 위해 공중 재림하시고 환란 후에 이 땅을 심판하시고 통치하시기 위해 지상 재림하신다. 그러므로 휴거 이전의 삶은 짧은 준비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통치할 것이고, 또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이다. 휴거 이후 하늘에서는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어린양의 혼인식”이 있을 것이고, 땅에서는 “대환란”이 있을 것이다. “어린양의 혼인식”이 끝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이 땅을 심판하고 통치하실 것이며,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내려와 공동 상속자로서 이 땅을 통치할 것이다.
이런 명백한 성경의 진리를 정확히 아는 그리스도인과 잘 모르는 그리스도인 혹은 이런 명백한 성경의 진리를 확고히 믿는 그리스도인과 믿지 않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성경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휴거의 대상과 시기를 오해하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사는 방식에는 분명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성경의 진리들을 아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재림의 임박성”을 유념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따라야 할 올바른 삶을 놓치고 있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휴거와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매일의 삶에서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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