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음생활을 처음 시작한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신앙의 첫걸음을 내딛은 몇 년의 기간이 앞으로의 영적성숙과 발전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초를 형성해주기 때 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처음과 끝을 다 아신다. 영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토기장이기 때문에 진흙에서 무엇을 어떻게 빚어낼지 다 아신다. 모든 주형(moulding) 과정은 전체공정 의 일부로써, 성공적인 최종본을 만들어내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다. 우연히 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든 과정이 다 중요성을 갖는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토기는 지나간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것들의 총체적인 결과물이다. 다시 말하면 궁극적 모양을 빚어내기 위해서 이전의 모든 과정들이 꼭 필요했다는 의미이다.---p. 49
나는 기다리는 시간을 즐겼다. 지난 날 겪었던 고통스런 일로 인하여 나는 영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 상태여서, 재충전이 절실했기 때문에 나는 그 기다림을 즐겼다. 나의 이러한 재충전은 중국내지선교회 창시자였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의 생애를 읽으면서부터 시작되었는데, 『허드슨 테일러의 생애』(The Life of Hudson Taylor)는 두 권으로 된 책으로 하워드 테일러박사(Dr. Howard Taylor)가 집필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모든 시름을 잊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생애 속으로 들어가 그의 인생에 젖어들었다. 또한,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다루셨는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한 장 한 장 읽어가면서 예수님이 다시 내 안에 들어오셨다.
특별히 “뒤바뀐 삶”(The Exchanged Life)이라는 아주 중요한 장(chapter)을 읽을 때, 나는 크게 감동을 받았다. 허드슨 테일러는 이 장에서 그가 자기노력과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생활 하다가 실패를 경험한 것과 어떻게 그리스도를 그의 삶의 중심에 모셔 들여 새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이 깨달음은 지난해 8월에 내가 이미 발견한 것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새로운 삶의 원리 안에서 풍성한 체험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나는 그 원리를 벗어 던지고 나를 세우는 일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고, 사람들에게 내가 특별한 사람, 대단한 사람, 그리고 보통의 단순한 그리스도인과는 뭔가가 다른 사람으로 불리는 것을 즐겼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나는 내 개인적인 욕망에 의해 속임을 당했고, 그 결과 곁길을 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허드슨 테일러의 두 책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포도나무 줄기요 나는 그저 가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특별한 누구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실패한 자리에서 돌아와 다시 안식을 누리게 되었고, 그 안식으로부터 결코 다시는 떠나지 않게 되었다.---pp.90-91
복음전파자인 나를 어느 누구도 크게 난처하게 한 적이 없었던 같다. 목회자와 성경교사, 그리고 심지어 회의진행자들까지도 주어진 말씀을 전하고 나서 별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그곳을 빠져나간다. 사람들은 그런 집회에 대해 별 기대도 갖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실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별 복음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경우는 이들과는 전혀 다르다. 모든 것이 집회를 통해 은혜를 체험하는 이 한 가지 목적에 맞춰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 집회를 위해 기도하고 상담 사역자들이 서서 대기한다. 사탄이 어떻게 이 특권을 가로채려고 하는지와 또 어떻게 설교자를 무너뜨리려고 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설교자는 그의 머리로는 죽은 영혼들을 살리실 분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설교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영적전투를 치른다. 아브라함이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롬 4:19) 처음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휘청거렸다.
물론 바른 관점에서 볼 때, 성도들의 이러한 준비와 기대는 설교자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준비와 기대가 설교자에게는 이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혀 기도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고 기대도 하지 않는 양떼를 계속해서 돌보는 목회자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러한 경우에는 전도자들이 하는 것처럼 목회자 자신이 스스로 믿음의 싸움을 싸워나가야 한다.
복음전파자나 혹은 목회자에게나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승리는 ‘믿음’이다. 내 경우는 예수님이 마치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노를 젓느라 고생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것처럼, 나에게도 수시로 찾아오셔서 평안을 주셨다. 이것이 항상 집회를 새롭게 발전시키는 새로운 전환점으로 작용하였다. 내가 전에 이미 알고 있던 완전한 구원의 은혜 속에 잠길 때는 거의 모든 집회가 내게는 영적인 위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한 구원의 감격이 없이 나갔을 때는 그 집회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pp.164-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