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길 꿈속의 여인 … 007
김멜라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 … 043 서장원 소공 … 075 이원석 마스크 키즈 … 99 이현석 조금 불편한 사람들 … 139 전예진 베란다로 들어온 … 175 정지돈 무한의 상태 … 207 조우리 모르는 척하면서 … 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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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비밀인데. 사실 그런 건 없거든.
그러니까 찾아도 나올 리가 없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애초에 알고 있었어. 괴담의 매력은 우선 우리를 낯설고 기이한 곳으로 데려간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낯선 이야기를 여행하는 독자를 위한 표지가 있다. 괴담이 가진 유형, 혹은 역사를 지표 삼아 우리는 낯선 세계를 흥미롭게 여행할 수 있다. 여기, 그러한 괴담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소설들이 있다. 김멜라의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는 지하철이라는 어쩌면 가장 도시적인 공간과 ‘잡귀’라는 환상의 존재를 매치했다. 충무로역 영상센터 ‘오! 재미동’에 보관된 DVD의 단역 출연자 얼굴을 빌린 잡귀는 지하철 안에서 ‘저퀴’라는 악령들을 물리치기도 하고, 귀신들의 율령에 따라 삼도천을 건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근대 도시의 발명품인 ‘영화’가 이야기에 깊게 관여하는 것 역시 흥미로운 지점이지만, 무엇보다 도시의 산물인 지하철은 태생적으로 낯선 이와의 접촉을 강요하는 공간이며 도착지가 아닌 경유지의 특성을 지닌다. 이 고유한 특성이 낯선 존재이며 삼도천을 향해 가야 하는 한국적인 존재, 잡귀의 이야기와 겹쳐질 때, 이야기는 한국의 도시에 사는, 어쩌면 매일매일 서울 한복판 충무로역을 오갈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원석의 〈마스크 키즈〉에서는 2000년대를 휩쓸었던 빨간 마스크 괴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설은 지금의 서울 도심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빨간 마스크를 등장시키며 어린 시절에 ‘빨간 마스크’를 만나기 위해 모였던 ‘마스크 키즈’들을 다시 소환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가 보편화된 지금 다시 ‘빨간 마스크’를 호명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괴담조차도 마치 마스크 키즈들의 관계처럼 변화하고 영향 받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거나 혹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은 아닐까. ‘빨간 마스크’가 바꿔놓았던 2000년대의 풍경, 그리고 그 시절의 괴담이 2023년에 와서 재-독해되는 방식이 흥미롭다. ‘초자연적 존재는 스스로 문을 열지 못한다’는 속설을 떠올리게 하는 전예진의 〈베란다로 들어온〉에서는 베란다를 기준으로 갈라진 삶의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를 침범하면서, 삶 그리고 죽음 이후조차도 ‘자신의 자리’를 찾는 지난한 과정임을 상기하게 한다. 상실을 겪은 이가 베란다 밖에서 안쪽을 쳐다보는 시선을 알아차리고 이형의 존재들에게 문을 열어주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불안정한 주거의 시대에 ‘거주 공간’과 ‘맞아들임’이 부딪히는 순간을 고요히 포착한다. 베란다로 들어온 존재를 통해 우리는 삶의 외부가 정말로 점거되지 않은 공간인지 고려하게 된다. 그곳에 존재하는 비-존재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이 도시에 그들 몫의 정당한 자리가 존재할까. 정지돈의 〈무한의 상태〉는 괴담의 가장 오래된 분야 중 하나인 음모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작품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 시내의 한 호텔을 배경으로 ‘이름 붙일 수 없는 소사이어티’라는 집단을 이야기한다. ‘무한’을 쫓는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현대 예술계의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이야기는 도시괴담의 한 장면으로 독자를 이끈다. 합리성 위에 세워진 현대 도시의 기저에 맹목적이고 조직적인 결사가 있다는 정교한 상상은 소설 속 예술계의 면면과 겹쳐지면서 단순한 괴담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이면의 이미지를 전달한다.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괴담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소설들을 보며 독자들은 “사실 이런 건 없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있음에도 지하철이 도착하지 않은 플랫폼을 바라보다, 마스크를 쓴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며, 베란다의 창문 앞에 서서, 역사가 오래된 서울의 한 호텔 앞을 지나면서 문득 낯선 존재를 느낄 수도 있으리라. 그때 이 이야기들은 당신을 진정으로 찾아가게 될 것이다. 이미 알아버렸는데, 감쪽같이 아닌 척 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는데, 이 불안, 이 의심이 사라질 수 있을까? 도시를 배경으로 창발하는 괴담은 종종 우리의 삶과 너무 가깝기에 더욱 섬뜩한 모습을 취한다. 강화길의 〈꿈속의 여인〉에서는 폐쇄된 공동체 해인마을에서 일어난, 아무도 실종이라고 말하지 않는 실종 사건을 다룬다. 사건보다 강렬하게 소설을 추동하는 것은 소설 전반에 내려앉아 있는 의심의 기운이다. 네 이웃을 의심하는 일.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상의 근간이 되는 공동체와 소속감이 가상의 실체라는 것을 폭로한다. 짐짓 특정한 신념을 가진 공동체의 일처럼 전개되던 이야기는 그 끝에 이르러서는 어떤 모양으로든 공동체에 소속해 있는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나쁜 생각을 하고 있나요?” 어쩌면 나쁜 생각일지도 모를 비규범적인 것들을 보고 듣게 된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한복판 명동, 그 구체적 장소에서 진행되는 서장원의 〈소공〉에는 어깨 위에 작은 생명을 얹어두게 된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오로지 ‘여자만이 상처받고 죄책감을 느끼’기에, 그들이 어깨 위에 올려둔 것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닌 어떤 은유에 가까워진다. 이상하고 기괴한 것들이 그러하듯, 숨겨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죄책감과 수치심. 하지만 서로 다른 시기에 어깨 위에 작은 생명을 얹어두게 된 두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대낮의 도심을 가로지른다. 그 무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일을, 우리의 도시는 감당할 수 있는가. 이현석의 〈조금 불편한 사람들〉에서는 최근 한국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두려움의 순간을 그린다. 바로 내가 알던 사람이 전혀 다른 존재로 여겨지는 순간이다. 소설 속에서는 코로나 백신과 주택 청약을 두고 의사인 주인공과 북한이탈주민인 ‘은화’ 사이에서 아이러니한 문답이 계속된다. 공통감이 사라진 사회와 불분명한 가해와 피해의 관계 속에서 도시의 공포는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도시가 주는 공포 중 하나는 그 무시무시한 익명성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나를 쳐다보는 눈이 유령처럼 늘 우리 곁을 맴돈다는 것이다. 조우리의 〈모르는 척하면서〉는 몰래카메라 범죄를 주제로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실존적인 공포를 다룬다. 그러나 공포 앞에 모든 것이 멈추지는 않는다. 도시에 중첩된 시선과 폭력의 문제를 폭로하면서, 소설은 두려움이 추동하는 에너지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한다. 도시의 괴담은 사라지지 않을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의심과 동행하면서 우리는 안온한 현실과 교섭되지 않는 균열을 만나게 되고 그것을 건너가기 위해 또 다른 사다리를 만든다. 어떤 것은 현실을 구하는 사다리가 되고 어떤 것은 이야기를 구하는 사다리가 된다.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불균질한 도시 속에서 균열을 없는 셈 하지 않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다시 도시괴담과 만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