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이 책에서는 쇼핑과 스타일, 정체성, 세련됨의 의미, 사회적 삶과 연대 등등 삶의 다양한 문제들을 정밀하게 매의 눈으로 읽고 느껴보고자 노력했습니다. 개인의 스타일을 만드는 일은 단순한 개인의 차원이 아닌 사회 전체의 미감을 표현하는 일이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윤리적 의무입니다.---들어가며
옷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것이 구조의 대칭성에 있듯, 사회의 장 속에서 함께 경쟁하는 이들의 출발선과 과정, 그것을 나누는 결과물의 무늬가 대칭성을 띠고 있는지 다시 물어야 합니다. 대칭은 곧 균형입니다. 신체의 자연스러운 성장과 사회 구조의 성장, 그 선은 동일하게 흘러가야 합니다. 사람에게 인위적인 성장을 몰아세우는 사회,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치화된 스펙만 요구하는 사회는 옷의 멋스러움을 살려낼 수 없는 법이죠. 패자부활전을 열고, 그 무대에 선 이들을 위해 따스한 한 벌의 스웨터를 짜줄 수 있는 사회. 이런 세상을 꿈꿔보는 게 잘못된 걸까요?---「인생의 패자부활전을 꿈꾸며」
변웅필이 그린 자화상을 볼 때마다, 클로즈업 화면으로 구성한 화가 자신의 얼굴을 통해, 저 자신의 모습, 나아가 타인의 모습을 봅니다. 한 인간의 얼굴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어떤 생각에 젖어야 하나를 자문하게 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땅은 조경을 통해서 영토화 된다”라는 주장을 하죠. 풍경을 조형함으로써, 의미 있는 지점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얼굴은 뭘까요? 울고 웃고 화내고, 빈정거리고, 질시하고 모든 감정의 체계를 그리는 일종의 캔버스와 같습니다. 각각의 표정들이 하나의 영토를 이루며 얼굴이란 땅 위에 서게 되는 것이죠.---「기적을 부르는 그림」
저는 얼굴에서 주름을 지우지 못해 안달하는 분들에게 옷을 예로 들어 설득합니다. 우리가 옷을 입는 순간, 관절이 있는 부분에선 옷 주름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주름이 생긴다는 건 우리가 활동하고 살아 있다는 확증입니다. 촘촘하게 접힌 옷의 주름만큼 인간의 몸을 우아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없답니다. 옷의 주름은 짙은 우울에서 우리를 튀어 오르게 하는 스프링입니다. 얼굴의 주름도 이 스프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성형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멘붕’이란 단어의 결을 읽다 보니 우리 시대의 감추어진 징후들이 보입니다. 성장을 강요하는 현실에서 실제로는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깨달음만을 얻게 된 인간에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년 시절이라는 환상의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시간 속으로 유영하고 싶은 우리들의 심리가 ‘복고풍’이란 시장의 움직임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네요.---「천 번을 흔들려야 키덜트다」(p.211)
내 밖의 괴물과 내 안의 괴물은 서로를 마주하며 공생합니다. 외부의 시스템에 익숙해져서 외부에서 주는 정보를 진실이라 믿고 이를 내면화하면서 살아가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의 괴물은 사회적 진실을 욕망합니다. 외부의 달콤한 유혹과 폭력에 주눅 들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분노해야 할 일도 많고, 저항해야 할 일도 많지만 그 속에서도 스스로를 파괴하는 괴물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때입니다. 쫄지 마세요, 우리 안의 괴물에게.---「두려워 마, 네 안의 괴물을」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을 넘어 그 도구를 통해 구현해내야 하는 세상의 논리와 아름다움을 조형하는 상상력 가득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 그저 삽질 이외에는 머릿속에 든 것이 없는 기계론적 세계관 속 인간으로 살아가기보다, 도구를 통해,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어떻게 조율되고 새롭게 조형되는지를 고민하는, ‘인간적 요소’를 빚어내는 창조자로서의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인간의 도구적 사용 능력이 극대화될 때, 따스한 인간의 감촉을 잊지 않는 기술자가 될 때 삶은 도구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하게 차오르겠지요.---「댄디, 돈 버는 기계를 거부하라!」
결국 한마디로 댄디를 요약하면 ‘사회의 지배적 스타일에 저항하는 정신의 소유자’입니다. (……) 어떤 일면에서 보면 서양의 댄디는 우리의 선비 정신과 통합니다. 사군자를 그리며 그림의 창을 통해 세상의 아픔과 통교하며 원인을 사유할 수 있는 사람. 그러나 온 감각으로 느끼고 분노하되, 배면의 사람들과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사람. 음식 한 가지를 먹어도 폭식보단 단정한 미각을 견지할 수 있는 사람. 예술을 사랑하되, 타인의 달콤한 말에 매몰되어 한 장의 그림을 사기보다, 자기만의 컬렉션을 이룰 수 있는 원칙을 가진 사람. 한 벌의 옷을 살 때도 유행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여기에 맞는 색감과 질감과 실루엣을 찾는 사람. 저는 이런 사람으로 성장하며 늙어가고 싶습니다.
---「나는 행복한 댄디, Ar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