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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125*188*20mm
ISBN13 9791170870173
ISBN10 11708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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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결심한 다른 한 가지가 바로 그거란다. 캐리야, 사실 난 완전히 내 맘대로 살 거란다. 노년을 맘껏 누리며 살 거야.”
--- pp.58~59

그들 모두 어머니를 너무 당연시했다. 상냥하고 사심 없고, 공적인 활동을 하고. 그런데 지금, 아무리 오래 알아왔던 사람에게도 여전히 뜻밖의 놀라운 일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생전 처음으로 케이에게 확실해졌다.
--- pp.59~60

지푸라기와 담쟁이와 거미, 이런 것들이 오랫동안 이 집을 차지해왔다. 집세는 내지 않았지만 가볍고 불안정한 삶을 사는 동안 마룻바닥과 창문과 벽을 마음대로 사용했다. 슬레인 백작부인은 그런 존재와 함께하기를 원했다. 북적거림과 경쟁, 그리고 다른 야망을 어떻게든 피해 가려 발버둥 치는 야망들은 물리도록 많이 겪었으니까. 그녀는 거미가 아니니 거미줄을 치지는 않겠지만, 빈집으로 기어 들어온 것들과 하나가 되고 싶었다. 산들바람에 흔들거리고 햇빛을 받으며 초록으로 싱싱하게 자라다가, 죽음이 가만히 그녀를 문밖으로 밀어내고 등 뒤에서 문을 닫을 때까지 세월과 함께 흘러가고 싶었다.
--- p.79

이제는 뭐든지 너무 잘 알아서 상징이 아니라면 표현할 수 없는 시기, 그것이 노년이었다. 경계를 허무는 감정이 지글지글 끓으며 주조 틀에서 쏟아져 나오는 시절, 복잡하고 모순된 욕망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한 그런 시절은 다 지나갔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단색의 풍경뿐이었다. 다 똑같은 모양에 색채도 바래 흐려지고, 말 대신 동작만 남았을 뿐이었다.
--- p.101

그래, 그러니까 젊음을 단 한 가지 종류의 관념으로 제한해서 젊은이들에게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슬레인 백작부인은 생각했다. 젊음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니까. 젊음은 손을 뻗는 희망으로 가득해서, 강을 불태우고 세상의 모든 종탑을 울릴 테니까. 생각해야 할 것이 사랑만이 아니라, 명성이나 성취나 천재성 같은 것도 있으니까.
--- p.126

그 가녀린 처녀의 외양 안쪽에서 마구 내달리는 생각이란 무모한 젊은 남자가 품었다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변장을 하고 도망가는 생각이었다. 이름을 바꾸고 남자로 변장하여 외국의 도시에서 자유를 누리겠다는. 선원이 되어 바다로 나가려는 남자아이의 계획과 맞먹을 만한 것이었다. 고수머리는 가위질을 당해야겠지. (……) 소녀의 환영이 흐려지며 그 자리에 호리호리한 남자아이가 나타났다. 남자였지만 본질적으로 성이 없는 존재, 그저 젊음에서 나온 젊음의 상징,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상상 속에서 더 고귀하게 여겨지는 목표에 복무하기 위해 여성의 기쁨과 권리를 영원히 포기하기로 한 존재였다.
--- pp.127~128

“난 뭔가를 바란 적이 없어요, 벅트라우트 씨.” 그녀가 말했다. “바란 것이라고는 비켜서 있는 것뿐이었죠. 그런데 세상은 도대체 그걸 허락하지 않네요! 여든여덟의 나이에도!”
--- p.221

데버라가 웃었다. 제가 원한 건 조언이지 돈이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사실 딱히 조언을 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슬레인 백작부인은 잘 알았다. 그저 자신의 결심을 누군가 지지해주고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길 바랐을 뿐이다. 좋아, 동조를 바란다면 내가 해줘야지. “아무렴, 네가 옳단다.”
--- p.248

“사실 말이죠, 전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으면 그 사람을 바라보며 죽은 모습을 그려봐요. 그러면 언제나 드러나게 마련이죠.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상대가 모르니까 특히 더 그래요. 백작부인을 처음 봤을 때, 그래, 괜찮은 분이야, 그랬어요. 그때 그려봤던 모습이 실제 눈앞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어쩐지 이 세상에 반 이상 발을 담근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없었죠.” 벅트라우트 씨가 말했다. 이제 고셰런 씨가 왔으므로 기꺼이 슬레인 백작부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상과 타협한 적도 절대 없고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것들은 다 가졌어요. 본인은 원하지 않았던 모든 것을. 부인은 들판의 백합을 생각했어요, 고셰런 씨.”
--- pp.25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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