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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어디로 갔나

꽃들은 어디로 갔나

서영은 | 해냄 | 2014년 02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8 리뷰 26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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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471g | 140*205*30mm
ISBN13 9788965744344
ISBN10 896574434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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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노인의 목소리는 평소나 다름없었지만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예민했다. 서울 근교에 있는 용주사란 절에 갔더니 사십구재를 하고 있어서, 내일 아침 다른 절을 찾아가보려고 한다는 얘기였다.
전화를 끊고 그녀는 잠자기 전에 양치를 하려고 욕실로 들어갔다. 큰방에서는 쉬지 않고 두런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욕실 문을 꼭 닫고 욕조에 걸터앉아 천천히 심호흡하듯 이를 닦기 시작했다. 입안에 거품이 하나 가득 고일 무렵 그녀는 벼락 치듯 거품을 뱉어내고 그 입으로 전화통 앞으로 달려갔다. 구차해, 그만두자. 송수화기를 집어 들고 다이얼을 돌리다 말고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은 침이 아니라 치약이었다.
---「이상한 결혼식」 중에서

하얀 장미꽃을 한 아름 안고 그녀는 초인종을 눌렀다. 가슴이 뛰었다. 다음 순간 철컹 하고 대문 열리는 소리가 그녀의 뛰는 가슴에 찬물을 끼얹었다. 문을 닫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안에서 차르륵 하는 쇳소리와 현관문 잠금 쇠 푸는 소리가 또 한 차례 찬물을 끼얹었다. 그녀는 자기가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사람이 여러 겹의 육중한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오싹 소름이 끼치도록 낯설었다. (……) 그녀 앞에 나타난 그는 그녀의 연인도, 얼마 전 절에서 식을 올린 나이든 신랑도 아니었다. 그는 거북처럼 오랜 자기 집을 무겁게 짊어진 한 노인이었다. 그 집의 모든 것, 소파·가구들·벽의 그림들·도자기들·전화기 하다못해 탁자 위의 파리채까지도 그가 짊어진 집의 일부처럼 보였다. 그를 만나러 오면서 가슴이 뛰었다는 사실이 스스로 무안스러워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를 찾아올 때마다 애가 탄 나머지 양쪽 턱 밑으로 땀이 흘러 갓끈을 맨 것처럼 보이던 그 남자는 이 집의 어디에 숨어 있단 말인가. ‘그’는 생이 만든 신기루였을까.
---「반야심경」 중에서

전처의 다리에 손이 닿는 순간, 그녀에겐 이상하도록 그 살의 감촉이 낯설지 않았다. 혹시 우리는 전생에 모녀 사이였나요? 희고 부드러우나, 탄력이 사라진 살집에 손가락으로 힘을 주며 그녀는 생각했다. (……) 갑자기 자신이 그에게 품고 있는 사랑의 감정이 먼 과거의 일처럼 비현실로 느껴졌다. 그 대신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이 사람, 손가락이 부은 듯 통통하고, 염색한 머리카락이 부스스하고, 팔뚝 안쪽에 좀체 낫지 않는 오랜 부스럼이 있는, 펑퍼짐한 엉덩이를 가진 이 나이든 여자에게 느끼는 진한 연민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다리를 주무르는 손길에 점점 정성이 담기는 것과 반비례하여, 그녀의 마음에서 그는 모르는 타인처럼 멀어지고 있었다.
---「혈육」 중에서

아내는 반신반의하며 남편이 망보고 있던 자리로 가서 뜰을 내다보았다. 불을 밝힌 외등이 뜰을 비추고 있으나, 담 밑으론 나무 그림자가 검게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 그림자는 침입자의 흔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아녜요. 나무 그림자예요.”
“글쎄, 그게 아니라니까.”
노인은 그녀를 잡아끌며 안방으로 갔다. 손에 들고 있던 문제의 장칼로 그가 다시 안방 창문의 커튼을 조금 들추고 감나무 밑 대나무 숲을 가리켰다. 부릅뜬 눈으로 다시 보아도 그것은 늘상 감나무 밑에 웅크리고 있던 그 그림자였다. 그녀는 그 두려움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것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제가 뜰에 나가서 둘러보고 올게요.”
그러자 노인의 손이 아내의 어깨를 왈칵 붙잡았다. 그녀는 못 이기는 체 어깨를 잡히어 가만히 있었다. 남편의 맘이, 다급하게 잡은 손을 통해 가슴에 깊이 설움처럼 새겨졌다.
---「야회」 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이상한 결혼식이 치러졌다. 하객은 신부의 어머니와 이모뿐, “그만두자”는 말을 치약과 함께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던 신부와 세간에 비밀이 알려질까 두려운 신랑은 적막한 절간에서 조용히 혼례를 올렸다.
젊은 아내가 된 호순은 작가이자 전직 문예지 기자로, 서른 살 연상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 ‘박 선생’의 연인이었다. 마냥 애틋하고 싱그럽기만 하던 연인들은 그러나, 박 선생의 두 번째 부인의 죽음 이후 왠지 서먹서먹해진다. 전처는 두 사람의 연애를 알고도 일찍이 호순에게는 “우리 박 선생 불쌍한 사람이야. 잘 지켜줘”라는 말을, 남편인 박 선생에게는 “그 아이 잘해줘요”라는 유언을 남긴 인물. 그런 전처가 떠나자 호순의 노모는 두 연인에게 결혼을 권했고, 이들은 마침내 한집에 살게 된다.
이중삼중으로 굳게 닫아 걸린 집 안, 남편의 지난 세월과 전처의 흔적만이 켜켜이 쌓인 공간에서 호순은 자기만의 방 한 칸 없이 고립된다. 갖가지 수집품이며 사회적 지위와 부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오랫동안 수발을 들어온 집안의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아내인 자신에게마저 인색한 남편. 그의 결핍감과 소유욕뿐 아니라 세속적인 생활이 되어버린 사랑 앞에 호순은 금빛으로 빛나던 사랑이 신기루처럼 사라짐을 느낀다. 혼란과 노여움 속에서도 그녀는 사랑하는 ‘그’를 반드시 다시 찾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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