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심성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먼저 부모의 심리가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냐 가난하냐는 별 상관이 없어요. ‘내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킨다’는 굳건한 엄마의 마음을 가져야 해요. 그래야 아이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지지대 삼아서 잘 자랍니다.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서 클 권리가 있어요 아이는 태어나서 엄마에게 보호받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고, 엄마는 일단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어렵고, 아이가 제대로 자립하지 못하면 부모가 그 과보를 늙어 죽을 때까지 받게 됩니다.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이고 우주며 신(神)이에요. 그 신이 흔들리면 아이들이 불안해서 어떻게 살겠어요? 아이들 앞에서는 늘 태산같이 든든해야 해요. 아이들이 뭐라고 하면 “어, 그래, 그래, 그래” 이렇게 받아주세요
어릴 때 자아가 건강하게 형성되어야 가난해도 떳떳하게 살 수 있고, 남한테 좀 비난받아도 이겨낼 수 있는데, 자아가 약해지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인생이 괴롭습니다. 요즘 많은 정신질환이 나타나고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도 자아형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아가 형성되는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아이를 사랑으로 돌봐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독립된 생명이자 존중받아야 할 한 인간이지, 소유물이 아니에요. 성인들은 결혼을 선택해서 하기 때문에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죠. 아이에게 태어날 것을 물어보지 않고 낳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은 부모는 무한책임을 져야 합니다.
“네가 말을 더듬어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세상 사람은 다 너에게 문제가 있다 해도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지체부자유자라도 너를 사랑하고, 공부 못해도 너를 사랑하고, 사고 쳐도 너를 사랑한다.” 이것이 진짜 엄마 마음이에요. 아이에게 엄마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보루예요. 그래서 아이가 세상에서 지치고 힘들다가도 엄마를 보면 위로를 받을 수 있어야 해요.
아이가 어릴 때는 정성을 들여서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는 게 사랑이에요. 사춘기의 아이들은 간섭하고 싶은 마음, 즉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면서 지켜봐 주는 게 사랑입니다. 성년이 되면 부모가 자기 마음을 억제해서 자식이 제 갈 길을 가도록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삼는 냉정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자생력을 키워 주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에요. 그런데 정신적인 유산은 주지 못하고, 물질적 재산만 물려주는 탓에 오히려 자식을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은 부모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공부니 학교니 이런 집착은 내려놓고 아이의 상태를 잘 점검해서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아이를 키울 때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야단쳐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엄격하게 구분해서 부모가 실천해야 해요. 그래서 안 되면 확실히 안 되고, 되는 것은 아이와 엄마가 한두 번 의견을 교환하다가 토론을 해서 들어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큰 부모의 사랑이라 해도 그 사랑을 부모 방식대로 전한다면, 자식이 다 좋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에요. 나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했지만 자식에게는 억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걸 모르면 “나는 너희들을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는데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어!” 하는 원망만 하게 됩니다. ‘모든 문제는 자식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이 이치를 이해할 때 비로소 자식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부모냐, 학부모냐’ 지금 많은 엄마 아빠가 부모 노릇은 포기하고 학부모 노릇만 하고 있어요. 애가 공부 잘하고 나중에 출세하는 데만 급급해서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잡는 거예요.
아이는 닮는 존재예요. 부모가 이렇게 정신없이 살면 자식도 중심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저 아이만 나무랍니다. 이제, 부모가 용기를 낼 때입니다.
엄마가 시킨 대로 했더니 잘된 애는 열 명에 한두 명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시킨 대로 해도 안 되니까 저항심만 커집니다. 그리고 주체성이 없으니 자기 인생의 중심을 못 잡아 방황하면서 “다 엄마 때문이야”라며 책임을 엄마에게 돌려요. 엄마가 만들어 준 인생이니까, 자기반성도 안 하고 자기 노력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결국 엄마에게 자식이 무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부모는 자식이 자신의 취향과 기질, 재능에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해요. 이십대에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여기에서도 일해 보고 저기에서도 일해 보고, 고생도 하면서 제 나름대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지금의 나를 기준으로 해서 아이들을 봐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그만한 나이 때 어땠느냐를 중심으로 해서 아이들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내 경험에 사로잡혀 내 경험을 절대화하게 되고 아이를 비판하는 쪽으로 가기라도 하면 결국 아이가 어긋나게 됩니다.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성향도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아이를 공부시키고 싶다면 엄마가 먼저 공부하세요. 엄마가 마음 공부를 해야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아이와 대화가 되고 편해집니다. 그러면 아이에게 번뇌가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엄마가 아이에게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어요.
아이들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이가 어릴 때 엄마가 불안해하든, 힘들어하든, 신경질적이든, 어떤 이유로든 심리적인 상처를 줬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리를 알면 아이들이 커서 저항할 때, 아이와 싸울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울 때 내가 심리적으로 억압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때부터 아이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의 행동을 이해는 하되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는 응당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자녀가 경찰서 유치장에 가게 되면, 아무리 나쁜 짓을 했더라도 내 자식이니까 엄마로서 정기적으로 면회를 가서 보살피면 됩니다.
사고를 칠 수 있다고 인정해버리면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고, 잘못했으면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걱정할 게 없습니다. 이런 편안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부모이고, 수행자입니다.
남편이란 사람은 본래 훌륭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그 사람일 뿐이에요. 그런데 내가 훌륭하게 보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내가 나쁘게 보면 나쁜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남편을 나쁘게 보면 아내인 나도 별 볼일 없는 여자가 되고, 아들도 별 볼일 없어집니다. 그래서 형편없는 사람의 자식이 되어 버린 아들의 종자 계량부터 해야 해요. 그 방법은 바로 ‘여보, 당신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당신을 잘못 봤습니다.’ 이렇게 참회 기도를 하는 거예요. 이것이 자식을 위하는 최고의 길입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