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이쉬킨 공작은 일어나서 정중하게 로고진에게 손을 내밀며 공손하게 말했다. “영광으로 여기며 기꺼이 찾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좋아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아마 오늘이라도 시간 이 된다면 당장 찾아가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당신이 매우 마음에 들어서 찾아간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저한테 외투와 옷을 해 주신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사실 조만간 옷과 외투가 필요할 것 같거든요. 현재 저는 돈이 한 푼도 없는 상황입니다.” “돈은 생깁니다. 저녁이 되면 돈이 생길 겁니다. 오시 지요! … 그런데 공작, 여자에 관심은 많으신지?” “저, 저는, 아뇨, 아뇨! 저는 지병이 있어서 여자를 전혀 모릅니다.” “흠, 그렇다면.” 로고진은 말했다. “공작, 당신은 완전 천상 유로지비(바보 성자)인데, 신은 당신 같은 사람을 사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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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어떤 한 사람이랑 만났던 이야기를 해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정치범으로써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20분쯤 후에 사면령이 내려졌고, 다른 형벌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사형선고와 사면령 사이 그 20분 동안 몇 분 후면 죽을 것이란 확신을 했지요. 중앙에 기둥이 세 개 있었습니다. 사형수복을 입은 이 죄수들을 기둥으로 데려가 묶었습니다. 기둥 각각 맞은편에 몇 명의 군인들이 조를 이루어 정렬했습니다. 신부님이 십자가를 들고 모든 죄수들 사이를 돌아다녔습니다. 시간이 5분도 채 안 남은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 5분이 그에게는 영겁의 시간 같았으며 너무나 큰 자산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5분이란 시간이 너무 긴 시간처럼 느껴져 이 순간이 마지막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던 것입니다. 그는 동료들과 이별할 시간 2분, 자기 자신에 대해 마지막으로 돌아볼 시간 2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변을 돌아볼 시간을 남겨놓기 위해 시간을 나누어 놓았습니다. 그는 27세의 신체 건강하고 힘이 넘치는 나이에 죽게 된 것입니다. 동료들과 이별 인사를 나누면서 그는 그 중 한 명에게 질문을 했는데,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동료들과 이별 인사를 한 후에 자기 자신에 대해 돌아보려고 할애한 2분의 시간이 도래했습니다. 그는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데, 3분 후면 이미 다른 누구도, 다른 무엇도 어떤 존재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무엇이 되는 것인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 순간 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만큼 그에게 괴로운 것도 없었습니다.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삶을 되찾을 수 있다면, 영원함을 가질 수 있지 않을 것인가! 그 영원함이 내 것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나는 1분 1분을 1세기로 바꾸어 한 순간도 잃지 않을 것이며, 매분을 선물로 생각해서 허비해 버리지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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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당신의 아내가 토츠키의 정부로 살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나요?” “네, 부끄러워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 의지로 토츠키와 산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절대 그 사실에 대해 나무라지 않을 수 있나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 공작은 그녀의 마음을 공감하는 말투로 말했다. “당신에게 말씀드렸듯이 당신이 승낙했다는 사실이 제게는 영광입니다. 당신은 이 말을 듣고 웃었고, 주변에서도 마 찬가지였죠. 아마 저 자체가 우스웠을지도 모릅니다만, 저는… 무엇이 영광인지를 알고 있기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당신은 지금 스스로를 망치려 하지만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당신에게 로고진이 찾아왔 고, 가브릴라 아르달리오노비치가 당신을 속이려 한 것이 뭐 어떻단 말입니까? 당신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한 겁니다. 당신은 도도해 보이지만 스스로를 자책하기 때문에 지금은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당신을 돌봐드리겠습니다. 저는… 저는 당신을 평생 존경하며 살 겁니다, 나스타시야 필리포브나.” 공작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말을 마쳤다.
--- pp.99~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