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리는 신경이 쓰인다. 대체 저게 뭔지, 사람들이 왜 저렇게 난리인지 알고 싶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동시대인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욕망하는지 아는 것은 내 삶에 ‘역사성’을 부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문학 이론가 르네 지라르도 말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곧 동시대인의 욕망 보고서다.”
--- p.8~9
“스냅 사진처럼 자신의 모습을 담은 기록에 대한 욕구와 그와 직결되는 소비 심리는 결혼이나 생일과 같은 중대사에만 몰리는 것은 아니다. SNS가 현대인들의 중요한 소통 창구가 되었다는 지점을 주목해야 한다. SNS의 시대에는 매 순간 스스로를 어떻게 기록하고, 과시하는지가 중요해졌다. SNS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닌 보통의 삶, 즉 일상 그 자체가 콘텐츠로 소비된다”
--- p.22
“중국에서 발흥해 수 세기 동안 한반도 역사와 함께한 무속과 역학이 다시 뜨거운 이슈의 한복판에 떠올랐다. 이런 떡상의 배경엔 젊은 세대의 뜨거운 관심도 있다. 고루한 토속 신앙의 잔재, 낡은 세대의 전유물이라기엔 요즘 젊은이들의 사주 사랑이 유별나다. 사주는 성격 유형 검사 MBTI와 감히 쌍벽을 이루는 셀프 탐구의 도구가 됐다. 사주 역학은 어쩌다 요즘 것들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게 된 걸까?”
--- p.36
“대형 유통사를 거쳐야만 창작물을 판매하는 경로를 확보할 수 있었던 종전과는 달리, 지금은 클릭 한 번으로도 창작자가 팬들과 직접 소통, 거래할 수 있는 시대다. 크리에이터가 더 개별적이고, 더 희귀한 팬들의 요구 사항에 직접 응답할 가능성도 커졌다. 100만 명 중 한 명만 관심을 가지는 작품이나 아이디어라 해도 지구상으로 따지면 이런 사람들이 7000명일 수 있다. 이 7000명이야말로 나를 배신하지 않고 끊임없이 소비해줄 팬이다. 다시 말해 유명세와 제품 다양성의 상관관계를 그린 그래프에서 오른쪽으로 끝없이 뻗어 나가는 ‘긴 꼬리’의 기적을 명심하라는 교훈이다.”
--- p.58
“취재에 응한 업계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했던 말이 있다. 라이선스 사업의 성패는 브랜드에 대한 공부에 달렸다고 말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유명 브랜드의 로고 디자인만 상품에 붙여서 판매하는, 이른바 ‘근본 없는 로고 플레이’만으로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다 보니 단지 보기 좋게 제품을 포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 온 라이선스의 이미지를 재해석하고, 또 적극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려는 이벤트들이 이어지고 있다.”
--- p.67
“시트콤은 각종 크리에이터의 ‘롤플레잉?체험형 ASMR’과 지상파에서 자리 잡지 못한 개그맨들의 개인 채널에서 다시 부활 중이다. 〈강유미 yumi kang좋아서 하는 채널〉, 김대희의 〈꼰대희〉와 같은 개인 채널과 여럿이 모여 만드는 〈숏박스〉, 〈피식대학〉 등의 채널은 이미 이 영역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특히 〈피식대학〉의 ‘비대면 소개팅’, ‘05학번 is back’, ‘한마음 산악회’ 같은 히트 시리즈물은 시트콤 제작 방식을 차용해 아예 캐릭터와 서사를 구축해 버린 사례다. 연속성을 가지고 줄거리가 이어지고, 이 서사를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건 물론, 거대한 ‘피식 세계관’을 형성해 개별 캐릭터들이 시공간을 넘어 시리즈를 넘나들기도 한다. 이 정도면 현대판 시트콤의 새 문법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 p.105
“이처럼 현대 좀비의 이미지를 이루는 작은 조각들은 과거 동서양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발견된다. 그것이 좀비가 현재 전 세계인에게 통하는 장르가 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두려움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의 콘텐츠가 된다. 때로 좀비는 말살해야 하는 타자, 때로는 배고픈 군중이 되기도 하고, 자유 의지를 상실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 p.127
“비록 현실의 나는 야근을 마치고 치솟는 집값을 걱정하며 씻지도 못한 채 쓰러져 잠들지만, 매력을 두고 핑퐁 게임을 벌이는 연애는 여전히 가치 있고, 또 아름다운 것이다. 이 희망을 가진 시청자들은 TV를, 태블릿PC를, 휴대 전화를 켜고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연애 없는 연애 시대’는 여전히 뜨겁다.”
--- p.134
“욕망을 공유하고, 가끔 뻔뻔하게 자랑도 하면서, 서로를 북돋아 주는 거지방의 유쾌한 챌린지를 경험하며 모든 무지출 챌린지의 목표는 역시, 지출이라는 점을 느꼈다. 많은 사람이 언젠가 정말로 값지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지르는’ 그날을 위해 현재의 욕망을 억누르고 또 절제한다. 소비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삶의 활력소이며 이해하기 쉬운 삶의 의미다. 대다수 거지방에서 결국 소비는 무조건적인 배격의 대상이 아닌 더 의미 있어야 하는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 p.143
“돈이 필요할 때 당장 구하기 쉽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겠지만, 쿠팡 아르바이트가 요즘 부업 대세가 된 데엔 꼭 돈만 이유가 된 건 아니다. 단기간의 고단한 노동과 그에 대한 보상이 바로 따르는 구조가 무기력한 일상을 회복하고 자기 효능감을 일깨우기에 좋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다. 그래서 쿠팡 알바는 치료의 일종이다. ‘인생 노잼’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처방하는 노동 치료 말이다.”
--- p.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