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봉지에서 우유를 꺼내 커다란 도자기잔에 가득 따른다. 그 도자기잔은 홍대 입구의 어느 생맥주집에서 개업 기념으로 준 오백 시시들이 잔이다. 그것을 전자 레인지에 넣고 삼십 초 버튼을 눌러놓은 다음 봉지 안의 것을 냉장고 속에 정리한다. 띵, 소리와 함께 돌고 있던 전자 레인지가 조용해진다. 나는 우유를 꺼내 마신다. 중간에 숨을 쉬기 위해 딱 한 번 잔에서 입을 떠었을 뿐 거의 벌컥벌컥 소리가 날 정도로 적극적으로 마신 것이다. 도자기잔을 씻어 엎어놓고 나는 욕실로 들어간다. 손을 씻고 나와서는 바로 침대에 눕는다. 그런 다음 비로소 앓기 시작한다.
--- p.71
애리는 다음주쯤이면 파리를 떠날거라고 적고 있다. 샤모니에 가서 몽블랑을 구경한 다음 밀라노에 들러 서울로 돌아오겠다고. '서울에 가면 집을 구할 때까지 언니 집에 좀 있어도 괜찮을까?'하면서 '안 그러면 엄마한테 가야 하는데. 다 큰 딸이 재가한 엄마 집에 빌붙어 있는 것도 우습잖아.' 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 p.217
신호등 앞에서 멈추는 자동차의 바퀴에서는 물보라가 허공으로 솟아 올랐다. 단체여행을 온 꼬마들처럼 거리를 신나게 뛰어다니는 회색 비의 행렬, 쏴아 하며 세상을 뒤덮는 소리, 허둥지둥 분주하고 들떠 보이는 사람들. 그것을 내다보며 나는 현석을 생각했다. 어디에서 이 비를 보고 있을까. 새로 빵을 굽는 시각이었던지 등뒤에서는 갓 구운 빵냄새가 피어 올랐다. 나는 빗속으로 뛰쳐나갔다.
--- p.91
셋은 좋은 숫자이다.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 이 어리석은 은유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당연히 비극이 예정되어 있다. 둘이라는 숫자는 불안하다. 일단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그때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은 첫 선택에 대한 체념을 강요당하거나 기껏 잘해봤자 덜 나쁜 것을 선택한 정도가 되어 버린다.
셋 정도면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일이 잘 안될때를 대비할 수가 있다. 가능성이 셋이면 그 일의 무게도 셋으로 나누어 가지게 된다. 진지한 환상에서도 벗어나게 되며, 산에 오를때와 마찬가지로 체중을 양다리에 나눠 싣고 아랫배로도 좀 덜어왔으므로 몸가짐이 가뿐하고 균형잡기가 쉽다. 혹 넘어지더라도 덜 다칠 게 틀림없다. 실제로도 내게는 언제나 세 번째 선택이란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가 있다는 얘기다.
--- pp.7-8
사랑을 위로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고향풍경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고향의 사진을 구해다 보여 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다른 멋진 풍경으로 데려가 고향을 잊게 해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애인을 소개해 줘 풍경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할 수도 있다. 삶은 우리의 정면에만 놓여 있는 게 아니다.
--- p.160
사랑에서 환상을 깨는 것이 배신의 역할이다. 환상이 하나하나 깨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 완결되어가는 과정이라면, 사랑은 배신에 의해 완성되는 셈이다. 사랑은 환상으로 시작되며, 모든 환상이 깨지고 난 뒤 그런데도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그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을 깨달으면서 완성되고, 그러고도 끝난다.
--- p.9
독신이란 자기 자신의 행동이나 노동을 일일이 의식하며 사는 일이다. 시든 꽃은 내가 버리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꽃병 속에서 썩어가고, 머그잔 바닥의 커피 찌꺼기도 내가 컵을 씻기 전에는 계속해서 그대로 말라붙어간다. 깨진 컵의 유리 조각도 나 아니면 처음 위치에 한없이 엎드려 있다. 신문 역시 내 손으로 들여다놓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현관에 버려져 쓸모없는 폐지가 되어간다. 어떤 순간 그런 것에 염증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목록이라도 만들 듯 일일이 의식하게 만드는 공간에 짜증이 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동반할 존재라는 것이 귀찮고 벅차게 느껴져 화분 하나조차 두기가 싫어지는 때가 온다.
--- p.221
'당신과는 상관 없는 아이인지도 모르겠어.'
현석의 눈빛이 날카롭게 와서 꽂힌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보일 듯 말듯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차갑게 말한다.
'한 순간도 방심하지 못하게 만드는 군.'
'있는 그대로야.'
'그럼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하지? 할 사람이 따로 있을 텐데.'
현석다운 말이다.
--- p.90
나는 희망을 갖는 일이 두려워. 결국 적응하게 되고, 지속되기를 바라고 그런 것들 모두. 희망을 가지느 ㄴ것은 뭔가를 믿는다는 거야. 당신은 그 결과가 뭐라고 생각해? 삶은 늘 우리를 속인다구. 삶은 말야. 믿으라고 있는게 아니야. 배신을 가르쳐 주기 위해 있는 거야. ... 희망을 가지면 난 약해져.
--- 본문 중에서
'그럼 내가 한번 증명해볼까? 지속적인 사랑이 있다는 걸?'
'그래, 시간 있으면.'
'내가 평생 당신 뒤를 따라다니면서 인생을 탕진하면 믿겠어? 내 임종에 와서 말해줄래? 저런, 아직까지 나를 사랑하고 있었어? 그럼 세상에 사랑이 정말 있긴 있나보네? 그 증명을 더 확실하게 하려면 내가 오래오래 살아야겠구나. 몇 년이면 믿겠어? 오십 년? 백 년? 아니면, 천 년?'
--- p.259
그러나 나는 달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첫번째로 즐겁겠지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간 전부에 언제나 그 사람을 만나고 있을 수는 없다. 내 모든 시간을 첫번째 즐거움의 수위로만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세번째, 네번째, 열한번째의 일에도 즐거움을 배당해야 한다. 그래야만 첫번째 즐거움의 무게에 대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문화비평가와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술을 마신다.
--- p.37
계속 눈이 내리고 있는 기척이 느껴질 뿐 차 창 밖의 풍경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본다. 창을 두텁게 덮고 있는 하얀 눈.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차단시켜주고 사무치게 사랑하게 해 주는 얼음의 벽.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뜨겁게 서로의 깊이를 찾아 뒤척이고 있다. 저주라 해도 이대로 풀리지 말기를. 이렇게 함께 얼어붙어버리기를. 생이 얼마나 긴데 단 한순간도 멈출 수 없단 말인가.
그러나 신은 자기 식대로만 자비롭다. 양성이 하나로 붙어버리는 저주는 언제나 풀리게 되어 있다. 저주를 푸는 주문이라도 되는 듯이 현석의 가벼운 신음 소리가 들린 뒤 우리의 몸은 갑자기 허무한 결락 속으로 빠져든다. 추위를 느끼고 우리는 옷을 찾아 집어든다. 우리의 동작은 뜨겁게 몸을 합했던 사람들 같지 않게 너무나 침통하다.
--- p.263-4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일지도 모른다.집착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아무리 집착해도 얻지 못할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 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고통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것으로 만드는데 정열을 다 바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 p.12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
그런 날이 있다. 불현듯 누군가를 생각했는데 바로 그 사람에게서 소식이 오는 날. 그러면 이렇게 말한다. 안 그래도 네 생각 했는데 뭐가 통했나 보다....라고
--- p.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