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지예괘(雷地豫卦)는 내괘 곤괘(坤卦, )와 외괘 진괘(震卦, )로, 우레가 땅으로부터 나오는 형상이다. 예괘(豫卦)는 예비하는 것으로, 사람의 종교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우예(盱豫)는 쳐다 보면서 예비하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대상적 존재를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이다. 우상숭배(偶像崇拜)의 전형으로 돌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형상에 의지하거나, 특정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다. 이것은 진실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후회(後悔)가 따르게 된다.
쳐다볼 우(盱)는 눈 목(目)과 어조사 우(于)로,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가는 것이다. 목(目)은 대상의 경계를 가장 먼저 접촉하고 가장 끌리는 것이기 때문에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식(六識)에서 가장 먼저 안식(眼識)이 나오고, 또 『금강경』에서는 오안(五眼)이라 하여,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을 밝히고 있다.
--- p.91, 「예괘(豫卦)」 중에서
천뢰무망괘(天雷无妄卦)는 내괘 진괘(震卦, )와 외괘 건괘(乾卦, )로, 하늘 아래에서 우레가 치는 것이다. 하늘 아래에서 성인지도(聖人之道)가 행해지기 때문에 만물이 모두 허망함이 없는 것이다.
『잡괘』에서는 ‘무망(无妄)은 재앙이다’(无妄은 災也라)라 하여, 허망함이 없는 것이 오히려 재앙이라 하였다. 우리의 삶에서 어려움과 시련은 자신의 심지(心志)를 키워주기 위한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무망(无妄)은 재앙이 되는 것이다. 시련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 같지만, 그렇게 해서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불교의 육도윤회(六道輪廻)에서 인간계(人間界)를 통하여 해탈(解脫)의 길로 갈 수 있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사람은 고통도 있고 안락도 있어서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마음 때문에 해탈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고통이 없는 천상계(天上界)에서는 해탈을 성취할 수 없고, 그곳에 머무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고통이 역연(逆緣)이 되어 삶의 본질을 찾고자 하고, 이것이 기연(機緣)이 되어 무상(無常)을 느끼고, 현실의 안락을 떠나 영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무망(无妄)괘는 사람이 허망함이 없이 살아가는 길과 하늘이 내리는 재앙을 이겨가는 것을 의미한다. 허망함은 사람이 실존적 삶의 본질을 깨우치기 위한 과정으로, 성인이 밝힌 하늘의 뜻을 궁구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 허망함이 없으면 현실에 안주(安住)하기 때문에 재앙이 되는 것이다.
--- p.130, 「무망괘(无妄卦)」 중에서
산뢰이괘(山雷頤卦)는 내괘 진괘(震卦, )와 외괘 간괘(艮卦, )로, 산 아래에서 우레가 치는 형상이다. 군자가 마음속에서 성인지도를 익히고 있다.
말씀을 삼가야 하는 것은 성인의 말씀을 듣고 익혀야 하지, 관념적 이데올로기의 말은 삼가고 조심하라는 것이다. 불교의 유식삼성(唯識三性) 가운데 하나인 사람의 관념과 감정은 있지만 천리(天理, 眞理)가 없는 정유리무(情有理無)의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서 진리를 왜곡하는 삶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또 음식을 절도에 맞게 먹어야 하는 것도 아무 음식이나 먹으면 안 되고, 가려서 먹어야 하고 시(時)에 맞게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잡다한 음식을 먹는데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 p.139, 「이괘(頤卦)」 중에서
택천쾌괘(澤天夬卦)는 내괘 건괘(乾卦, )와 외괘 태괘(兌卦, )로, 연못이 하늘 위에 있는 형상이다. 쾌(夬)는 나의 소인적(小人的) 마음을 결단하는 것이다.
군자쾌쾌(君子夬夬)는 군자가 결단하고 결단하는 것이다. 한 번은 몸의 욕망을 결단하고, 또 한 번은 관념적 사유를 결단하는 것이다. 또한 군자쾌쾌에서 두 번의 결단은 한 번은 탐욕심을 결단하는 것이고, 또 한 번은 진리를 따르겠다고 결단하는 것이다.
불교의 유식론(唯識論)으로 보면, 중생의 망념은 있지만 참다운 이치는 없는 정유리무(情有理無)의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두루 계교하고 헤아려서 집착하는 성질)을 결단하고, 허깨비같이 임의로 있는 여환가유(如幻假有)인 의타기성(依他起性, 다른 것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성품)을 결단하는 것이다. 그래야 중생의 망정(忘情)에는 없지만 참다운 이치에는 있다는 정무리유(情無理有)인 원성실성(圓成實性, 원만히 성취된 참다운 성품)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을 얻게 된다.
--- p.214, 「쾌괘(夬卦)」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