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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巨人)의 숨결

: 고하 송진우 글모음 및 관계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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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130쪽 | 152*224*60mm
ISBN13 9791189674311
ISBN10 1189674319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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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늘날 우리가 약자가 되었는가 하면 누구든지 그 답안에는 심히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하리라. 다못 힘이 없으니까 약자가 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에 우리로 하여금 약자가 되는 것을 가장 광영으로 생각하고 또한 행복으로 생각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만일 그렇지 아니하고 약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고통이며 또한 사회의 한 비극이라 하면 우리는 하루라도 약자가 되지 아니하기를 맹세하여야 할 것이며 또한 그 방법을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요컨대 문제는 단결력이다. 환언하면 단결력은 각 개인의 심력(心力)이다. 심력, 곧 봉공심(奉公心)이 발달된 민족은 강자가 되어 우자(優者)가 되고, 봉공심이 박약한 민중은 약자가 되며 천자(賤者)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결함은 봉공(奉公)의 부족이다. 봉공이 부족하므로 분규가 생기며 시기(猜忌)에 터 잡아 모든 악을 행하게 된다. 이리하여 단결을 파괴하게 된다. 결국 우리를 약하게 한 자는 우리요, 다른 사람은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약하여 자멸할까, 강하여 자립할까. 이것이 곧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자결(自決)하는 분기점이다.
만일 강자가 되자면 힘이 있어야 되겠고, 힘이 있자면 단결하여야 되겠고, 단결하자면 각 개인의 봉공심을 환기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을 더욱 실감하는 바이다.
--- 「무엇보다도 ‘힘’ (최근의 느낌(感))- 개벽(開闢), 제5권 4호(총46호), 1924년 4월 1일」 중에서

만일 오늘날 조선의 장래를 의논하고저 할 것 같으면 오늘날의 조선이 과거의 조선과 달라서 모든 정세가 세계적 조선이 된 이상 먼저 세계의 대세 또는 사조의 동향이 어떠한 방면으로 추이하는가 하는 것을 명확히 파지(把持)치 아니하면 조선의 장래를 예측할 수 없을 것은 물론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보(一步)를 진(進)하여는 조선민족이라는 자체가 과거 문화적 생활에 있어서, 민족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그 능력을 발휘하였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역사를 참조하여 정확한 관념과 자신을 파지(把持)치 아니하면 또한 그 장래를 논단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먼저 조선민족의 문화적 능력을 역사적으로 소구(溯究)하고 또한 조선과 뗄 수 없는(不可離) 환경, 정세를 세계적으로 통관치 아니하면 조선의 장래가 여하히 진전될가 하는 결론을 단안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경술의 대변혁으로 인하여 잠재되었던 민족적 의식이 더욱 첨예화하게 되고 또는 보통교육의 보급으로 인하여 민중적으로 세계적 문화와 사조를 완전히 보급감수(普及感受)하였다. 이것이 곧 기미운동의 발단이 된 것이다. (이하 생략)
--- 「세계대세와 조선의 장래 - 동광(東光), 제3권 6호, 1931년 6월」 중에서

주: 이 글은 한국근대명논설 66편 중의 하나로 선정되어 1967년 《신동아》지 신년호 별책부록으로 간행되었다
1
만보산 충돌 사건을 단순하게 중국인의 조선민 압박이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심히 생각이 깊지 못한 짓이다. 좀 더 냉정·침착하게 사태의 진상을 포착하고 그 이면에 잠재한 여러 가지 미묘한 관계를 조용히 관찰한 뒤에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하물며 이 사건을 곡해하고 무고한 중국 재류민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의 일이랴.
백보를 양보하여 일의 잘못됨이 전혀 그들에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을 계기로 하여 조선 재류의 중국인에게 보복적 폭행을 가하는 것은 일방 민족적 금도의 결여를 폭로하는 것인 동시에 일방으로 사태를 더욱 분규케 하고 자타의 손실을 확대하는 것뿐이다. 재외의 동포가 위난에 있다는 보도를 듣고 이를 염려하고 그들을 위하여 돕고자 하는 생각이 있음은 동포의 뜨거운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 할 것이나, 그 방도를 잘못하고 그 목표를 어그러뜨린다 하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아니하랴.
작금 간에 인천과 경성 등 각지에서 생긴 불상사는 실로 통탄할 일이다. 동포 제위의 냉정하고 현명한 태도를 다시 촉구하고자 한다.

--- 「만보산(萬寶山)사건에 대하여- 동아일보, 1931년 7월 5일」 중에서

주: 어려운 한문 투의 원문을 허권수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가 쉽게 한글로 풀어준 것임

5월 19일 토요일은 금년에 봄 양복을 처음 입은 날이라 새로 단장한 새 정신을 무엇으로 값을 할까 하다가 새 기운, 새 희망에 둘려있는 교육계의 희망인 중앙씨(中央氏 : 중앙학교를 의인화)를 찾아뵈올 생각으로 진솔 두루마기 바삭거리는 소리에 싸이어 안국동 막바지로 활개치고 갔다.
안현(安峴)에서 별궁(別宮)의 서쪽 담장을 끼고 쭉 올라갔다. 이마가 거의 맞닿을 뻔하여 문득 정신을 차려 눈을 오른편으로 돌려 보니, 검정 칠한 담장이 둘렀고 수 백 년 봄바람 가을비를 겪은 우리 전통양식의 오래된 집 몇 채가 유리창 저고리를 입고 있는 것이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예쁜 털이 박혀서 보는 이로 하여금 반가운 생각을 내게 하는 이 집이야말로, 비록 옛날 학교라 하나, 그 운명은 새로운 중앙학교 어른이다. 문턱이 닳도록 다녔다고 말할 만하건만, 오늘 걸음이 새삼스럽게 반갑고 새삼스럽게 정다운 것은 어째서인지?….(중략)
교감은 차분하여 생각이 깊고 멀어 그 한계를 알 수 없는 송진우 군, 간사는 잘 간직해 온 구슬 같아 가볍게 내보이기를 허락하지 않는 백관수(白寬洙) 군, 늘 봄같이 따뜻하고 팔방으로 두루 원만한 이중화(李重華) 군, 온화한 용모를 손으로 잡을 듯하나 도리어 빠른 칼날처럼 날카로운 유태로(劉泰魯) 군, 중후한 인격에 그 정성이 돈독한 김성집(金聲集) 군, 정채(精彩)가 안으로 쌓여 빛이 밖으로 나타나는 이희준(李熙晙) 군, 둘러보니 모두 구면이라 골고루 인사하였다.

--- 「중앙학교 방문기- 청춘(靑春), 제8호, 1917년 9월호」 중에서

우리는 이충무공의 유적을 영구보존하기 위하야 이제 이 모임을 발기하는 것이다. 묘소, 사당, 위토로부터 친필, 일기, 상시 쓰시던 기물 미세한 것까지도 어느 것이나 다 민족적으로 보중할 것은 이제 긴 말을 부칠 필요도 없거니와 근일 신문에 보도되는 바를 보건대 기약을 정한 바 없이 근촉(勤促)을 받은 바 없이 시시각각 붓고 날로 커지는 성금은 참으로 충무의 당일 지성을 느끼게 영사하는 것 같다. 처음 걱정하던 문제로 말하면 이렇다. 이 어른의 사당과 묘소 수호와 향화(香火)가 없이 황송스럽게 되어 일구황량(一區荒凉)으로써 우리의 심면(心面)을 미루어 볼 수 있지 아니할까 하였던 것인데 이제 저같은 열성으로써 차차 처음 걱정을 놓을 만큼 되었으나 다시 또 걱정할 바 있으니 목전의 보존을 넘어 만세의 보존을 기하지 아니할 수 없으며 충무의 사묘(祠墓) 이외 일체를 보존하는 문제가 지금으로는 충무 한 분의 대공(大功), 성열(盛熱)을 받드는 것뿐 아니라 이 모든 유적에 전 민중의 그칠 줄 모르는 열성이 위요(圍繞)한 것이 더한층 보중(寶重)에 보중(寶重)을 더하야 놓았나니 우리로서 더욱이 그 영보(永保)를 걱정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런즉 구안(苟安)에 그칠 수 없고 초솔(草率)히 마말을 수 없고 숙조(肅條)하던 전상(前狀)을 그대로 뒤에 끼칠 수가 없다.

--- 「성명서 - 이충무공유적보존회, 근대한국명논설집, 1979년」 중에서

이충무공유적보존회 위원
윤치호(尹致昊) 남궁훈(南宮薰) 송진우(宋鎭禹) 안재홍(安在鴻)
박승빈(朴勝彬) 유억겸(兪偵兼) 최규동(崔奎東) 조만식(曺晩植)
정광조(鄭廣朝) 김정우(金正佑) 김병로(金炳魯) 정인보(鄭寅普)
한용운(韓龍雲) 윤현태(尹顯泰) 유진태(兪鎭泰)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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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갈등과 분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현실에 절망하고 있는 분들은 이 책에서 불굴의 용기와 포용의 리더십, 깊은 지혜와 통찰력으로 난세를 헤쳐간 한 거인을 만나며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의 혼란기에 민족진영의 중심 역할을 하며 건국과 사회통합을 위해 헌신하다 애석한 죽음을 맞이한 고하 송진우는 현실에 발을 굳건히 디디고 이상을 추구한 균형과 통합의 지도자이자 미래를 내다본 혜안의 지도자였다. 1925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그의 국제정세론 ‘세계대세와 조선의 장래’는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도 국제정세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나라 잃은 지도자의 고뇌와 통찰력이 번뜩이는 명 논설들이다.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에 큰 손실이었다. 일독을 권한다.
- 조태열 (전) 주유엔대사 )
“이 책은 세계사적 근대의 격랑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간 식민지 조선을 근본적으로 리셋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고하 송진우의 지적 분투의 기록이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사회적 민주주의, 공동체적 사회의 개혁과 개체적 인간의 재생, 민족적 자유와 초국가적 평화라는 모순된 과제들을 껴안고자 했던 고하의 고민은 국제정세, 민족적 자유, 사회적 생존, 자유연애, 사형폐지론 등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조선 민족의 자유와 이웃 민족의 자유를 같이 사유했던 ‘만보산사건’ 논평 등은 21세기 한국의 얼치기 민족주의자들에게 던지는 고하의 죽비소리이다.”
- 임지현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 /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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