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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좀 꺼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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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406g | 140*210*30mm
ISBN13 9788954694599
ISBN10 8954694594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나는 내가 대단한 걸 이루지는 못하리란 걸 알았다. 대신 얼빠진 누군가가 정신을 놓고 있을 때 그 사람 손에서 대단한 것을 훔쳐낼 방도를 궁리했다.
--- p.13

어쩌면 아이들은 그런 것일지 몰랐다. 내가 전혀 원하지 않을 때에도 마음을 열게 만드는 간절하고 여린 존재.
--- p.56

엄마는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보 같은 짓이고 일종의 나약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였을 것이다.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나의 상상을 세상에 들키지 않게 감춰야 한다는 걸 깨달았던 때가. 하지만 무언가를 꼭꼭 깊이 감추다보면 정말 필요할 때도 꺼내기가 힘들어진다.
--- p.71

나를 빤히 보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이 아이들에게서 나 자신을 보게 되리란 생각을 했다. 이 아이들은 나였다. 사랑받지 못하고 망가진 아이들. 나는 이 아이들이 원하는 걸 갖게 해줄 생각이었다. 애들은 나를 할퀴고 발로 찰 테지만 나는 이 아이들을 건드리는 사람은 누구라도 할퀴고 발로 찰 생각이었다. 이 아이들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고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 사랑같이 복잡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에 대한 따스한 감정이 솟았고, 내 옹졸한 가슴에서는 그것만 해도 발전이었다.
--- p.101

여기가 내 집이 아니란 건 알았다. 아이들의 집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훔칠 생각이었다. 우리한테는 긴 여름이 남아 있으니 그동안 이 집을 차지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 것이다. 누가 우릴 막겠나? 씨발 우리한테는 불이 있는데.
--- p.111

나는 아이를 바란 적이 없었다. 같이 애를 만들고 싶은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역겨웠다. 하지만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이상한 아이 둘이 지구로 떨어져 운석처럼 땅에 충돌한다면 그런 아이들은 내가 돌볼 수 있었다. 위험을 뿜어내듯 어슴푸레한 빛을 낸다면 나는 그걸 끌어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 p.205

“이게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베시가 말했다. “이게 다시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그럴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정말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게 없으면 어떻게 우릴 지키겠어요?” 베시가 물었다.
“모르겠다.” 내가 말했다.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지키지? 어떻게 세상이 나를 망치지 못하게 하지? 나도 알고 싶었다. 나도 정말 알고 싶었다.
--- p.255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을 것이다. 한곳에 모여서, 책장 위의 단어를 따라가며, 한 이야기가 끝나면 잠시 쉬었다가 또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해냈다. 아이들은 행복했다. 자기들 무리에 하나를 더했다. 아이들은 세상이 불에 타는 걸 보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서 덜 외롭길 바랐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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