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입사했던 1988년에 삼성은 국내 최고의 회사는 아니었다. 반도체 산업도 ‘아오지’라고 불렸으며, 국민소득 1만 달러 이상인 나라에서나 가능한 사업으로 이제 막 중진국에 턱걸이한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통념이 있었다. 그가 일해온 35년 동안 삼성은 글로벌 기업이 되었으며 그 규모와 내실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 p.8
반도체 성능의 발달은 주로 ‘미세화’에 좌우되는데, 미세화는 그 당시 반도체의 소재와 부품, 장비, 그리고 사람들의 몸이 최적화되어 어떻게든 만들어야 했던 수많은 시도와 오류의 결과물이다. 미세화는 동일한 면적에 동일 성능 혹은 더 향상된 성능의 트랜지스터를 더 많이 꽂아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 p.51
기흥 공장의 건설은 반도체 신화의 서곡이었다. 기술 선진국에서도 빨라야 18개월이 걸리는 공사를 6개월 만에 마무리 지은 것이다. … 외국 관계자들도 6개월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삼성은 휴일도 없이 24시간 피와 땀을 쏟아붓는 돌관공사로 불가능에 도전하였다. 대부분 공기가 혹한기였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84년 3월 말 공장이 완공되자 불가능하다고 하였던 관련 외국인들도 경탄해 마지않았다(『삼성전자 40년사』).
--- p.66
1983년 이병철 전 회장의 도쿄선언, 1987년 6월 항쟁, 1988년 서울올림픽, 1993년 삼성 신경영선언은 우리나라 역사와 삼성의 기업사에 길이 남을 대문자 역사(HISTORY)이다. 천기주 부장은 1988년을 서울올림픽이 아니라 자신의 삼성전자 반도체 입사를 가장 인상적인 역사로 말하고 있다. … 그의 이야기는 대문자 역사가 아닌 소문자 역사(history)이다.
--- p.82
여러분들은 신뢰가 없어, 어떻게 불만이 있다고 회사에 안 나올 수 있어! 근무할 자격이 없으니 아무도 라인에 들어오지 마, 라인 가동 중지시켜!
--- p.102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삼성신경영선언(1993. 6. 7)’ 이후, 사장단 간담회 때 나온 말로 삼성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지금이야 독보적인 매출액과 이익으로 코스피(KOSPI)는 삼성전자와 같이 움직인다고 할 정도지만, 저 선언이 있을 때만 해도 현대에 뒤지고 있었다. 선언이 나온 1993년은 삼성이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했던 첫해였다. ‘신경영선언’은 한마디로 양적 경영에서 질적 경영으로의 변화였다.
--- p.132~133
그는 스태프의 또래 과, 차장급 사람들을 만나면서 ‘드라이’하다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의 정서와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모조리 그의 검은 얼굴, 현장에서 핏대를 올리던 언어, 과제를 꼭 해결해야 한다는 목표의식 속에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p.153
한 대에 수십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설비는 반도체 제조에 있어서 핵심 자산이다. 거대한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은 설비와 설비를 운영하는 사람과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물질, 이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반도체에서 설비(Machine), 사람(Man), 물질(Material)을 3M으로 구분하고 이것을 명확하게 측정(Measure)하는 것을 포함해서 4M으로 확장한다.
--- p.191
삼성전자의 위기는 세 부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임원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중간관리자는 전전긍긍하다가 버겁고, 새로운 이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서문에서 제시한 대로 그간의 ‘불가피한 정신 승리’를 마감할 때가 됐다. 삼성은 물론 기존 한국 사회의 통상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기업들의 위기다.
--- p.222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망에서 서구의 설계, 아시아의 생산이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 서구는 다시금 생산공장을 현지로 이동하고 있으며, 아시아는 더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기 위해 반도체 설계에도 집중한다.
--- p.228
오십 대를 돌아보면서, 이제는 주변을 보려고 해. 사람들과 어울리고 돈을 쓰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면서 살자. 남들만큼은 못하지만, 뒤늦게 가지만…. 삶에 변화가 생긴 거지. 이제는 평범한 생활 쪽에 서려고 노력해. 친구들과 모임을 5년, 10년 같이 했는데,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더라고. 제일 행복한 놈이라는 거야.
--- p.239
그가 걸어왔던 삶을 연구하는 방식이 ‘생애사’ 연구이다. 일반적으로 생애사 연구를 통해 그의 출생부터 살아온 지금 그리고 바라보는 미래까지 조망한다. 그가 살았고 살고 있는 시대적 맥락을 통해 독자들은 그 시대와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그는 삼성에서 보낸 시간이 그가 삼성맨이 아니었던 시간보다 더 길고, 그의 삶 전면에 삼성은 자리하고 있다.
--- p.251
삼성전자 반도체 경영혁신과 교육 분야에서 33년간 근무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왔는데, 그간 쌓은 노하우를 협력사와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준 삼성전자 반도체에 감사드립니다.
--- p.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