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유일한 길,” 예수 그리스도
세상에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숱한 길들이 존재하는데, 그중에는 동서(東西) 교역을 위해 만들어진 “비단길”(silk road)이 있고,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제패와 영토 확장을 위해 만들어놓은 “정복자의 길”도 있으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그런 길도 있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하늘과 우주 저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길들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만들어졌고, 또 앞으로도 인류가 만들 그 모든 길은 인류의 행복과 발전을 위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그것은 영원한 생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길이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가 걸어야 할 나름의 인생길이 있다. 하지만 저마다의 인생길이 어떠하든지 모두가 반드시 만나게 될 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죽음의 길”이다(잠 16:25). 그런데 성경은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한 고통의 시작”이라 말씀하신다(히 9:27).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길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길”로, 곧 “영원한 영광의 길”로 옮기라고 당신을 초청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마련해놓으신 어린양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당신을 영원한 멸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실 “유일한 길”이다. 그런데도 『참 하나님』(요일 5:20)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해 놓으신 그 길을 거부한다면 당신은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는 과연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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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열매
마지막 만찬의 자리를 떠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을 향해 가시면서 “포도나무와 그 가지들의 비유”를 통해 주님께 지속적으로 붙어 있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는 농부는 열심히 땅을 파고 쟁기질하며 씨를 심고 물을 주면서 인내로 그 열매를 기다린다. 어떤 씨를 심었으면 그것이 흙을 뚫고 나와서 잘 자라야 하고 잘 성장할 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열매도 맺을 수 있어야 한다. 농부들이 포도나무를 심는 것은 풍성한 가지나 무성한 잎, 예쁜 꽃을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포도 열매”를 얻기 위해서이다. 오직 보고 즐기기 위한 “관상용”으로 포도나무를 심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참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성도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바라신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묵은 땅을 파 일구어야 한다(호 10:12). 나뭇가지나 이파리만 매만지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농약을 치고 비료를 주며 종교적인 위선으로 겉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것으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결코 맺을 수 없다. 결국 그런 나무는 뿌리도 깊지 못해서 뽑히게 되어 있다. 병충해를 견딜만한 힘도 없다. 근본적으로 토양을 바꾸어야 한다. 체질을 바꾸지 않고서는 어떤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 주의 말씀을 통해서 흙을 완전히 갈아엎을 수 있어야 한다. 진리의 말씀으로 영적인 체질을 바꿈으로써, 농약이나 비료처럼 어떤 인위적인 방법이 없어도 풍성한 열매를 자연스럽게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는 “즐거움이 주의 법에 있고, 주의 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는 것이다(시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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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드리는 가장 위대한 기도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쉬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신 분이다. 40일 동안 사탄의 시험을 받으실 때부터,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앞두고서도 늘 아버지께 기도를 드렸다(요 11:42).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땀이 큰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고(눅 22:44),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저들을 용서해달라”는 중보 기도를 하셨다(눅 23:34). 그렇지만 요한복음 17장처럼 주님의 기도를 이토록 상세히 기록해 놓은 곳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이렇듯 요한복음 17장은 주님의 기도로 가득한 장이며, 무엇보다 갈보리의 위대한 사역을 앞두고 아버지께 드린 중보 기도이다.
요한복음은 다른 공관복음과 달리 “하나님의 아들”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는데, 이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성경 전체에서 “아버지”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 또한 요한복음이다. 그 가운데서도 요한복음 17장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과 단순한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관계를 넘어서,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깊이 느낄 수 있다. 특히 주님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셨고, 또한 갈보리에서 이루신 위대하신 사역을 근거로 지금도 거듭난 당신을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거듭난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또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기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구원받도록 기도하며, 복음을 전파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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