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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재전쟁
왜 위나라가 이기고, 촉나라는 패하고, 오나라는 자멸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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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옮긴이의 말 _5
프롤로그 │인사와 인맥은 만사의 근본이다 _15

1장 인재와 인맥 _17

1. 정의(情義) _19
영웅들의 결합/의리와 인덕/충성심의 유래
2. 학벌(學閥) _27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학벌의 연결고리/학벌과 인맥 형성
3. 문생고리(門生故吏) _34
원소·원술 가문의 기반/4대 삼공을 지낸 명사의 최고봉/한 번 부하는 영원한 부하
4. 지연(地緣) _40
발음의 차이와 인맥 형성/명성을 낳는 고장 ‘여남과 영천’/지역과 학문
5. 혈연(血緣) _48
피는 물보다 진하다!/혈연에게만 대군 지휘를 맡긴 조조/제갈공명 집안의 탁월한 종족 유지법
6. 인물평가(人物評價) _56
인사(人事)와 평가 /경제적 이익에서 문화 자본으로/명사끼리의 ‘자율적 질서’ 형성

2장 국가 시스템과 출세의 사다리 _63

1. 관청과 관리 _65
후한 말기의 관료제도/질석제와 신분/‘10만 명에서 15명’의 세계로 진입해야!/출세의 필요조건
2. 삼공과 승상 _74
월권의 해로움과 권력 분립/소하의 고사, 곽광의 고사, 주공의 고사/승상 조조에게로 권력을 집중시킨 까닭
3. 구경과 상서 그리고 환관 _83
내조와 외조의 분리/왜 환관이 권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황제 권력의 연장인 환관의 무서움
4. 군부와 도독 _90
후한부터 삼국시대까지, 장군이 증가한 이유는?/조조와 제갈량의 군부, 공통점과 차이/오나라 대도독 주유와 위나라 대도독 사마의, 그 결정적 차이
5. 명사들과 지방질서 _97
호족을 이용한 한나라의 관대한 지방정치/지방 인재의 출세 방법/향리 질서의 유지자
6. 출세의 사다리 _106
후한에서의 출세 조건/효렴과 출신자의 승진 루트와 세습/공로보다는 효행을 중시한 후한 시대/효렴과보다 출세에 더 유리한 제도들/변혁기의 입신출세

3장 위나라, 시대를 변혁하다 _119

1. 야망을 품게 한 인맥 _121
‘내시 할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조조가 이상으로 삼은 인물/서북의 기병 전술을 계승한 조조
2. 조조의 인사, 그 심오한 계략 _132
허수아비 황제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다!/천하의 판세를 판가름한 관도대전/조조가 ‘벽소’를 중요하게 여긴 이유/막부의 전개와 전국적인 인재 모집/‘헌제 옹립’으로 조정의 인사권을 장악하다/‘한위 선양’을 성공시킨 것은?
3. 능력주의로 시대를 선취하다! _145
유교제일주의를 부정하는 법체계 정비/한나라의 토지?세제를 근본부터 개혁하다!/오로지 능력만을 최우선으로 삼다!
4. 인사의 기준을 바꾸다 _158
인사는 전쟁과 같다!/새로운 인사 기준 ‘문학’/조비의 ‘전론’
5. 유교주의의 뿌리인 ‘효’와의 격투
조조가 싫어한 ‘위선적인 효’/조조의 의지를 전한 무덤 ‘고릉’/장례 의식에 대한 조조와 조비의 차이
6. 창업보다 어려운 수성 _175
문학에서 유교로의 반동/군주 권력과 명사 집단의 알력/‘정현학’과 위나라 혁명의 정통화/조씨에게 사마씨에게 선양해야 했던 이유

4장 촉나라, 전통을 계승하다 _185

1. 유비의 의리와 천하삼분지계 _187
관우·장비와 결의형제/의리 덕분에 높아진 명성/‘명사 정권’으로 뒤바꾼 ‘삼고초려’/유비는 늘 어진 사람이었을까?/초려대의 참뜻
2. 인맥을 초월한 포부 _203
포부를 키우다/실천적으로 천하를 논한 양양 그룹/제갈량의 이상, 유비의 꿈/오촉 동맹을 실현한 제갈량의 세 치 혀/유비와 조조, 선택의 기로
3. 제갈량, 그대가 익주를 취할지어다! _215
유비, 익주에 할거하다!/입촉 초기의 인재 등용 방식/법정을 총애한 이유/유비와 제갈량의 힘겨루기/촉한 황제 즉위로 한실은 부흥하였으나/“촉나라를 그대가 차지해도 좋소.”라는 유언의 진실은?
4. 지연을 초월한 촉나라 정권 _228
제갈량은 왜 형주 명사를 우대하였는가?/촉나라, 형주와 익주의 연합정권/‘북벌의 기지’ 익주 통치의 절묘함
5. 제갈량의 포부 _238
출사표, 만세에 전해지는 ‘충(忠)’의 문장/북벌의 또 다른 목적/제갈량의 유일한 승기, 제1차 북벌/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다/제갈량이 울면서 마속을 참수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
6. 촉, 이념에 순교하다 _258
승상 제갈량의 후계자들/카리스마 지도자 사후의 조정형 인사/승상의 뜻을 이어받은 강유/촉나라의 분열과 유선의 항복/촉의 멸망, 그리고 전설의 시작

5장 오나라, 지역과 함께 생존하다 _273

1. 강동의 오나라, 육조(六朝)의 시작 _275
중국사에서 오나라의 위상/오나라를 정통으로 여기는 간보의 《수신기》/위?촉?오 삼국은 대등하다/육조 의식의 맹아/지역을 기반으로 삼은 오나라
2. 대의명분과 호족과의 대립 _290
손견, 무력으로 세력을 넓히다/손책?손권에게 무장집단을 물려주다/‘오군 사성’과의 대립/의형제 주유와의 결속
3. 포부를 활용한 인맥 구축 _302
명사들을 회유하다/노숙의 손오 자립책/항복록과 주전론
4. 명사들과의 힘겨루기 _312
노숙과 여몽의 커다란 차이/적벽 주전론자들이 죽은 후/비로소 독립정권을 세운 황제 손권/인사권을 둘러싼 공방
5. 강동을 위하여 _324
권위와 권력/후계자 구도에서 크게 실책한 손권/손권의 죽음 이후/지역을 사수하다 멸망하다!
6. 지역에 매몰된 결과 _334
오나라 망국 군주 손호의 생각/《오서》를 저술해 조조를 폄하하다!/강동의 ‘오소리 종놈’은 왜 서진에 충성하였는가?

6장 서진(西晉), 조직을 제압하다 _345

1. 신분 귀족제와 사마씨의 인맥 _347
신분제의 고착화/혼인으로 세력을 넓힌 사마씨/인맥을 이용하다/무제 사마염의 후궁들/무제의 가족들/폐쇄적 혼인 정책
2. 인사 제도 개혁 _359
인사를 둘러싼 다툼과 사마의에 의한 ‘주대중정제도’/사마의, ‘정시의 정변’으로 조정을 장악하다!/사마소는 왜 오등작제를 만들었나/작위 제도를 둘러싼 황제와 귀족의 줄다리기3. 유교의 논리가 서진의 운명도 뒤바꾸다! _378
위나라와 진나라의 토지 제도 변화/사마의가 민둔전을 폐지한 이유/사마염, 후계자를 고민하다/유교의 한계가 서진의 운명도 뒤바꾸다!

에필로그 │인사와 인맥으로 본 삼국지 인재전쟁 _388

저자 소개2

와타나베 요시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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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도쿄 출생. 일본 최고의 《삼국지》 전문가이자 저명한 중국 사학자. 쓰쿠바대학교에서 〈후한(後漢) 국가의 지배와 유교〉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홋카이도교육대학 조교수와 다이토문화대학 문학부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와세다대학 문학학술원 교수이다. 일본 ‘삼국지학회’ 사무국장으로 《삼국지》에 대한 저술과 해설, 감수를 왕성하게 하고 있으며, 영화 〈적벽대전〉의 감수를 맡기도 했다. 저서로는 《도해 삼국지》, 《도해 제갈공명》, 《삼국지의 무대》, 《유교와 중국》, 《십팔사략으로 읽는 삼국지》, 《삼국지 영웅들과 문학》, 《삼국지 운명의 12대전》, 《삼국지 사전》,
1962년 도쿄 출생. 일본 최고의 《삼국지》 전문가이자 저명한 중국 사학자. 쓰쿠바대학교에서 〈후한(後漢) 국가의 지배와 유교〉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홋카이도교육대학 조교수와 다이토문화대학 문학부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와세다대학 문학학술원 교수이다. 일본 ‘삼국지학회’ 사무국장으로 《삼국지》에 대한 저술과 해설, 감수를 왕성하게 하고 있으며, 영화 〈적벽대전〉의 감수를 맡기도 했다. 저서로는 《도해 삼국지》, 《도해 제갈공명》, 《삼국지의 무대》, 《유교와 중국》, 《십팔사략으로 읽는 삼국지》, 《삼국지 영웅들과 문학》, 《삼국지 운명의 12대전》, 《삼국지 사전》, 《춘추전국》, 《시황제 중화 통일의 사상》, 《한제국-400년의 흥망》 등 40여 권이 있다. 《후한서》(전 19권) 번역으로 오오쿠마기념학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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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기자를 하다가 동아시아 문학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에서 수학한 후 중국으로 건너가 베이징과학기술대학과 베이징대학에서 공부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다. 현재는 창작과 번역· 저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대학 시절 연작시 「중세의 가을」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옮긴 책으로 『논어와 주판』(삼성경제연구소 추천도서?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사마천 사기』(국립중앙도서관 추천도서), 『정조의 사기영선』 『헤이안 일본』 『언지록』 『섬』 『쟁경』 『장제스 평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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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72g | 152*223*18mm
ISBN13
9791192386096

책 속으로

후한 말기 지식인층은 ‘지학(志學)’, 곧 15세가 되면 군(郡)이나 현(縣)의 지방관이 설치한 학교에 들어가거나, 노식처럼 유명한 학자가 여는 사숙에서 기초를 공부했다. 유교를 배우는 동시에 ‘학연’이라는 인맥을 쌓기 위한 과정이었다.
--- p.27

중국에서 지연(地緣)의 중요성이 높은 까닭은 한자라는 표의문자 사용에 한 원인이 있다. 지금도 장강(長江, 양자강) 남쪽은 300킬로미터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며, 중국 전체로 볼 때 10대 방언권이 형성되어 있다. …… 중국에서는 ‘발음’을 같이 하는 자들의 유대가 강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지연의 중요성이 높다. ……인맥은 구구절절한 속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이에서는 형성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지연’이 인맥을 맺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 p.40

제갈량은 양양군에서 인물 평가를 받고, 형주 명사가 됨과 동시에 혼인 관계를 맺어나갔다. 면남(沔南) 명사 황승언(黃承?)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 언니는 방덕공의 아들 방산민(龐山民)에게 시집을 갔다. 황승언은 양양 명사 채모(蔡瑁)의 윗누이를 아내로 맞았고, 채모의 손아래 누이는 유표에게 시집을 갔다. 곧 제갈량은 형주목 유표와 혈연관계인 셈이다. ‘형주 명사’로 살아남기 위해 인맥을 ‘혈연’으로 구축했음을 알 수 있다.
--- p.48

명사들의 지위는 벼슬과 달랐고, 일족의 군망(群望)에 의해 고관에 취임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이 얻은 명성으로 규정되었다. 명사가 되기 위해서는 ‘명성’으로 그 위치가 표현되는 호족·명사들 사이에서 여론의 지지를 얻을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한 지름길은 대표적인 명사로부터 ‘인물 품평’을 얻어 인정받는 것이었다.
--- p.60

후한의 관료제도에서는 〈공차→효렴과 등 상거→현량과 등 제거→오공부(五公府)의 벽소→사퇴→황제의 징소〉라는 순서로 출세의 가속도가 빨라졌다. 제거나 벽소, 그리고 징소를 받기 위해 명성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 지배계층인 명사들이 명성을 존립기반으로 삼은 이유다.
--- p.116

그렇다면 조조는 어떤 인재등용 정책으로 권력을 공고하게 다진 것일까? 한마디로, 조조는 추천 받은 자가 고리(故吏)로서 종속성을 강하게 가지게 되는 ‘벽소(?召, 막료로 불러들임)’로 자신의 인적 세력기반을 수립하였다.
--- p.137

이렇게 조조는 한나라를 지탱하던 유교의 틀을 뛰어넘는 인사 기준으로 ‘능력주의’를 내세웠다. 그리고 “성스러운 한나라에 의한 대일통(천하 통일)”을 무너뜨리려는 원대한 야심(후한 찬탈), 그것이 조조의 ‘위공 취임’부터 본격화되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조조는 또 하나의 인사 기준을 내놓았다.
--- p.157

더욱이 조조는 문학 선양을 위해 ‘인재 기준’을 ‘문학’으로 바꾸려 했다. 문학자 정의(丁儀)를 승상서조연(丞相西曹?, 인사 담당관)에 앉혀 문학을 기준으로 한 인사를 시작한 것이다. 후한의 향거리선은 효렴 등 유교적 가치 기준에 따라 관료를 선발하였다. 이 때문에 지식인은 모두 유교를 배웠다. 이 기준을 문학으로 변경하여 그 가치가 유교를 뛰어넘게 하려는 의도였다.
--- p.162

유비는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책사로 맞이하고, 이를 계기로 ‘형주 명사 집단’에 가입함으로써 자신의 집단을 ‘의리’로만 결속시킨 용병집단에서 제갈량 등 명사를 핵심으로 하는 정권으로 환골탈태시키는, 즉 질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었던 것이다.
--- p.194

《삼국지연의》는 유비의 ‘인’을 관우·장비와의 ‘정(情)’과 함께 버무려 묘사하였다. 도원의 맹세로 소설이 시작되고 관우·장비의 복수에서 유비의 생이 마감되는 구도, 여기서 도원결의를 끝까지 지키려고 한 유비의 의리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유비에게 ‘남을 사랑하는’ 인(仁)의 본질을 보았다. 여기에는 인군(仁君)으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를 원하는 중국인들의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 p.198

또 초려대는 흔히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라고 하지만 ‘삼분’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솥발처럼 나뉜 채 위나라?촉나라?오나라, 그 천하삼분을 실현한 뒤에도 제갈량은 위나라를 정벌하려는 북벌(北伐)을 멈추지 않았다. 천하삼분을 ‘목적’으로 한 손오의 노숙(魯肅)과 달리 제갈량은 어디까지나 ‘대륙의 통일’을 노렸던 것이다. 유비와 함께 건국한 국가는 한(漢) 혹은 계한(季漢)이 정식명칭이고, 촉한(蜀漢)이라 할 경우의 ‘촉’은 지역 이름이다.
--- p.201

제갈량이라는 존재는 형주 명사들의 영향력을 유비 정권 통치의 주춧돌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유비는 거병 이래 처음으로 형주를 본격적인 근거지로 확보할 수 있었다. 다만 이로 말미암아 유비 정권 내에서 ‘형주 명사 집단의 정치적 우월성’이 곧바로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유비는 형주 명사들을 포섭하는 일은 도모하되, 그들을 관우?장비 이상으로 대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가령 방통은 양양 집단에서는 제갈량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한때 손오의 주유를 섬겼던 탓인지 유비가 내린 벼슬은 고작 뇌양현(?陽縣) 현령에 지나지 않았다. 방통은 현에 재임하여 치적도 변변히 쌓지 못하고 면직되었다.
--- p.212

‘오군 4성’과 대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책이 강동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유의 지지 덕분이었다. 손견의 무력과 한실에 대한 충의를 인정한 주유는 직접 손책을 찾아가서, 아버지 손견이 화북에서 전쟁터를 누비며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손책과 어머니를 여강(廬江)으로 맞이하였다.
--- p.297

유비의 동정(오나라 공격)을 계기로 조위에게 조공을 바치고 오왕에 봉건된 손권은 자신의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승상을 두었다. 이때 명사 집단의 여론은 당연하다는 듯 장소를 밀었다. 그러나 손권은 승상이라는 관직은 일이 많고 바쁜 자리라는 구실을 내세워, 북래 명사 손소(孫邵)를 승상에 앉힌다. 손소가 사망하자 명사 집단은 다시 장소를 승상 후보로 추천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손권은 장소의 강직함을 이유로 고옹(顧雍)을 승상으로 삼았다. 손권은 명사 집단의 의지에 맞서 장소를 승상으로 임명하지 않음으로써, 명사의 자율적 질서에 군주의 인사권이 휘둘릴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며 군주 권력을 확립하고자 한 것이다.
--- p.318

후한에서 삼국 시대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연결되었던 인맥은 이렇게 해서 혼인 관계를 통해 고착화되었다. 바꿔 말해서 ‘인맥이 귀족제라는 제도로 조직화’되어 갔다고 해도 좋다. 명사의 시대였던 삼국 시대와 귀족제의 시대가 된 서진 시대의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 p.358

결과적으로 서진의 오등작제는 작위 제도 질서에 따른 국가적 신분제를 형성하고, 주대중정제와 결합하여 세습성을 띤 관료제도 운용을 일궈냈다. 벼슬은 그대로 세습할 수 없지만, 작위는 세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세습성을 띤 관료제도 운용이라는 중국 귀족제의 특징은 서진의 황제 권력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 p.376

출판사 리뷰

출중한 영웅도 뛰어난 인재를 얻지 못하면 천하에 우뚝 설 수 없다!

진수의 정사(正史)든 나관중의 소설이든 ‘삼국지’ 팬이라면 그와 관련한 교양도서 한두 권 이상은 읽어보았으리라. 옮긴이 역시 신문기자일 적에 삼국지 문화유적지 탐방을 열흘가량 다녀보기도 하고, 원전 삼국지에서 가지를 친 여러 책을 탐독하길 즐겼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에는 특히 학술적인 측면에서 상당한 깊이가 있고 관점도 독특하며, 나아가 세심한 역사적 고증이 바탕이 되어 있다.

‘삼국지’라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동양 고전이 경영학, 용인술, 처세술, 정치학 등의 보고라는 점은 이미 다른 삼국지 2차 해설서에서도 누차 강조하는 부분이다. 위·촉·오의 제갈씨 가문 인재 등용을 두고 “촉나라는 용을 얻고, 오나라는 호랑이를 얻고, 위나라는 개를 얻었다”는 평가가 전해오기도 하듯이, 삼국시대의 인재들이 각자 재능을 발휘하면서 유명한 일화를 숱하게 남긴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 책은 ‘변혁기의 인맥·인재 등용·입신출세’라는 원서의 부제가 암시하듯이, 그러한 내용을 집중적이고 심층적으로 파고들었다. 모름지기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하는 까닭을 삼국지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저자는 후한 말기부터 위·촉·오, 그리고 서진 시대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인사제도나 인맥 구축 기술을 중심으로 각국의 인재 등용 특징을 상세히 풀어나간다. 키워드로 요약하면 위나라는 혁신, 촉나라는 전통, 오나라는 지역, 진나라는 제도화에 서술의 중점을 뒀다. 그렇게 인재 활용과 인사시스템을 통해 삼국지를 깊이 있게 해석함으로써 ‘인사가 만사’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우쳐 주는 게 이 책의 색다른 매력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중국 삼국시대는 인사권을 쥐락펴락하고 싶은 군주와 자율성을 유지하고 싶은 명사들 간의 주도권 전쟁 시기였다. 한편으론 체계화된 인재 선발제도가 마련되거나 정착되지 못한 시대적 난맥상이 뚜렷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조조, 유비, 손권, 사마의 등이 난세에 살아남기 위해 인재 발굴에 뛰어든 궤적을 상세히 비교해 분석한다.

‘인사(人事)’와 ‘인재(人材)’가 만사의 근본임을 강조한 인재경영 지침서!

조조는 ‘유재시거(唯才是擧)’를 앞세웠다. 즉, 오로지 능력만을 인사 추천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유교 이념에는 어긋나지만 유능하다면 인간성에 문제가 있어도, 적의 참모일지라도 자기 진영에 등용했다. 조조의 특징은 지지지반인 중국 북부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인재를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다만 후계자인 조비 등은 유재주의와 유교와의 타협을 모색했다. 모름지기 개혁을 추진하다 중도에 타협·포기하면 체제 약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위나라가 사마씨의 진나라에 망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유비는 후한의 혼란기에 관우, 장비와 의리로 뭉친 집단의 우두머리였다. 따라서 기반이 가장 약했으나 후한을 이어받는다는 명분과 제갈량을 영입함으로써 명사사회와 연결되고 천하삼분지계를 내세움으로써 촉한을 건국했다. 그러나 국가라는 것은 제갈량 같은 걸출한 인재 혼자만의 능력으로 지켜낼 수는 없다.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공격하다 죽음으로써 의리로 일어나 의리로 무너졌다고 하겠다.

오나라는 장강 유역 지방정권의 색채가 강했다. 그리고 손권은 전국 통일이 목적이 아니라 현지 자립을 목표로 한 정권이었다. 화중과 화동, 곧 북방에서도 장소와 같은 명사 엘리트를 초빙했으나 현지 가문 출신의 심복과 장군을 더 중시했다. 적벽대전 이전에 손권에게 조조 항복론을 주창한 쪽은 지역에 자리잡지 못한 북방 출신 명사들이 중심이었다. 반대로 주전론자들은 주유 등 지역 명사였다. 그래서 장소는 명사였지만 문관 최고 엘리트인 승상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다.

진나라는 위나라를 전복시키고 천하를 승계하는 데 있어 부담이 없었다. 위나라가 한나라를 승계하니 진나라도 위나라를 승계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진나라는 이를 교훈삼아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작위체제를 도입하여 신분제를 공고히 하였다. 이로써 아무리 능력 있는 자라 해도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했다.

흔히들 정치나 기업 경영에서 핵심은 ‘인재’와 ‘인사’라고 한다. 삼국지를 문학이라는 틀 안에서 구경하면 재미있는 영웅들의 한판 싸움이나 인정과 의리를 강조하는 무협지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이 책처럼 지배계층의 형성 추이와 인재 등용과 인사 시스템, 인간관계 변모 등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난세의 치열한 세력다툼 속에서 인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아무리 출중한 영웅이라 하더라도 뛰어난 인재를 얻지 못하면 천하에 우뚝 설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이는 위에 국가권력이 있으면 밑에는 인맥에 기반한 대책이 있다는 중국인의 기본 처세를 대변하는 말이다. 이렇듯 인재와 인맥은 ‘삼국지’ 시대라는 아주 먼 옛날부터 형성되어 왔다는 지은이의 통찰이 더욱 이 책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저자의 말

인간관계는 ‘중국의 기본’이다. 그리고 인사(人事)는 만사(萬事)의 기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삼국시대를 판에 박은 듯 서술하지 않았다. 우선 여섯 가지로 분류한 ‘인맥 형성 방식’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1장), 인맥이 발휘되는 주요 장소인 국가의 관료제도 구조를 조명하였다(2장). 그 뒤에 인재들이 위·촉·오 삼국에서 각각 어떻게 발탁되었는지를 살피고, 인맥과 인사(人事)를 중심으로 삼국시대에 벌어진 군주와 신하의 각축전을 그려나갔다(3~6장). 그 사이 위나라는 ‘혁신’, 촉나라는 ‘전통’, 오나라는 ‘지역’, 진晉나라는 ‘제도화’에 서술의 중점을 두었다.

훌륭한 지도자는 인재들을 적절하게 발탁하고, 그들로 하여금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중국 삼국 시대의 영웅들도 마찬가지였다. 훌륭한 인재를 얻어 난세를 꿋꿋하게 살아가며 공을 이루고 이름을 떨쳤다. 그러한 이 책의 골자가 전해지면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리뷰/한줄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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