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랫동안 인생을 밑바닥에서 올려다봐야 했던 운명이었고 고통이 그를 금강석같이 강하고 매력적인 인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야.
--- p.15
당신은 내 미움과 내 그리움의 주인이야. 밤마다 내 꿈을 지배하는 독재자. 내 머리카락과 내 목과 내 발의 지배자.
--- p.79
예루살렘의 여름이야, 알렉. 여름은 왔는데 당신은 오지 않았네.
--- p.140
우리는 끝났어, 일라나. 외통수야. 마치 비행기 추락 사고가 일어난 후처럼, 우리는 마주 앉아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블랙박스의 내용을 분석했어. 그리고 지금 이후로는 이혼 선고문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거야.
--- p.161
내가 만약 유령이라면, 일라나, 당신은 내 호리병이야. 내가 빠져나오지 못한. 그리고 당신도 성공하지 못했지, 쏘모 부인. 만약 당신이 유령이라면 나는 그 호리병이니까.
--- p.166
한때 나는 당신을 사랑했고 내 뇌리 속에는 사진 하나가 들어 있어. 당신과 내가 어느 여름날 저녁에 예루살렘산이 마주 보이는 우리 집 테라스에 앉아 있고 아이는 블록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지. 식탁 위에는 아이스크림 잔들이 놓여 있고. 읽지 않은 석간신문도. 당신은 식탁보에 수를 놓고 있고 나는 솔방울과 이쑤시개로 학을 만들고 있어. 사진은 그랬어. 우리는 그럴 수 없었지. 그리고 이제는 너무 늦었어.
--- p.181
이 세상에는 행복이라는 게 있어, 알렉. 그리고 고통은 행복의 반대가 아니라 우리가 허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할 좁은 골목이야. 쐐기풀 사이를 기어서 지나 은색 달빛에 젖은 숲속 고요한 빈터로.
--- p.205
불행한 사람들은 대부분 틀에 박혀 정해진 고통에 빠져 있어. 너무 많이 써서 닳고 닳은 상투적인 불행의 문구 네댓 개 중 하나가 공허한 일상에서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거야. 그렇지만 행복은 중국 화병처럼 희귀하고 섬세한 그릇이야. 소수의 사람들이 얻는 것으로,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파내거나 조각했고, 사람마다 각자 자기 모양과 형상대로, 각자 자기 기준에 따라 만들어서, 다른 행복과 닮은 행복은 하나도 없어. 그리고 사람들은 행복을 주조할 때 자신들의 고통과 굴욕도 함께 녹여 넣는 거야. 마치 납에서 금을 정제해 내듯이.
--- p.206
정말 난 그가 좋았어. 당신은 ‘호감’이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들어 본 적 있어? 물론 당신의 전문 분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이지만 말이야.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을 좀 찾아봐. ‘ㅎ’으로 시작하는 말이야.
--- p.234
여기 당신을 위해 우리 아들의 십계명을, 순서는 좀 다를지 몰라도 그 애가 말한 그대로 옮겨 적어 볼게. 하나, 모두를 불쌍히 여기기. 둘, 별에 좀 더 관심 갖기. 셋, 불평하는 것에 반대. 넷, 욕하는 것에 반대. 다섯, 미워하는 것에 반대. 여섯, 창녀들도 사람이고 쓰레기가 아니다. 일곱, 두들겨 패는 것에 반대. 여덟, 죽이는 것에 반대. 아홉, 서로를 잡아먹지 말기. 두 손으로 뭐든지 하기. 열, 열 내지 말기.
--- pp.272~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