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 종교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다.” 즉, 이방 종교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헤맨다. 우리는 ‘우리를 찾고 계신 하나님’에 대해 무지(無知)한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마치 ‘적막한 우주를 떠도는 버려진 별이나 작은 먼지’ 같다고 느끼는 의식 상태를 갖고 태어난다. 성경은, 인간이 스스로를 그렇게 느끼는 것이 ‘죄’로 인해 겪는 ‘소외’(alienation)의 자각(自覺)임을 알려 준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거나, 있어도 무관심하거나, 혹은 진노와 심판을 위해 웅크리고 있는 어떤 낯선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끊임없이 자비와 은혜로, 진리와 공의로, 무엇보다 긍휼과 사랑으로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그리고 피조 세계를 계속해서 찾아오신다. 처음부터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그 말씀을 버린 인간과 그 세상을 또 말씀으로 찾아오신다.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서뿐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하시고, 기적을 통해 찾아오기도 하신다. 성경은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 「제2과 찾아오시며, 살리시며, 알게 하시는 하나님」 중에서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언약’의 중요한 구조가 드러난다. 그것은, 성경적 언약은 그 언약을 성취하는 쌍방에게 ‘동일한 차원의 행위’를 요구한다기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기초한 ‘비대칭의 신실함’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런 제안부터가 ‘은혜’요 선물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끝까지 성취하실 책임도 ‘하나님 자신’이 지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안하시는 언약이 ‘은혜’인 근본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요구, 계명’ 즉 “너는 나의 약속을 믿고, 나를 신뢰하며,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2:4; 15:6; 17:1-4)라는 요구를 실행해야 할 의무를 갖게 된다. 그러니까 성경적인 언약의 특징적 구조는, ‘은혜와 요구’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이 언약의 구조가 보여 주는 중대한 질서와 균형이 있다.
--- 「제4과 언약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새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이 내다보았던 ‘열방의 회복’에 관한 약속을 보존하며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낸다. 새 언약은 모세 언약이 공들여 이루고자 했던 ‘율법을 지키는 제사장 나라’의 설립이라는 목적을 강화하며, 그것을 반드시 성취할 새로운 방식을 모색한다. 그리고 새 언약은 다윗 언약이 약속했던 ‘영원한 왕권’을 이어받을 진정한 왕, 진정한 메시아를 준비할 것이며, 그를 통하여 반드시 ‘의와 화평’의 나라를 세울 하나님의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마침내 노아 언약이 내다보았던 대로, 다시 이 피조 세계가 에덴동산처럼 회복되는 새 창조가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관해서도 더욱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할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나 언약은 모두, ‘유기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또한 ‘점진적’으로 펼쳐지고 성취된다. 새 언약은 옛 언약들과 유기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한 나무의 성장에 있어서 꽃이 잎사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의 발현이듯이, 또한 그 이전의 언약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점진적인’ 성격, 즉 전혀 다른 ‘불연속적’(discontinuity)인 차원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새 언약이 ‘새로운’ 이유는, 옛 언약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연속적이지만, 그 성장의 단계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개되어 드러나기 때문이다.
--- 「제7과 새 언약의 특징과 내용」 중에서
그것은 마치 한 나무의 꽃과 열매는 이미 몸통과 뿌리 속에 감추어져 있고, 역으로 그 몸통과 뿌리는 그 나무의 꽃과 열매로 드러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구약의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 ‘동물 제사’ 제도 속에는, 신약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증언한 계시의 내용이 ‘감추어져 있고’(레 1:4; 요 1:29),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에는, 출애굽 때에 희생당했던 유월절의 어린양이 가리키는 바가 ‘온전히 드러나’ 있는 것이다(출 12:3; 마 26:2).
마찬가지로, 뿌리에 해당할 만큼 구약에서도 오래된 계시인 “빛이 있으라”(창 1:3)라는 말씀은, 그 나무의 몸통 부분에 와서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로 드러나고, 꽃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가리켜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라는 말씀에서 그 절정에 이르는 것도 동일한 이치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 「제8과 새 언약의 성취와 신약성경의 형성 - 사복음서」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안에 거하시는 ‘생명의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연약함으로 순종하지 못했던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시는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롬 8:1-4). 우리를 ‘말씀을 순종하는 새 백성’으로 양육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다 행한다 해도 그것으로 인해 성령을 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선물로 받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는, 율법의 모든 요구를 성취한다.
그 결과는, 그리스도께서 하셨듯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다(갈 3:2; 5:14, 16). 그 온전한 사랑의 삶을 살아 내신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랑의 길을 걷게 하시고, 힘을 주시고, 끝까지 인도하사 온전케 하시기 때문이다. 새 언약이 성취된 결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코이노니아’(‘사귐, 공유, 동역, 연대, 나눔’의 의미)의 관계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라고 하신 언약 관계의 최종적인 실현이다(요일 1:3; 5:13; 계 21:3).
--- 「제10과 신약의 8중 복음 (1)」 중에서
이 땅에 있는 새 언약 백성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죄의 더러움에서 나와 하나님의 거룩과 의에 참여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세상 속에 넘쳐나는 죄와 불의에 맞서 싸우며, 항상 의에 주리고 목마른 백성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처럼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데에서 해방된 새 하늘과 새 땅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죽음을 이긴 부활 생명을 누리며, 이 땅에서 ‘남은 날들’을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고통과 고난을 피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단코 허무와 무의미에서 나오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고난 속에서 고통을 겪어도 허무하지는 않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롬 8:28-39). 영원하신 성령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부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그 사랑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 사랑으로 그들을 치유하시며, 그들이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영원한 삶을 살게 하시기 때문이다.
--- 「제13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내용 (1)」 중에서
죄인을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고, 상한 갈대도 꺾지 않는’ 긍휼로 살려 내는 사람, 그가 그리스도인이다. 거짓으로 속여 죄를 짓게 하고, 이유 없이 증오하며, 죽이기를 즐겨 하는 세상 풍조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그 아들의 생명의 복음을 전파할 뿐 아니라, 언제든 참된 것을 말하고 행하며, 이유 없이도 사랑하고(요일 3:11-14), 모든 어그러진 관계들을 회복하는 데 전력함으로써, 자신과 이웃, 가정과 교회, 사회와 국가, 세상과 자연까지 살려 내는 생명의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장차 온전히 이루어질 그 영원한 생명과 사랑의 나라, 곧 새 하늘과 새 땅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제14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내용 (2)」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