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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꽃

숨은 꽃

: 1992년도 제1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16이동
리뷰 총점8.0 리뷰 5건 | 판매지수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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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465쪽 | 700g | 153*224*30mm
ISBN13 9788970126630
ISBN10 897012663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한 시인의 말처럼 어차피 고통은 이 세상을 사는 인간들이 지불하는 월세 같은 것일진대, 견디어 누르고 있으면 제 압력으로 솟아나오는 뿌리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이제는 그런 것들까지 폐기 처분되는 시대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은 그 믿음이 두려웠던 것일까, 나는.
--- p.15,---pp.8-12
추억의 영상은 한번 저장되었다고 해서 움직임을 멈추고 각인되어지지 않는다. 저장된 그 순간부터 기억은 저 혼자의 힘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영상으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때로는 기억과 현실을 맞추려는 덧없는 노력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람들은 가끔씩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이전에 보았던 기억을 더 신뢰하고, 그것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자 하는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 p.25-26
마 병장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바는 아니었지만 그후 은기가 있을 동안까지는 원대 복귀를 하지 않았던 것은 틀림없었다. 십일월로 접어들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스팀이 들어오는 병실에서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아이들처럼 낄낄거리며 눈내리는 풍경을 구경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은 극히 단순한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세상의 모양을 한꺼번에 바꾸어 놓았다.

'말 마시오. 눈이라면 참말로 지긋지긋해요.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운전병 출신 있소?'

얼굴이 가무잡잡하게 생긴 사내가 별로 지긋지긋하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 p.142
그 꽃말을 알고 싶다. 한 천재가 온 힘을 다해 퍼뜨리고 다니는 꽃말을 비밀을 알고 싶다. 그걸 알 수 있다면 내가 빠져 있는 이 미로에서 헤어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미로는 사실 처음부터 미로였다. 그러나 전에는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었다. 그 믿음은, 지금 생각하면, 작가에게 던져진 구명줄이었다. 차라리 안락 의자였다. 거기에 편안히(역시 지금 생각하면 편안히, 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앉아 밤이 새도록 쓰고 또 쓰면 언젠가는 출구에 닿는다는 가냘픈 희망이 있었다.
--- p.80
*숨은꽃
언젠가는 이 세상살이가 돌아가는 이치의 끝자락이 나마 만져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영원히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인의 초상을 그린 후 그때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한계령
그날 밤, 나는 꿈속에서 노래를 만났다. 노래를 만나는 꿈을 꿀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밤에 나는 처음 알았다. 노래 속에서 또한 나는 어두운 잿빛 하늘 아래의 황량한 산을 오르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은 모두지쳐 있었고 제각기 무거운 짐 꾸러미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짐 꾸러미의 무게에 짓눌려 등은 휘어졌는데, 고갯마루는 가파르고 헤쳐야 할 잡목은 억세기만 하였다. 목을 축일 샘도 없고 다리를 쉴 수 있는 풀밭도 보이지 않는 고친 숲에서 그들은 오직. 무거운 발자국만 앞으로 앞으로 옮길 뿐이었다.
--- p.85, --- p.119
*숨은꽃
언젠가는 이 세상살이가 돌아가는 이치의 끝자락이 나마 만져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영원히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인의 초상을 그린 후 그때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한계령
그날 밤, 나는 꿈속에서 노래를 만났다. 노래를 만나는 꿈을 꿀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밤에 나는 처음 알았다. 노래 속에서 또한 나는 어두운 잿빛 하늘 아래의 황량한 산을 오르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은 모두지쳐 있었고 제각기 무거운 짐 꾸러미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짐 꾸러미의 무게에 짓눌려 등은 휘어졌는데, 고갯마루는 가파르고 헤쳐야 할 잡목은 억세기만 하였다. 목을 축일 샘도 없고 다리를 쉴 수 있는 풀밭도 보이지 않는 고친 숲에서 그들은 오직. 무거운 발자국만 앞으로 앞으로 옮길 뿐이었다.
--- p.85,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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