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라면 으레 늦은 밤에 글을 쓰고 낮에는 활동하지 않으며, 담배 연기와 술에 찌들어 있을 것 같은 선입견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편견일 뿐.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한 시간씩 꾸준히 달리기를 하고, 마라톤 완주를 무려 25번이나 성공한 작가이자 러너이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시작한 달리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하루키는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소설의 성향이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마라톤 완주는 성실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 타고난 재능이 있다면 남보다 적은 노력으로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꾸준한 연습이 없다면 재능이 있어도 불가능하다. 하루키가 매 년 한 번씩 마라톤 완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그가 자기관리에 철저하다는 뜻이다. '소설 쓰기는 육체노동'이라고 생각한다는 하루키는 소설 쓰기를 위한 집중력과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 달리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30년 동안 글쓰기에 대한 재능과 성실함으로 꾸준한 작품을 발표해 왔다. 글쓰기와 달리기에 대한 그의 진지함은 이름만으로도 책을 팔 수 있는 작가가 아니라 자기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작가로 하루키를 다시 보게 만들어 주었다.
하루키는 자기 묘비명에 '작가(그리고 러너)'라고 새겨 넣고 싶다고 말할 만큼 달리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게다가 그는 단순한 러너가 아니라 100km 이상을 쉬지 않고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 완주 경험도 있다. 매 년 겨울에는 마라톤을, 여름에는 수영, 자전거, 마라톤을 연이어 하는 트라이애슬론까지 꼬박 챙기는 운동 마니아다. 이쯤 되면 '여러분 운동합시다. 운동하면 좋아요.'라고 말할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학교 운동장에서 단체로 오래 달리기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한다. 운동이던 공부던 자기가 좋아서 해야 하지 절대 타인의 강요로 해서는 즐길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하루키 본인도 학교에서 억지로 공부한 것보다 졸업 후에 재미있어서 한 번역 공부가 훨씬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땀 흘리는 게 너무 싫고, 운동이라곤 전혀 안 했었다. 그러던 내가 아는 후배의 권유로 수영을 하기 시작하면서 운동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지금은 일주일에 3~4번씩 수영과 달리기를 하고 있다. 2009년의 목표 중에 하나도 하프 마라톤을 성공하는 것이었는데 하루키의 열정을 보면서 하프 마라톤 다음엔 꼭 마라톤 완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이렇게 꾸준하고 성실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 하루키의 달리는 삶은 좀처럼 존경하는 사람을 손에 꼽기 힘든 나에게 하나의 롤모델이 되었다. 한 번도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 멋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묵묵히 달리고,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한 명, 한 명의 러너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달리기에 대한 작은 욕망과 함께 지금 나는 얼마나 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으로 읽어주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철학’이라고까지는 말하기 어렵다 해도, 어떤 종류의 경험칙과 같은 것은 얼마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것은 적어도 내가 나 자신의 신체를 실제로 움직임으로써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누구나 공통적으로 잘 응용할 수 있는 범용성은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무엇이 어떻든 간에, 그것이 나라는 인간인 것이다.” --- 서문 중에서
“어쨌든 나는 그렇게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서른세 살. 그것이 그 당시 나의 나이였다. 아직은 충분히 젊다. 그렇지만 이제 ‘청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조락凋落은 그 나이 언저리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인생의 하나의 분기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나이에 나는 러너로서의 생활을 시작해서, 늦깎이이긴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다. --- p.77
“나는 올겨울 세계의 어딘가에서 또 한 번 마라톤 풀코스 레이스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여름에는 또 어딘가에서 트라이애슬론 레이스에 도전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계절이 순환하고 해가 바뀌어간다. 나는 또 한 살을 먹고 아마도 또 하나의 소설을 써가게 될 것이다. --- pp.257~258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 책은 하루키 최초의, 어쩌면 최후의 회고록이 될지도 몰라 그 의의와 가치가 적지 않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좀처럼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는 이 저저가, 30년간의 작품 활동을 위한 고통스런 역정과 문학적 성취를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서 혹독한 마라톤 단련의 고통을 극복하며 작가에게 필요 불가결한 체력과 집중력 그리고 지구력을 길러온 과정을 솔직하고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 임홍빈 (번역가)
한계를 인정하고 조금씩 목표를 높여 해소해나가는 점에서 풀 마라톤과 소설을 쓰는 것은 비슷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가운데 ‘인간’은 가장 잘 드러난다고 말하는 하루키의 육성이 확실하게 들려오는 한 권의 책.
- 요미우리 신문
‘나는 달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100킬로 울트라 마라톤에서 이러한 몰아의 경지까지 경험한 러너작가 하루키의 회고록이다. 이 책에서는 문학에 못지않는 달리기에 대한 작가의 기백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