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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210쪽 | 268g | 150*210*10mm
ISBN13 9788963013183
ISBN10 8963013189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인증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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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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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수통굴로 가면 인민군 안 와?”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동네가 깊은 산속에 묻혀 있어서 거기까지는 안 들어갈 것 같혀.”
“그럼, 우리 외가에 가서 사는 거야?”
“며칠만 있으면 인민군이 지나간다고 하니까 그때 다시 돌아오면 돼.”
어른들은 걱정이 가득한데 나는 감이 오지 않았다. 가끔씩 어머니를 따라서 갔던 외가를 간다 하자 신이 났다. 다니던 학교는 이제 그만 가도 된다.
나는 찌그러진 냄비와 헌 고무신을 주고 엿장수한테 산 사카린도 챙겨 책 보따리에 넣었다. 외가에 가서 이모들이랑 사카린을 물에 녹여 먹으며 놀 일을 생각하자 입안에 보글보글 웃음이 고였다.
--- p.15

“형님, 똥이 안 나와서 힘을 너무 줬더니 찢어져 피가 나는디 어떡하면 좋아요?”
“누가 똥이 그렇게 안 나오는디?”
“저도 그렇고 애기 아부지랑 식구들이 다 그래요.”
“흉년에 생키를 계속 먹다 보면 똥이 굳어지는 바람에 밑이 찢어져서 고생하는 일이 많어.”
지난번에 봉석이 혼난 얘기를 들려주며 나물밥과 죽을 쒀서 번갈아 먹어야 한다 했다.
“아~ 그래서였구만요.”
가져온 양식도 떨어져 가고, 타향이라서 먹을 것을 구할 길이 없어 막막한 생활이었다. 아짐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든 피난 생활에 정말이지 똥꾸멍이 찢어지는 가난을 겪고 있는 나날이었다.
--- p.38

전쟁은 생각처럼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낮엔 대한민국, 밤엔 인민공화국인 날들이 계속되었다.
밤이면 인민군과 빨치산이 동네에 들어와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사람들은 그들을 말할 때 밤손님이라 했다. 빨치산이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공포스러워서 동네 사람들끼리는 그 말을 잘 안 썼다.
밤에 들이닥친 밤손님은 곡식은 물론 닭, 소, 양념까지 다 내놓으라고 했다. 조금 잘산다는 집이 그들의 표적이었다. 가난한 집에는 들어가 봤자 사람이나 끌어갈까 다른 것은 가져갈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뻔한 이치였다. 뿐만 아니라 전에 공무원으로 지낸 적이 있다거나 하면 찾아다니면서 잔인하도록 못살게 굴었다.
--- p.56~57

끔벅이는 ‘음머~’ 하고 소리쳤다. 마치 주인에게 이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실랑이 끝에 나오는 끔벅
이 울음소리에 나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엄니, 왜 끔벅이가 우는 거여?”
“조용히 혀.”
어머니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왜 그러냐고?”
“끔벅이가 끌려가고 있어.”
“뭐, 뭐라고?”
“암말도 말랑게. 방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여.”
“안 돼, 엄니, 우리 끔벅이 안 된단 말여!”
“조용허랑게. 저 사람들은 총도 있고, 낫도 들고 댕겨.”
나는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비틀비틀 쓰러질 듯 마당을 가로질러 외양간으로 달려갔다. 초학으로 며칠 동안 먹지 못한 나는 어지럼증 때문에 중심이 잡히지 않았다. 엉겹결에 어머니도 나를 뒤따라 나왔다. 나는 끔벅이 목덜미를 덥석 끌어안았다.
“안 돼요. 우리 끔벅이 안 된단 말여요!”
--- p.107~108

“삼촌, 왜 이빨이 빠졌어.”
그래도 삼촌은 말이 없다.
몸을 닦기 위해 옷을 벗겼다. 다리고 등이고 팔이고 온몸 구석구석이 피멍으로 얼룩져 성한 데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삼촌 왜 이렇게 온몸이 피멍이여?”
눈을 감고 있는 삼촌은 그래도 말이 없다. 멍든 삼촌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버지 얼굴이 삼
촌 얼굴과 겹쳐졌다. 아버지도 어디에서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부지 삼촌처럼 돌아와 줘. 삼촌처럼 이빨이 빠졌어도, 다리를 못 쓰게 되었어도 돌아만 와.’
--- p.1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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