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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가 아빠에게

: 반려인에게 남긴 강아지의 마음

리뷰 총점10.0 리뷰 5건 | 판매지수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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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280g | 128*188*20mm
ISBN13 9791185860671
ISBN10 1185860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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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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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아지로 살고 강아지로 죽었다. 내가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 아빠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셨다. 심지어 엄마는 서운한 게 있으면 다 풀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나는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뭐가 미안하셨을까? 그 순간 생각했다.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내 마음을 전해드리자. 엄마 아빠와 함께 나의 삶을 되짚어 보자.
--- p.6

2023년 1월 12일, 나는 죽었다. 이 사실을 먼저 말하는 이유는, 그래야 앞으로 풀어놓을 이야기에서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이 이야기가 진짜 내 생각과 말임이 분명해지지 않을까 해서이다..
--- p.10

큰댁에도 개가 있었다. 그 개는 이름도 없었고, 산책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365일 줄에 매여있었다. 겨울에도 밖에서 잠을 잤다. 집안에 발을 들여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내가 아빠 품에 안겨 집안으로 들어가는 걸 그 개는 놀란 듯 (내가 보기에 그랬다) 바라봤고, 거실에서 노는 나를, 아빠 무릎에 앉은 나를 보며 낑낑 소리를 냈다. 자기도 집안에 들어오고 싶다는 건지, 아니면 내 냄새를 한 번 맡아보고 싶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왠지 그 개와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다.
--- p.41

비록 분가했지만 난 내가 형과 항상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형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형은 당장 회사를 조퇴하고 달려와서 눈물을 쏟았다. 형이 너무 울어서 내가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p.57

냄새 이야기는 나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내 삶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내 몸에서 나는 냄새였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파양 당한 이유이기도 했다). 산책하고 나면 비린내까지 겹쳐 반드시 목욕을 해야 했는데, 첫 병원에서 강아지는 2주에 한 번씩만 목욕시키는게 좋다는 말을 들었던 아빠는 산책과 목욕 사이에서 늘 깊은 고민에 빠졌다.
--- p.68

우리 집에선 아빠가 뭘 드시면 반드시 나도 하나를 먹어야 했다. 그게 내 주장이었다. 아빠가 밥을 다 드시고 나면 나도 간식 하나, 차를 드시고 나도 간식 하나. 아빠가 간식을 드셔도, 심지어 약을 드셔도 나는 간식을 요구했다(아빠가 약을 많이 드시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 p.118

인간에게 호텔이 다른 곳을 여행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곳이라면, 강아지에게 호텔은 다른 곳에 가지 못해서 이용하는 시설이다. 말하자면 애견호텔은 함께 떠나지 못한 강아지들의 슬픔이 모인 곳이다. 애견호텔에서 든 내 생각이다.
--- p.125

아빠에게 나는 3 순위였던 거 같다. (아빠는 그렇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정하시지만 말이다) 일이 1 순위, 골프가 2 순위, 그 다음이 나였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 p.135

“냉이야, 매너가 품격을 결정하는 법이다.”
아빠는 아빠에 대한 내 태도엔 관대하셨지만, 내가 다른 사람이나 강아지를 대할 때는 예절을 강조하셨다. 가끔은 그게 억압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게 내가 더 활발한 강아지가 되지 못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 강아지의 아픔이라고나 할까? 그냥, 더 신나게 놀지 못해 아쉬워서 하는 넋두리일지도 모르겠다.
--- p.140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올레길에서 본 슬로건이지만 이건 내 삶의 모토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자 놀멍도 걸으멍도 쉽지 않았다. 참 쓸쓸한 일이다.
특히 내가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못하는 존재가 됐다는 사실이 나를 쓸쓸하게 했다. 멋지게 늙고 싶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환자로만 산 것 같아 엄마 아빠에게 죄송스럽다. 무엇보다 개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과 다른 걸 모르고 아빠처럼, 엄마처럼, 형처럼 살 수 있다고 자만했던 것 같다. 전적으로 나의 무지함 때문이다.
--- p.171

서로 거짓이 없는 사이는 언젠간 또 만나게 된다는 아빠의 말씀을 나는 믿는다.
아빠와 나, 엄마와 나, 큰형과 나, 작은 형과 나.
우리 사이는 언제나 진실했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천국에서 기다릴 것이다. 아니, 꼭 천국이 아니어도 좋다.
--- p.201

냉이와 15년을 함께 하며 난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순수한 영혼을 가진 존재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소중하고 위대한 동물의 가치를 냉이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참 늦게.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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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고 있어 남편도 아이도 없는 나는 신부전이 걸린 18살 고양이 두 마리를 가족 삼아 살고 있다. 아이들과 오래 함께 살면서 점점 더 강해진 생각은 이제 가족의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냉이가 아빠에게』는 각각 존재의 특성을 잘 유지하면서도 완벽한 사랑을 나누었던 두 종에 관한 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동물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인간은 늘 동물을 인간 밑에 두곤 하는데, 냉이와 아빠의 미덥고도 애틋한 관계를 바라보면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원래부터 ‘나란히’였음을 알게 된다.
- 정유희 (PAPER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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