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는 나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이처럼 내 마음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내 친구’ 딸아이이자, 또 그 아이와 꼭 닮은 발달장애인 친구들. 또 내가 정치인으로 더 좋은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함께 싸워준 자립준비청년, 시각장애인, 혈우병 환아와 부모님이다. 남루한 이 글을 읽다 그만두신 분들도, 마지막 끝 페이지까지 책장을 다 넘겨주신 분들도, 이 책을 손에 쥐셨던 모든 분들이 ‘이 책의 주인공들을’ 기억해주시길. 그래서 책을 덮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 책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대함이 조금은 덜 어렵고 조금은 덜 불편하실 수 있길. 더 나아가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무릎이 툭 꺾이는 날에 떠올릴 수 있는 ‘진통제 같은 행복한 에피소드’도 얻으시길 희망한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가 가진 크고 작은 장애와 이로 인해 마주하게 되는 사회적 차별을 넘어 더 자주, 또 더 많이 만나며 어울리는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프롤로그」중에서
고등학교 3년 입시 공부하느라 마음이 힘겨울 때면 좋아하는 시집을 찾아 펼쳐보곤 했다. 딱히 뭐라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마음의 허기가 이런 시구 속에서 채워지는 것 같았다. 시가, 소설이, 노래가 사랑받는 이유가 이런 것 아닐까. 심장 사이로 부는 바람을 조금 막아주는 듯한. 요즘은 책을 읽을 시간도 많지 않고 책을 읽어도 머리에 남는 것보다 기억나지 않는 게 더 많다. 그런데 누군가 독서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해준 게 위안이 되었다. “어릴 때 콩나물 키우는 거 봤어요? 시루에 콩을 넣고 매일 물을 줘도 시루 밑으로 쪼르르 다 빠져요. 그런데 물이 다 빠지는 거 같아도 남는 게 있어서 콩이 그 물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요. 독서도 그래요. 다 기억하지 못해도 마음에 남아요. 그러니까 기억 안 난다고, 읽어봐야 소용없다고 하지 말고 많이 보세요.” 그 시절 내가 읽었던 책의 내용이 전부 다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감명 깊게 본 위인들의 삶의 자세며 더 좋은 세상을 위한 헌신이 은연중에 내 마음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외롭고 쓸쓸한 존재들을 잘 발견해내는 시인들의 따뜻한 눈길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삶, 그 삶의 고단함을 읽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책이 내 인생의 나침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에서 길을 찾다」중에서
내가 정치를 하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 아이는 많은 혼란을 겪게 될 터였다. 학교를 옮겨야 하고 인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터라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를 다시 배워야 하고 장애인에게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정치를 해도 될까? 엄마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나의 딸에게는 너무 큰 짐을 안겨주는 이기적인 결정 아닐까? 어렵게 얻은 교수자리를 내려놓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았는데 아이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밤잠도 설치면서 며칠을 고민하다 그냥 당사자인 딸의 의견을 묻기로 했다.
“엄마가 한국 가서 정치인이 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일단 한국 가면 네가 불편한 게 많을 거야. 학교도 바뀌고 친구도 새로 사귀어야 하고, 지금처럼 엄마가 너를 많이 보살펴주지 못할 수도 있어.” 미안한 마음에 자꾸 이런저런 말이 길어졌다. 이것도 힘들 거고, 저것도 힘들 거고, 자꾸 어려운 일을 나열하는 나를 보던 아이가 말했다. “Follow your heart!” “엄마, 심장 따라서 가!” 그 말이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딸은 나를 온전히 존중해주고 있었다. 나의 엄마가 아니라 나의 보호자가 아니라 그냥 강선우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정치인 강선우로 살아도 된다고 온 마음으로 지지해주고 있었다.
---「엄마, 심장 따라서 가!」중에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 속엔 생계가 막막해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 성실하게 살지만 따뜻한 밥 한 끼 먹기 어려운 이웃들이 있다. 사회안전망이 촘촘하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여전히 많다. 조부모님 손에서 자라는 손자와 손녀들이 혹여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별한다 해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보호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의 부모가 자신이 떠난 후에 남을 자녀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부모님의 치매로 자녀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생계와 일상을 포기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적어도 병원비를 댈 수 없어 소중한 생명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의 정치는 느슨하고 허술한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촘촘하게 메우는 일, 그래서 혹 삶의 굽이굽이 발을 헛디뎌도, 갑작스러운 돌풍을 만나도 일상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일이 없게 만드는 일이다. 국회에 들어온 지 햇수로 4년, 평범한 일상을 지키는 더 따뜻한 정치. 사회적 약자도 소외되지 않는 든든한 돌봄을 향한 꿈은 여전하다. 가족도 없이 홀로 사는 노인도 내일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 명함 한 장이라도 아끼라며 온 마음으로 나를 응원해주셨던 그 지지자분과의 약속을 지키는 길이다.
---「정치, 촘촘한 삶의 안전망을 만드는 일」중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이 원하는 건 발달장애인도 사회에 진출해 비장애인과 어울려 사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엄마들이 오히려 발달장애인 자녀의 노출을 두려워한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가 아이를 바라보는 무례한 시선이나 차별적인 언행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어린 시절엔 또 외출 한번 하려면 챙겨야 할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냥 안 나가고 말지 하며 동반외출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발달장애인의 수에 비해 실생활에서 발달장애인을 만나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 몇 번쯤 넘어질까. 수도 없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아이가 넘어진 것을 두고 실패했다고 하지 않는다. 두 발로 서고 걷고 뛰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까. 발달장애인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겪는 실수 또한 당연한 과정이다. 출퇴근하면서 길을 잘못 드는 것도 예사고, 주어진 일을 때로 잘못할 수도 있고,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일도 많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있어야 발달장애인의 사회 적응도,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도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엄마들이 자녀를 사회에 내보내고 어려움을 겪어도 지켜볼 용기를 가지는 일은 중요하다. 현정씨 엄마 역시 그런 용기를 내는 게 어려웠지만 지금은 일단 부딪혀 보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 경험한 만큼 성장한다.
---「고맙고 애틋한 우리 딸(주현정 씨 이야기」중에서
법안만 발의하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법안 통과를 위해 이 법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식품산업협회의 협조를 얻어 161개 식품업체 회원사 대상으로 현황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결과 무려 전체 95%에 해당하는 154개 사가 점자 표시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이 겪는 불편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다. 반드시 통과시켜야겠다는 의지가 커졌다.
식약처와의 수차례 논의 끝에 ‘식품 표시정보 장애인 접근성 개선 연구사업’을 실시했다. 다양한 업계와 기업에 대한 수요를 조사해 의견을 수렴하고 점자표시 이행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수립했다. 21년 11월 ‘식품의 점자 표시 가이드라인’이 준비되었다. 그리고 2023년 5월 드디어 시각장애인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오용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상세한 점자표기를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아쉽게도 모든 식품에 대해 점자 표시를 의무화하는 당초 목표에 이르진 못했지만, 민관협의체와 함께 자율적용 업체가 참여하는 실무협의체 역시 지속적으로 운영하며 점자 표시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한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중에서
윤석열 정부는 2023년 공공어린이재활병원운영을 위한 인건비를 전액 삭감했다. 약자복지를 한다면서 가장 약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예산부터 줄인 것이다.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서 경제부총리에게 증액을 요구했고, 국회 심사과정에서 다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멈출 수 없었다. 2023년 6월 ‘제대로 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위한 전국 시민TF연대’ 대표님들과 간담회를 다시 시작했다. 재활난민 가족들에게 희망의 등불 같은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차질 없이 건립되고 운영될 수 있어야 한다. 미뤄둘 수 없는 과제다. 우리 모두는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우리 모두는 법 앞에 ‘평등하게’ 건강해야 한다.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어디서든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다. 지난 3년간 그래왔듯 앞으로도 끊임없이 외칠 것이다. 발달장애인도, 장애아동도, 또 그 어떤 사람도 차별 없는 공공의료서비스를 받게 될 때까지.
---「평등하게 건강할 권리」중에서
요즘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구부러진 빨대나 저상버스는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모두가 편리하게 사용한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것들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편리함을 제공한 것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놓인 이들을 배려하고 그들과 함께 가는 것은 그들만을 위한 복지가 아니라 더 포용적인 사회,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사회를 위한 마중물이다. 2020년 당선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원은 입법노동자’라고 규정했던 것을 기억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에게 한시적으로 권한을 부여받아 법을 만드는 노동자다. 중요한 건 막중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라는 것이다. 내가 국회에서 보내는 하루하루의 시간이, 또 한마디 한마디 말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과 파장이 크다. 작업일지를 쓰듯 그날의 일과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도 국회로 출근한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일들은 많고 나의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많다. 그러나 마중물을 한 번 두 번 열심히 붓다 보면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는 따뜻하고도 효율적인 돌봄 공동체가 우리의 일상이 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국회에서 일하며 국민을 고용주로 모신 입법노동자 강선우가 가장 바라는 성과급, 바로 따뜻한 돌봄국가 대한민국이다.
---「장애인만을 위한 정책? 우리 모두를 위한 투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