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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여자

[ 초판 한정 작가 사인 인쇄본, 양장 ] 위픽이동
리뷰 총점8.7 리뷰 3건 | 판매지수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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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13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200g | 100*180*20mm
ISBN13 9791168127302
ISBN10 116812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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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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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여자의 눈이 먼저 시비를 걸어왔던 거다. 돌이켜볼수록 그랬다. 나중에 여자 눈이 신경 쓰일 일이 자꾸 생기면서, 첫날 이미 걸리적거리는 눈길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과 그중 최고가 대문을 나서면서였다는 게 점점 더 확실해졌다. 대문에서는 당황하기까지 했는데, 그 눈을 길게 생각하기에는 그날 만남 전체가 워낙 강렬했고 대문을 나선 이후 바빴다.
--- p.5~6

출발하기 전 과장은 얼굴을 찡그리고 혀를 차며 ‘열악함’이라는 단어를 서너 번 사용하면서 그래도 하겠느냐고 거듭 물었고, 열악한 건 상관없다는 것이 내 일관된 답이었다. 열악해서 확인해대는 사람에게 열악하다니 더 하고 싶은 마음을 설명하기 귀찮아, “네”라고만 답했다.
--- p.6

“저는 어르신을 돌봐드리라고 나라에서 보내주는 요양보호사예요. 돌봐드리는 걸 서비스라고 해요.”
“아니 그걸 왜 써비스라고 해?”
여자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사회복지 쪽에서는 사람 돌보는 일에 서비스라는 말을 써요.”
“돌봐줄 거 없어요! 내가 다 알아서 하는데 뭘.”
--- p.19

통곡하는 여자를 안고 노인을 노려보았다. 흑갈색의 넙데데한 면상 위로 칼자국과 편평 사마귀들과 갖은 얼룩과 점들, 천진과 포악이 엉겨 희번덕거리는 누런 눈알 두 개와 눈물로 질펀해진 눈곱, 실룩거리는 입술 사이로 하얗게 말라붙은 침과 질질거리는 침. 명치에서 피어오르는 혐오감을 들킬까 싶어 눈을 감았다.
--- p.24

근무 시작 2021년 6월 9일, 시급 8720원, 1일 세 시간 주 5일 근무, 계약 기간은 12월 31일까지. 내년에는 새로운 최저시급이 적용되므로 그때 가서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자는 게 과장의 말이었고, 가능하면 계약 기간을 짧게 해서 퇴직금과 연차휴가나 수당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인 걸 알지만 우선은 똑똑한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 p.31~32

돌봄 대상자는 노인이었지만, 내겐 일찌감치 ‘그 여자네 집’이 되었다. 처음부터 여자가 더 신경 쓰였고 여자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초기에는 여자가 왜 이 남자 옆에 있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늠이 됐다. 여성 홈리스나 성매매 여성들 중에는 더 큰 위험을 피하느라 그 바닥 센 남자의 여자로 있는 경우가 많고, 폭력이나 경제적 갈취를 당하면서도 외로움을 피해 동거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의료보험증은 고사하고 주민등록 자체가 말소되어 있었다. 같이 사는 동안은 그렇다 치고 남자가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가게 될 지연을 생각해, 주민등록증과 의료보험증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잘하면 기초수급자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p.48~49

더 겪으면서 보니, 둘은 생애 내력이나 심리적으로 서로 얽히고설킨 채 엉겨 붙은 덕에 피차 아직 무너지지 않고 있었고, 따로 떨어지면 금세 각각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서로 징그럽게 얽힌 분리불안 증상은 상대적으로 지연이 더 심했다. 노인과 내가 병원이나 보건소, 주민센터 등에 가고 없으면 자꾸 전화를 해댔고, 늦게 온다는 핑계로 술을 먹었다. 그러다가 돌아오면 “저건 나 없으면 죽어!” “니가 나 없으면 죽지!”라는 말을 서로 퍼부으며 싸웠고, 내겐 모두 “나는 저거 없으면 죽어!”라는 소리로 들렸다.
--- p.54~55

이 여자는 남의 돈을 자기 돈으로 아는 걸까. 돈을 더 빌려주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 틀려먹은 거라고 확신하는 걸까. 돈에 관한 여자의 생각이 그토록 정의롭고 소신에 찬 것이란 말인가.
“대학 나온 사람이 돈 5만 원이 없어! 식군 줄 알았는데 아니네!”
난데없는 대학 소리에 웃음이 나올 뻔했고, 눌렀다. 이런 대목에서 웃어버리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아직 끝낼 마음은 없다.
--- p.81

결국 모멸감과 신경질 때문에 셋 사이에 그럭저럭 이어지던 법 바깥 관계를 단숨에 깨버리고 제도 속으로 회피한 거다. 쌍욕은 참았지만 여자의 약점을 정확히 골라 찔렀다. 하등의 공적 권리가 없는 여자, 너 따위가 고마워하기는커녕 싸우자고 달려드는 꼴을 더는 참아주지 않겠다며 패악질로 되갚은 거다.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 p.83

“일어나요. 집에 가야지.”
눈이 마주쳤다. 감정과 시선을 단속하며 무덤덤하게 내려다보았다.
“냅둬! 니년이 뭔 참견이야.”
같이 나자빠져 뒹굴면 여자의 마음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는 절대 길바닥에 나가떨어지지 못하는 여자다. 잠깐 같이 나자빠져 있는 건 쓸데없는 연민임을 여자도 나도 안다. 기껏해야 몸을 만지거나 안는 건데, 그것도 여자는 싫어할 거다. 입장과 처지는 생애를 털어 만들어지는 위치와 경로다. 옆에 쪼그려 앉아 눈을 감았다.
--- p.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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