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와그너의 제 3의 물결에 관한 이러한 주장은 80년대에 일어난 존 윔버의 빈야드 운동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피터 와그너는 존 윔버와 가까이 교제하였고, 플러신학교에서 함께 공동강의를 맡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존 윔버에 의해서 주도된 그 강의에서는 빈야드 운동에 관한 이론과 더불어서 실습도 이루어졌다. 공동강의자로서 존 윔버의 모든 강의에 참여하였던 피터 와그너는 존 윔버를 통하여 나타나는 성령의 이적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성령의 물결이 일어났다고 느꼈다. 피터 와그너는 그것이 제 1의 물결인 오순절 운동, 제 2의 물결인 은사 운동의 뒤를 이어서 하나님이 일으키신 새로운 성령이 역사하시는 운동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이름을 '성령의 제 3의 물결'이라고 하였다.”(제 1장의 “제 3의 물결의 출현”의 내용 중에서)
“존 윔버의 집회에서도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러나 치유의 이적을 경험했다고 알려진 사람들의 사례들을 객관적으로 조사한 전문가들의 말은 우리를 실망스럽게 한다. 대부분의 사례들은 고조된 집회의 분위기와 환자들의 간절한 소망이 배합되어 일어난 심리적인 과장이었거나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리즈에서 열렸던 존 윔버의 치유집회에 참석하였던 다섯 명의 의사들은 존 윔버를 통하여서 나타났다고 홍보된 치유의 사례들을 조사한 후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이 집회는 최면 유도에 관한 교과서적인 내용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노이로제와 관련된 심신 의학적 무질서와 육체적 현상들은 짧은 시간 내에 이 같은 치료 방법에 효과를 보일 것이다. 사실 치과에서 이빨을 뺄 때, 혹은 아기를 낳게 될 때 느끼는 고통을 줄이는 것 등은 최면술에서 매우 초보적인 것이다. 윔버의 신유집회에서 우리는 육체의 질병이나 소아마비 등이 실제로 치유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제 2장의 “제 3의 물결과 치유”의 내용 중에서)
“여하간 작고 사소한 어떤 현상을 가지고 성경의 외국어 방언이 지금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무책임한 일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예기치 못하는 오해와 혼란을 주게 될 수 있다. 성경의 외국어 방언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완전한 문장을 완벽하게 구사하면서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말하는 방언이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사람들이 정확하게 이해하였다. 몇 개의 외국어 단어, 또는 더듬거리는 한 두 개의 문장이 아니었다. 미혹하는 사탄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참된 이적을 모방한다. 모세가 애굽의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이적을 행할 때 사탄의 종들인 바로의 술사들도 모세의 이적 몇 가지를 그대로 따라하였다. 영혼들은 사냥하는 사탄에게 어느 정도의 선까지 하나님의 진짜 이적을 모조하는 악한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성경의 방언의 최대의 의미는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의 변화된 영적인 신분을 증거하는 표적이었던 것이다. 성경의 방언은 기독교를 확립하는 중요한 복음의 표적이었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통해 은혜를 입고 성령을 받았음을 확증하여,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적이었으므로 성경의 방언은 반드시 이방인의 언어여야 했다. 그 사실을 바울은 이사야의 예언을 기초하여 고린도 교회에 설명하였다. 이것이 기독교의 방언의 의미이다. 지금도 방언을 하려면 이러한 방언을 해야 한다. 그런데 유래없는 이상한 방언(?)이 지금 교회를 장악하고 있다. 특히 1900년대에 들어서서 온 세계에 급속히 퍼졌다. 사탄이 성경의 방언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퍼뜨리면서 거짓된 소리현상을 교회 속으로 주입하였다. 목사들도, 선교사들, 장로들, 권사들, 순복음 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 도처에 이 미혹이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기독교 속으로 들어온 ‘신기’를 잡아야 할 급박한 상황이다.”(제 3장 “제 3의 물결의 방언, 방언통역”의 내용 중에서)
“그러나 예언을 받는 문제는 정말 위험하고 심각하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여 주시는 예언이라는 것은 이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많은 예언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님에도 예언이 많이 주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님을 모조하는 미혹의 영이 꾸미는 것이거나, 사람이 그럴싸하게 지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예언은 심각한 현상이며, 우리들이 바르게 이해하고 정립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대저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20).”(제 4장 “제 3의 물결과 예언”의 내용 중에서)
“그러나 정신에 변형을 일으키는 위험성이 있는 요소들을 내포한 찬양을 많이 부르면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한 흥분상태에서 신앙생활하게 된다. 이것이 사탄이 현대의 교회들을 공격하는 방법이다. 지금 사탄의 전략은 교회의 문을 닫도록 핍박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바른 믿음과 건강한 기독교 영성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노래, 즉 찬양사역이다. 하나님 찾고, 예수님 찾고, 성령님 찾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열성을 내니 과연 누가 이 문제를 쉽게 분간해 내겠는가? 그러나 언제 하나님께서 음악으로 영혼이 구원받고, 삶이 변화될 수 있다고 하셨는가?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은 사도들을 노래 잘하는 사람들로 구성하셨고, 악기 하나씩 다룰 수 있는 사람들로만 제자를 삼으셨을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후 감사와 경배를 올려드리는 수단이다. 하나님과 관련된 음악을 즐기면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우리 자신들이 즐겁고 흥분되는 것을 찬양사역의 목적이라고 할 수 없다. 교회를 교묘하게 흥분되게 하면서 쾌락을 추구하게 하는 우상숭배가 찬양사역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제 5장 “제 3의 물결과 찬양”의 내용 중에서)
“엔카운터 수련회라는 것은 G-12의 가장 핵심적인 순서이다. 소위 성령을 체험하게 한다는 시간이다. 신사도 운동의 가증스런 ‘성령의 기름부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성도들이 경험하고서 완전히 영적으로 마귀의 포로되게 만드는 가장 악질적인 시간이다. 구약 시대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과 단에 세워진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겼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위장한 사악한 마귀를 섬겼다. 남쪽 유대 왕국의 백성들도 산당이라고 하는 곳을 드나들면서 이상한 짓들을 일삼으면서 스스로 하나님을 섬긴다며 자랑하였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하나님을 위장하는 사탄을 섬겼을 뿐이다. 결국 그래서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대 왕국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다.”(제 6장 “제 3의 물결의 거짓부흥”의 내용 중에서)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