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을 이야기하면, 저출산 문제가 비혼 여성들의 탓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젠 여성이 아이를 낳아도 뭐라고 한다. ‘올바르게’ ‘정상적으로’ 낳으라고, 비혼을 선택한 것도, 비혼 출산을 선택한 것도 결혼을 선택한 것만큼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선택인데 말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삶의 결이 있고, 사람마다, 가정마다 각자의 사정과 서사가 있다. 그런 배경 위에서 사람들은 결혼을 선택하거나 비혼을 선택한다. 출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옳다, 그르다, 정상이다, 비정상이다 하면서 타인을 판단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 p.24~25
마흔을 넘어가면서부터 나처럼 ‘자연스럽게’ 부모의 보호자 역할을 떠안게 된 여성들을 종종 만났다. 우리는 ‘딸’이라는 것 외에 좀 더 유의미한 공통점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나를 포함해서 거의 ‘비혼’이었던 것이다. 한 친구는 혼자가 된 연로한 아버지를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강릉으로 가서 그곳에 터를 잡았다. 위로 결혼한 오빠와 언니가 있지만, 서울로 오기를 꺼리는 아버지를 위해 결혼하지 않은 친구가 간 것이다. 또 다른 후배는 결혼한 언니들을 대신해 치매 초기인 어머니를 고향에서 자신의 집에서 모셔와 혼자 돌보고 있다. “괜찮겠니?”라고 물었을 때, 둘의 대답은 비슷했다. “어쩔 수 없잖아. 그나마 혼자인 내가 사정이 나은걸.”
--- p.58~59
나는 〈가족의 형태〉에 나오는 다이스케와 하나코처럼 살고 싶다. 오빠와도 가까운 이웃으로 살고, 나와 함께 할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면 동거하는 것보단 나 홀로, 하지만 ‘더불어’ 살고 싶다. 파트너가 꼭 이성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모였다 흩어졌다를 부담없이 할 수 있는, 서로를 보살펴줄 수 있는 친구여도 좋다. 다행히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 구성원만 한집에서 지내야 하고, 두 남녀가 만나면 꼭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부부는 싸워도 잠은 꼭 한 침대에서 자야 한다는 ‘신화’가 있던 가족의 형태가 지금은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앞으로도 가족의 형태가 계속해서 더 다양해지기를 응원한다. 삶에 정답이 없듯이, 삶의 형태, 가족의 형태에도 정답은 없으니까.
--- p.87~88
내가 나이가 들고 보니, 이렇게 ‘나이’를 핑계로 그어놓은 선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선이다. 나이가 들어도 여행 가고 싶고, 춤을 추고 싶을 수 있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뒷방 늙은이가 되어 집이나 지키고 싶은 노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다른 가족들이 수고를 해야 할지언정, 함께 다니고 싶은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 p.124~125
나 역시 경년기를 지나며 각종 질환이 이어달리기처럼 계속되고 있다. 엄마의 반복되는 하소연을 마냥 받아줄 여유가 없어지는 이유다. 그래도 한편으론 나는 아직 오십인데도 이렇게 아픈데 팔십이 넘은 엄마는 얼마나 아플까 하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시 세상 둘도 없는 효녀 모드로 전환하곤 한다. “엄마, 나도 이렇게 아픈데 엄마는 얼마나 아프겠수?”
--- p.148~149
엄마를 둘러싼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지만, 엄마가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유머다. 밥 먹을 때마다 자주 흘리셔서 내가 “식탁 밑에 밥풀이랑 조기 잔치 열렸네” 하면 엄마는 “가만히 둬. 이따 점심때 먹으려고 남겨둔 거야” 하신다. 또 엄마를 잘 모르는 사람이 “아저씨는 어디 계세요?” 하면 엄마는 돌아가신 지 벌써 삼십여 년이 된 아빠를 두고 “멀리 유럽 여행 가더니 거기가 좋다고 삼십 년째 안 오고 있어요”라고 유쾌하게 대답하신다.
--- p.179
결혼 안 해서 걱정이었던 딸이 이제는 자신을 돌보는 보호자로 함께 지내는 것이 든든하다면 그것으로 됐다. 그동안 내가 엄마에게 진 빚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난 내리사랑을 할 자식이 없으니, 받은 사랑을 다시 엄마에게 돌려줄 수 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 p.20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