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용 박사님의 글은 자유롭고 넉넉하고 맑은 증류수 같다. 서구적 사유가 신학을 압도하였던 시대였음에도, 한 그늘 · 한 어둠도 없다. “나는 나다”(I am Who I am) 하신 이를 본받아, 자신도 “나는 나다”를 몸에 새기며 살아내신 때문이다. 그래서 박사님의 글은 대양처럼 어머니 품처럼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한다. 선생님의 글을 한 편의 시처럼 읽게 해 준 임찬순 박사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 정희성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이정용 박사는 ‘뿌리’와 ‘경험’을 마중물로 미국 땅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역’과 ‘모퉁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아시아와 한국적 신학을 놀랍게 창출하였다. 그분이 키워내서 활짝 꽃피운 노란 민들레들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한국과 아시아 교회에 희망과 사랑의 촛불이 될 것을 확신하기에 평신도들과 신학도들에게 일독을 권면한다. 그것도 힘주어서! 민들레 이정용 선생님의 구술들을 풀어 정리하느라 고생했다. 심이 뜻 깊은 책이 되었구나! 그 어떤 책보다 민들레 이정용의 삶과 신앙과 신학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에 사랑스럽기만 하다. 수고했고 고맙다, 찬순아!
- 이찬석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이정용 선생님은 한국인의 심혼과 동양 전통에 대한 자부심으로 신학을 하신 분이다. 그의 제자 임찬순 목사는 오랫동안 기억의 창고에 유폐된 선생님이 살아온 내력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필체로 풀어내고 있다. 이것은 스승을 망각하지 않기 위한 한 제자의 눈물겨운 기억 투쟁이다.
- 김흥규 (인천 내리교회)
이정용은 동양적 사유체계인 『주역』을 신학적 패러다임으로 사용해 동서 용합을 시도한 신학자였다. 1970년대 초반 경희대학교에 초빙되어 강의했고 설립자인 조영식의 『오토피아』(1975)의 영문 번역에 참여했다. 조영식과 이정용의 삶의 괘적은 목회자의 길에서 교육자로, 화학도에서 목회자의 길로 정반대였으나, 동양 사상의 기반 위에서 자신의 사상을 전개했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정용은 “이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이 세상을 구하는 것에 중심을 둘 때, 새로운 신학이 발달할 수 있다. 죽어서 저세상에서의 구원이나 영혼의 구원보다, 이 땅 위에서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이자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즉, 새로운 구원관, 전체론적 구원론을 발전시켜야 합니다”라고 역설했다. 정확하게 조영식의 사상과 일치한다. 조영식은 생전에 “값있고 보람있게 살자”라고 외쳤다. 『미래를 여는 창, 조영식 코드』(2022)의 저자로서 이 책의 출판이 무척 반갑다. 이 책은 이정용의 삶과 사상이 한국인들을 감동시키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 홍기준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예수는 낮은 데로 오셨다. 비천한 자들과 어울리고 가난하게 사셨다. 가장 참혹하고 치욕적인 형을 받아 돌아가셨다. 한국교회는 높고 웅장하고 거대하다. 구원이라는 울타리가 있고 이단이라는 금지된 문이 많다. 울타리와 문을 넘어 예수가 들어오실 수가 있을까? 창조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두가 그의 솜씨다. 거기에는 중앙도 모퉁이도 없다. 이상한 것도 정상인 것도 없다. 여성도 남성도, 백인도 유색인도 없다. 생명만 있을 뿐, 인간과 동물과 식물의 구분도 무의미하다. 그 비밀을 창조주께 받은 분이 있다. 이정용 박사이다. 그는 주님 곁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낄까? 제자인 우리는 예수와 이정용 박사의 발자취를 그저 따를 뿐이다.
- 최문형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작가)
“‘마음이 순례길에 오른 사람”(시 84:5). 임찬순 목사는 이정용 선생님이 주역의 눈으로 성경을 깊이 묵상한 주옥같은 글들을 순례자의 마음으로 잘 엮었습니다. 이정용 선생님이 사용하신 신학의 열쇠 말은 정태적(static)이거나 과정(process)과는 다른 변화(change)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중심부가 아닌 모퉁이에서 일어나 중심부를 뒤집는 혁명적인 생명력입니다. 마치 순례길을 걷는 자는 땀을 흘리나 순례길을 만든 자는 피를 흘리듯이, 모퉁이가 머릿돌이 되어서 중심부를 뒤집는 일도 피를 흘리는 순례길의 길벗 같습니다. 스승 이정용 선생님과 제자 임찬순 목사도 순례길의 좋은 길벗입니다. 많은 사람이 두 순례자의 글을 읽고 함께 ‘순례길에 오르는 순례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 서철 (동대문교회)
이정용과 임찬순이 풀어가는(마 18:18) 신명난 잔치,
신과 심정이 통한 자들이 부르는 자유의 노래,
신을 품은 자들이 추는 환희의 춤, 덩실덩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이 열리길 비오!
- 이동섭 (천안 갈릴리교회)
이정용 교수가 이끌던 드루신학교의 한국신학연구원에는 박사 과정 한인 학생들이 북적였고, 신비롭고 말 못 할 활기가 있었다. 영어에 주눅 들어 있던 학생들에게 어눌한 영어로 말씀하셨다. “(우리가) 흑인들의 고유한 영어를 흉내내려고 합니다. 콩글리쉬에 주눅 들지 말고 모두가 알아들을 때까지 당당하게 말하십시오.”이는 권위 있는 해방의 메시지였다. 이원론적 세계관이 바탕이 된 서구 신학의 치명적인 한계는 음양, 즉 주역의 세계관을 통해 새로운 신학을 구성함으로써 복음의 진가를 살려내야 한다는 그분의 돌발적 선언은 신학적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 주었다.민들레는 푸른 잔디 속에서 수없이 목이 잘려 나가지만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온 들판에 퍼져간다. 미국 속 아시안들의 운명을 역설적으로 그려낸 민들레 이야기는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비전으로 심겨졌다. 그분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제자들은 길을 잃고 흩어졌어도, 이정용의 정신세계는 다이아몬드처럼 압축되고 정화되어 부활한 예수처럼 나타나 지금도 그들의 삶을 이끌고 있다.가신 지 26년이 지났지만, 충성스러운 제자 임찬순을 통해 이정용의 삶과 메시지는 마가복음처럼 문서화된다. 부활하는 이정용의 한국 신학(Korean Theology)은 겨자씨처럼 자라나 신학과 영성의 빈곤 시대에 쉼과 평화를 주는 나무가 되어 찾아오는 이들에게 신선한 생명의 기운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 도상원 (대뉴저지 연회 라리탄 쇼어 Raritan Shore 지방 감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