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똑같은 삶은 절대 살 수 없다. 말하자면 부르주아 아파트의 벽에 갇힌 삶, 한 남자의 일정과 결정에 따르는 삶, 야망도 열정도 없는 삶, 많은 걸 놓치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만 바라보는 삶―물론 거울 속 자신을 여전히 알아본다는 가정하에―아이를 낳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인 삶, 날마다 어떻게 치장할지 고르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거리인 삶은 모두 그녀가 원하지 않는 삶이다.
--- p.28~29
살페트리에르병원은 공공질서를 해치는 여자들의 하치장이자 사회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성향을 가진 여자들의 수용소요,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죄가 되는 여자들의 감옥이었다.
--- p.43
이 사면의 벽 안에서 시간은 근본적인 적이다. 억눌린 생각을 깨우고 기억을 되살려 불안을 유발하고 회환에 잠기게 만드는 적. 끝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는 이 시간이 고통스러운 불행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 p.49
여자들에게 강제한 이러한 장애물들로 미루어보건대, 아마도 남자들은 여자들을 업신여긴다기보다 오히려 두려워하는 것 같다.
--- p.63
교회는 도시보다 시골에서 훨씬 중요하게 여겨진다. 서로 잘 아는 이런 곳에서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가 어렵고, 일요일 아침에 집에 머무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p.100
자유롭든 갇혀 있든, 여자들은 어디서도 안전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동의 없이 내려진 결정에 가장 먼저 희생당했다.
--- p.117
도착할 때 미치지 않았던 사람도 사방의 벽 안으로 들어서면 미쳐버리게 할 수 있는 병원. 창문마다 뒤에서 누군가 감시하는, 누군가 보고 있거나 보았던 병원.
--- p.120
테레즈는 뜨개질하는 손을 멈추지 않고 외제니를 바라본다. 테레즈의 눈에 이 젊은 부르주아 여자는 딱히 미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가장 지독한 광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만.
--- p.129
남자들의 광기와 여자들의 광기는 비교할 수 없다. 남자들은 타인에게 광기를 부리지만, 여자들의 광기는 자기 자신을 향한다.
--- p.130
의사는 언제나 자신이 환자보다 더 많이 안다고 믿고, 남자는 언제나 자신이 여자보다 더 많이 안다고 믿는다. 바로 이런 시선에 대한 직관이 이 순간 진찰을 기다리는 젊은 여자들을 초조하게 만든다.
--- p.141
“난 전혀 미치지 않았어. 당신들이야말로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저 두려운 거겠지.”
--- p.148
그 속에서 사실적인 것과 허구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사실적인 것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킬 수 없었다. 정보와 객관적인 사실이 전부이니까. 반면에 허구는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고, 감정을 폭발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 p.159
“여기서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에요. 여기서도, 다른 어디에서도.”
--- p.167
지금껏 그녀는 진정한 분노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물론 아버지와 극심하게 불화했던 것은 사실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조롱하는 모습에 소리 없는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파도처럼 몸과 마음을 집어삼켜서, 무례에 맞서 끝내 포효해야만 하는 이런 감정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다. 외제니는 자신이 처한 부당한 상황에 격분했다. 노여움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삭아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 p.168
외제니는 가족과 함께 살면서 자신이 외톨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성격, 도발, 말대답 때문에 스스로 고립되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과 소원해졌다고.
--- p.169~170
싸움도 가려서 해야 하는 법이다. 매사 저항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모든 사람 혹은 기관을 사사건건 비난할 수 없을뿐더러 그런 태도는 효과적이지도 않다. 분노라는 압도적인 감정을 닥치는 대로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
--- p.178
만약 상황을 모르는 누군가 오늘밤 이 무도회장에 와본다면, 세상이 정상이라 말하는 이들이야말로 정신 나간 미치광이라 생각할 것이다.
--- p.259
준비에브는 소문이 사실보다 더 파괴적이라는 것과 한번 정신질환자로 낙인찍히면 설령 후에 병이 완전히 다 나은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영원히 정신질환자라는 것, 그리고 거짓으로 실추된 명예는 어떠한 진실로도 다시 회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p.189
무언가에 대한 강력한 믿음은 편견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야.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마음이 얼마나 평온해졌는지 몰라. 그래, 지나친 신념을 가져서는 안 돼. 의심할 줄 알아야 해. 모든 것을, 주변 상황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 p.281~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