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의 경우, 신혼 초야와 명예살인은 관계가 깊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습이지만 여성의 정조를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던 시절에 신부는 신랑과 초야를 보내고 난 후 반드시 자신이 혼전까지 ‘순결’했음을 입증해야 했다. 신랑과 신부가 초야를 치르고 나면, 동이 틀 무렵 신랑 측 여자 어른들이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초야를 치른 침대 시트에 신부의 혈흔이 묻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했다. 물론 의학적으로 아무 근거가 없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따라서 혈흔이 묻지 않았을 경우, 신랑은 신부의 순결을 의심하여 결혼을 무를 수가 있었다. 이때 신부의 아버지나 오빠는 신부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을 했다. -본문 21~22페이지
이렇게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한 이슬람권 지역 대부분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사이에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이때 이들은 서구 열강의 가혹한 탄압과 경제 수탈로 씻을 수 없는 좌절을 경험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슬람의 가치를 다시 회복하여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려는 이슬람 부흥 운동이 싹텄다. 이슬람 부흥 운동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대항한 총체적 운동으로서, 반외세·반세속을 공통분모로 하여 이슬람의 정통성을 보호하고 권리를 발전시키자는 근본 취지를 담고 있었다. 당시 이슬람 부흥 운동은 이슬람 급진주의자, 이슬람 개혁주의자 등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이후 서구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로 불렸다. -본문 51페이지
많은 사람이 이슬람 여성의 베일 착용 관습을 이슬람 종교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성이 베일을 쓰는 것은 중동 지방에서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토착 풍습 가운데 하나였다. 다시 말하면, 베일은 중동 지방의 사람들이 뜨거운 햇볕과 강한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발명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기후 조건 때문에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발명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문화권에서 다양한 의미로 수용되게 된다. … 수메르인에게 베일은 자치권의 상징이었으며, 페르시아인과 메소포타미아인에게는 배척과 특권을, 이집트에서는 평등을, 그리스 문화에서는 계급을, 비잔틴 문화에서는 격리를 의미했다. -본문 63~64페이지
아시리아 법은 여성이 베일을 언제 착용해야 하고 언제 착용하면 안 되는지를 법 조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이 법은 베일 착용과 사회계층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시리아 법은 ‘결혼한 여성과 첩, 결혼하지 않은 여성과 노예, 매춘부’ 각각에 대하여 베일 착용 규정을 정해놓고 있다. 아시리아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결혼한 자와 과부는 길거리에 나갈 때 베일이나 긴 웃옷을 입고 머리를 가려야만 한다. 한마디로, 정숙한 여성은 베일을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 68페이지
비잔틴 시대에는 금욕주의의 영향으로 육체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에 관심이 더 많았다. 여성들은 육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베일로 몸을 가려야 했다. 여성의 몸은 ‘가려져야 하는 것’ 혹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관념화되면서 마침내는 폄하되었고 여성 비하 의식으로 발전해갔다. 결국 금욕주의의 영향과 더불어 여성은 남성을 타락시키는 ‘유혹자’로 여겨지게 된다. 이러한 비잔틴 시대의 관행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발전한 이슬람 문명의 전통적 여성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본문 73페이지
권력이 요구하는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는 ‘착한’ 몸을 가진 여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가부장 권력은 감시와 제재를 동원한다. 특히 ‘시선’의 권력은 탁월한 통제력을 발휘한다. 남성의 시선이 여성을 향할 때, 여성은 규율이 원하는 태도와 행동을 익혀가는 것이다. 베일을 써야 하는 여성이 베일을 쓰지 않거나 베일을 쓸 수 없는 여성이 베일을 썼을 때, 국가권력은 이를 형벌 제도로 벌함으로써 여성을 길들인다. 결국 여성은 베일을 써야만 하는 존재, 한 남성에게 예속되어야만 하는 존재, 그리고 자신이 속한 남성이 아닌 다른 남성에게 눈길을 받아서는 안 되는 ‘정숙한’ 존재로 훈육되고, 여성의 몸과 성은 국가가 원하는 방식으로 통제된다. 이때 베일이라는 상징적 매개체가 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본문 76~77페이지
과거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을 구원해주었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최초로 여성 앵커를 고용하고 여성들이 부르카를 벗도록 조치했다. 서구 언론은 무시무시하고 폭력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 정권인 탈레반이 물러가고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지상낙원이 펼쳐진 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앵커는 “부르카를 벗었다고 해서 우리에게 해방이 온 것은 아니다”라고 울부짖었다. … 자신들이 점령한 나라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들이 베일을 벗도록 조치하고 문명화의 선전 도구로 이용하려 했던 미국이나, 이슬람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여성에게 베일 착용을 강요했던 탈레반 정부나, 이슬람 여성의 입장에서는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본문 115~116페이지
최근 서구 유럽 사회에서 이민자 이슬람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베일 착용 금지도 단지 베일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정치적 의도가 없다면 이민자들의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행위까지 제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정교분리를 국시로 내걸고 있기는 하지만, 북아프리카의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혐오감을 지나칠 정도로 드러내 문제가 된 적도 적지 않다. 더구나 이슬람 근본주의의 확산과 이로부터 프랑스를 지켜야 한다는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의 발언은 이슬람교도의 세력화를 경계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본문 129~130페이지
이슬람 문화의 정체성을 기의하는 기표로서 베일을 쓴 이슬람 여성은 모두 각각의 개인이 아니라 민족이나 종교 공동체, 혹은 가족의 삶을 의미하는 기표가 된다. 이것은 남성과 맺는 사회관계 속에서 여성의 삶이 의미를 부여받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기인한다. 즉 여성은 개인으로서보다는 누이, 연인, 아내,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강요당하며 살게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여성은 곧 가족이나 민족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적 기표가 된다. 단 이때 주목할 것은 여성의 순결이 매우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본문 158페이지
그렇다면 서구 사회가 ‘인권’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구의 집착이야말로 부재하는 것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인권이라는 개념으로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구 사회는 완전해지고자 하는 욕망과 완벽함에 대한 기대감이 결국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고자 ‘인권’에 집착하는 것이다. 인권은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결핍을 가리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권을 보편 개념으로 내세우는 서구는 한편에서는 서구 제국주의 또한 보편적인 것으로 본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폭력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