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색적인 정면의 모습은 이 집이 다른 집과 다른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슬그머니 암시해주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은 안에 들어가면 더욱 강해지는데, 물건을 나란히 늘어놓듯이 집들이 가로로 길게 들어서 있다. 보통의 집들은 남자의 공간인 사랑채를 한구석에 두고 집안을 관장하는 안채가 가운데 앉아 있다. 그리고 나머지 기능들은 그 주변으로 빙 돌아가며 배치되는데, 이 집은 그런 일반적인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어떻게 보면 위계가 없고 정확한 기능도 없어 보인다. 사랑채만 해도 열화당을 비롯해서 여러 곳이 있고, 안채의 기능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집 안에 들어가서 느껴지는 공간감이 무척 다양하다.
--- p.33-34, , 「세상의 중심이 되는 집 : 선교장」 중에서
운현궁은 사실 집은 집인데 집이 아니다. 언뜻 보면 일반인이 사는 집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왕이 사는 궁의 형식이 알알이 박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방이 방을 둘러싸고, 그 밖으로 마루가 둘러쳐져 있는 구조다. 경호와 안전, 보이지 않는 서비스 동선이 집에 숨겨져 있는 구성이다. 이런 방식은 궁궐의 내전(內殿)이나 침전(寢殿)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운현궁의 건물들은 모두 그런 여러 겹의 공간 구성을 갖추고 있다. 또 하나는 세 채로 이루어진 본채를 건물 뒤편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동쪽으로 얇고 길게 끊어지지 않고 연결된 긴 복도가 하나로 묶고 있다는 것이다.
--- p.64-65, 「권력의 상징이 된 집 : 운현궁」 중에서
혹자는 소수서원이 초기의 서원으로서 어떤 원칙과 규범이 생겨나기 전에 지어진 건물이므로 그런 자유로운 배치를 했고 위계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가 본 소수서원은 신분의 높고 낮음과 나이의 많고 적음이 엄존하는 교육의 공간에서도 위계를 뚜렷이 드러내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경과 애정이 적당한 위치와 드러나지 않는 은근한 위계를 통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인간적이며 따뜻한 공간이었다. 아마도 그 안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는 행복한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했을 것이다.
--- p.92, 「존중하며 공부하는 집 : 소수서원」 중에서
남간정사는 정말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고도 한참은 남을 집이다. 어찌 되었건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나라를 위해 헌신했고, 자신의 소신대로 누구와도 싸웠으며, 그 정신을 하나의 구체적인 조형물로 남겨놓은 점 하나는 대단한 존경을 표하게 한다. 남간정사는 무척 간단하고 단순한 집이다. 일자로 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이다. 좌측에는 2칸짜리 온돌방이 있고 가운데는 4칸짜리 마루방, 오른쪽은 뒤편에 1칸짜리 온돌방을 두고 앞에는 기둥을 세워 1칸짜리 누마루를 들였다.
--- p.125-126, 「물 위에 앉은 집 : 남간정사」 중에서
굉장한 기대 속에 누워서 대충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새벽 예불을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대적광전으로 갔다. 역시 큰 절이라 새벽 예불에 참여하는 스님도 많아 법당이 가득 차 있었다. 해인사의 예불은 조금 특이했다. 내가 그동안 보았던 여느 절과 다르게, 빠르고 씩씩하게 군인들이 구보하며 군가를 부르듯이 진행되었다. 물론 절마다 혹은 문중마다 분위기가 좀 다르고 예법도 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해인사는 그중에서도 특별했다. 왜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낸 결론은 그곳이 아마 팔만대장경을 지키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의 스님들의 기상이 남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 p.197, 「티끌에도 세계가 있다 : 해인사」 중에서
선운사의 경내는 넓다. 일반적인 사찰이 가지고 있는 깊이와 위계가 여기서는 다르게 펼쳐진다. 보통 절의 자리를 잡을 때 안으로 깊게 들어가도록 한다. 그 들어가는 과정이 하나의 종교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고,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는 것은 중생의 자리에서 점점 부처의 자리로 들어간다는 것을 상징한다. 반면 선운사는 가로가 길고 깊이가 얕은 대지에 집들을 펼쳐놓았다. 다만 절의 핵심 공간인 대웅보전 앞에 만세루라고 하는, 누각이라기보다는 그냥 마루가 넓은 강당을 하나 놓아 직접적인 접근을 막아놓았을 뿐이다. 그 너머로 푸르름이 감아놓은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동백나무 숲이 푹신하게 얹혀 있다.
--- p.236-237,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다 : 선운사」 중에서
푸른 들판 위에 둔덕이 몇 개 있고 둔덕 위에는 건강한 피부처럼 밝고 불그스레한 빛이 감도는 커다란 돌이 몇 개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작은 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진을 치고 있는데, 부처님이 서 있었던 자리이고 기둥의 자리다. 그 중심으로 들어가면 경주의 중심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특히 해가 지며 하늘이 주황색을 띨 무렵 그곳에 서 있노라면, 경주의 중심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 아니 우주의 중심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잦아들며 시간이 문득 멈춰 서서 같이 석양을 보는 듯하고, 신라의 천년을 지속하게 만든 기운이 느껴진다. --- p.274, 「그곳에 깨달음이 있다 : 기원정사와 황룡사지」 중에서
미륵사처럼 절터가 어느 정도 발굴되어 옛날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곳이 있는 반면, 절이 있었다니 하며 의아하게 만드는 곳도 많다. 풀이 무성하고 언뜻언뜻 바윗돌처럼 보이는 것들이 숨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기단이나 석등 받침 혹은 불상이 앉았던 대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시간을 두고 그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감았던 눈을 뜨듯 하나하나 바닥에 잠겨 있던 시간들이 서서히 일어나 환영처럼 그곳의 옛 모습이 그려지고, 심지어 내게 그곳에 대한 어떤 기억이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 p.302-303, 「영원한 현재를 살다 : 미륵사지와 굴산사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