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3년간 원저우에서 파송한 젊은 선교사들과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선교 지도력, 선교사 영성, 부부관계와 자녀교육, 선교사 돌봄 등의 훈련을 여러 방법을 사용하여 제공하면서, 필자 가정이 30여 년 전 한국을 떠나 선교지에서 겪던 상황이 이들 가운데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나라와 교회의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선교의 주체이신 성령님께서 마치 지난날 한국교회 안에서 역사하듯이, 이제는 고난 가운데 있는 중국교회 젊은이들을 복음을 위해 부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모른다.
---- 「미완성 이야기」 중에서
백여 년 전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아직도 열매를 맺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원저우 800만 인구 가운데 10~15%가 열매라고 한다. 이 열매 맺는 나무는 다시금 정치적 어려움, 물질주의와 세속화 등의 비바람을 맞고 있다. 특히 원저우 지도자들에 의하면 교회가 지금 직면한 최대의 도전은 정치적 어려움이 아닌 세속화의 물결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부르지 말고 ‘동방의 안디옥’이 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글로벌 교회에 부탁하고 있다.
---- 「미완성 이야기」 중에서
스토트 선교사: 1867-1889년까지 스토트 선교사가 사역했던 원저우 지역은 그 당시 개항이 허락된 지역이 아니어서, 그곳을 갈 때 초행 산행길을 8일간 걸어가야 했다. 정상인들도 가기 힘든 그 길을 다리가 하나뿐인 그에게는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스토트 선교사 부부와 그들이 전한 복음을 믿었던 현지 동료들은 그렇게 극렬하고 난폭하게 외국인과 기독교인을 배척하는 사회에서 숨거나 피하지 않고 어떤 위험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본래의 목적을 이루어 간다. 선교사의 죽음 후 제자 한 명이 ’그는 곧고 의로우며 매우 지성적이다. 그를 보면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고 가까이 가면 부드럽고 은혜롭다. 모두가 그를 닮고 싶어 했다.‘고 했는데 몇을 제외하고 그들은 한마음이었다.
훌륭했던 첫 선교사의 유산은 아직도 열매를 맺고 있다.
스토트 부인; 스토트 선교사의 모든 일에 조력했고 믿는 남자 성도에게 믿는 배필이 절실하여 곧 여학교를 세웠다. 전족을 하지 않고 부모 마음대로 조혼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소녀들을 기숙학교에서 돌보고 성경과 함께 삶에 필수적인 것들을 가르쳤다. 전도하여 구원받은 여성들에게 복음 전도, 헌금, 기도를 조직적으로 가르치고, 부인 전도단을 조직해서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돕는지 그 방법을 가르쳤다. 언제나 그렇게 현지 성도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슬프거나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도왔다.
고난받기를 거부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수동적으로 누워있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교훈을 그렇게 빨리 배우지 못했다. 오랫동안 씨름하면서 그를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한동안 나는 남편에게 나의 절망을 숨겼다. 하지만 어느 날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그를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흐느껴 울었다. 그는 조용하게 말했다. “지금은 아녜요, 내 사랑, 아직은 아녜요.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당신이 받아들이도록 하실 거예요.” 3일 후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를 얻도록 하셨다. 내 뜻은 그분의 뜻 안에 삼켜졌고 전부가 평화로워졌다. 그날 저녁, 그의 옆에서 무릎 꿇으면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조용히, 온유하게, 고통 없이 그를 곧 받아달라고 기도했다.
“당신이 한 말들이 나에게 얼마나 좋았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당신을 그 자리에까지 올려놓으실 것을 알았다오. 나는 당신이 그와 같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을 뿐이오.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소. 모든 것이 좋아요.”
이 일이 있고 나서 6주 동안 우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는 한순간도 그를 되돌려 달라고 원했던 적이 없었다. 우리는 많이 이야기했고 많이 기도했다. 그리고 거의 함께 천국에 있었다. 우리는 함께 나의 장래 계획을 세웠다. 심지어 내가 언제 중국으로 떠나면 좋을지도 함께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만든 그런 계획들을, 심지어 편지 보내는 일까지도 실행할 수 있었다. 내가 중국으로 돌아가서 그의 일을 시작한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돌아가서 엄마 겸 아빠가 되어 준다니, 그에게 그것은 너무도 큰 기쁨이었다. 우리는 완전히 한 몸으로 사역했었기 때문이었다.
--- 본문 중에서